생생 미국 리포트/ 아시안 월드 필름 페스티벌에서
생생 미국 리포트/ 아시안 월드 필름 페스티벌에서
  • 이훈구 작가
  • 승인 2022.11.21 12: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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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IND STITCH’ 베스트 단편영화상 수상
김종만 배우-알렉산더 버그먼 감독 멋진 콜라보
AWFF 백보드 앞에 선 '블라인드 스티치'(BLIND STITCH)의 주역들. 맨오른쪽이 알렉산드 버그만 감독, 중앙이 김종만 배우, 그 옆이 필자다. 

<미국 LA=이훈구 작가(재팬올 미국대표)> 한국영화계가 급격한 쇠퇴기에 접어든 가운데 아시안 월드 필름 페스티벌(Asian World Film Festival, 이하 AWFF)이 올해로 8회째를 맞아 이곳 로스앤젤레스 할리우드 일원에서 지난 9일부터 18일까지 열렸다. 

AWFF는 아시아 영화에 대한 관심을 높이기 위해 시작된 영화제다. 특별히 AWFF는 우수한 아시아 영화들을 아카데미와 골든글로브에 소개하고 수상의 기회를 마련하기 위해 2015년에 처음 시작됐으며 아시안 50여개국에서 출품된 작품들 중 우수작들을 선정해 상영해 왔다. 

AWFF가 비상업적 단체인 만큼 ‘박람회’에 가까우며 쇼케이스된 영화들은 영화조합과 언론기관들의 관심을 끌게 된다. 작년에는 펜데믹의 여파로 온라인 상영만 했지만 올해는 극장에서 영화들을 볼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해 관객들의 갈증을 해소해 주었다.

영화 '블라인드 스티치'

그러나 아시아 영화만의 창의적인 목소리를 할리우드에 전하자는 취지에 걸맞지 않게 줄곧 한국영화계는 정치영화들을 출품하여 지난 2017년 ‘택시 운전사’의 수상 이후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작년(2021년)에도 ‘남산의 부장들’을 상영하는 등 전반적으로 젊은 영화인들의 참신한 창의력을 기대하고 있는 영화제의 취지에 걸맞지 않은 블록버스터급 정치코드 영화만 출품한 부분은 두고두고 아쉬웠다. 

게다가 수많은 나라의 젊은 영화인들이 단편영화들을 쏟아 내며 도전을 하고 경쟁하는 분위기 속에서 ‘작은 영화’ 혹은 ‘독립영화’들 속에서 한국영화인들은 찾아보기 힘들었던 점 역시 안타까웠다. AWFF가 지속적으로 추구하고 있는 것은 ‘예술적 명성’ (프로그램 디렉터 Georges N. Chamchoun)이기 때문이다.

영화 '블라인드 스티치'의 트로피

올해 개막작은 황인호 감독의 '데시벨'(DECIBEL), 폐막작은 박찬욱 감독의 '헤어질 결심'(DECISION TO LEAVE)이다. 영화 ‘데시벨’은 소음이 커지는 순간 폭발하는 특수 폭탄으로 도심을 점거하려는 폭탄 설계자(이종석)와 그의 타깃이 된 전직 해군 부함장(김래원)이 벌이는 사운드 테러 액션 영화다. 이 작품은 사운드 특화로 돌비 애트모스(Dolby Atmos®) 포맷 개봉을 하면서 상영관의 편차로 오히려 몰입이 방해된 영화다. 

영화의 특성상 시스템이 따라 주지 않으면 지난 ‘한산’때처럼 대화가 잘 안 들려 자막에 의존해야 하는 단점이 있다. 물론 북미개봉은 어차피 ‘자막’이 존재하니 불행중 다행이다. 박찬욱 감독의 ‘헤어질 결심’은 박감독 특유의 코드인 ‘폭력·섹스’가 없어 관객들을 당황스럽게 했다. 감독의 변신이 때로는 낯설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해 주었다. 

사실 AWFF는 전통적인 전문가 위원회가 구성되어 있다. 폴라 와그너(Paula Wagner)가 그 중심이다. 그녀는 영화제작자이며 기획자이고 탐 크루즈의 프로듀서이기도 하다. 전문가 위원회는 수시로 영화들을 체크하고 있다. 각 영화사들의 투자 담당자들도 있으며 골든 글로브상 및 TOP사회평론가들이 참석한다. 이들이 ‘쇼케이스’기간 중 논의 하는 것은 영화투자와 금융지원, 합작영화를 만들기 위한 국제 문화적인 상호협력, PR 마케팅, 판매 및 배급 등 다양한 주제로 영화제 이후를 논의하고 이를 통해서 우수한 영화인들을 발굴해 낸다. 또한 각 영화들의 리메이크에 관한 논의도 활발하다. 

심사위원들의 열띤 토론

이번 영화제는 특별히 ‘대만영화주간’이 열려 눈길을 끌었다. 필자에게 대만 영화계는 마치 ‘친정’같은 친밀함이 있다. 대만문화부 등이 적극적으로 스폰서 쉽에 참여한 것도 기뻤지만 젊은 ‘대만 영화인’들을 자주 만날 수 있었다는 점이 더욱 좋았다. 

사실 지난 2010년에 대만과 중국은 'ECFA'(economic cooperation framework agreement)라 하여 ‘양안경제협력구조협의’를 체결한 바 있다. 후속조치로 대만, 홍콩, 중국의 영화 박스 오피스를 통합하였다. 우선 영화만큼은 ‘하나의 중국’으로 가자는 취지였지만 공산당이 지배하는 ‘중공’으로의 '하나의 중국'을 강조하면서 그 의미가 퇴색되고 말았다. 중국은 막대한 자본력을 바탕으로 대만과 홍콩의 영화인들을 탄압하고 더 나아가 종속시키는 전략을 썼기에 부작용이 만만치 않았다. 

때문에 대만과 홍콩의 영화산업은 황폐화 되었던 것이 사실이다. 배우들 역시 '하나의 중국'을 지지하지 않으면 많은 불이익을 주었기 때문에 중국의 횡포로 인해 시나리오도 제약이 많았고 배우들도 당연히 활동이 위축 되어 어려움이 많았다. 대만과 홍콩의 많은 영화인들이 일자리를 잃었고 ‘중공 버전’을 따로 편집하기도 했다. 

타이완 필름데이

그런데 이번 아시안 필름 페스티벌에는 대만의 영화들이 약진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아무리 ‘자유의 적’인 중공이 대만을 고사시키려고 해도 중화민국의 정통성을 이어 받은 저력과 자존심은 살아있음을 실감했다. 한때 대만은 리 안(李安), 허우 샤오시엔(侯孝賢), 차이밍량(蔡明亮), 에드워드 양(楊德昌) 등 대만 뉴웨이브의 기수들이 세계 영화제들을 석권하며 선도하던 시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대만의 영화계는 많은 제작을 하기 힘들 만큼 어렵지만 이런 영화제에는 작은 영화들과 독립영화들이 많이 출품 되어 저력을 느낄 수 있었다.

 ‘BLIND STITCH’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한국계 할리우드 영화인 이 영화는 이번 영화제에서 ‘YOUNG FILMMAKER SHOWCASE’에 출품되어 수상하였다. 1994년 L.A 폭동을 소재로 코리아타운의 한 양복점이 주요무대이며 이미 재팬올에 소개한 바 있는 이 영화는 알렉산더 버그먼(ALEXANDER BERGMAN)의 빼어난 연출과 김종만 할리우드 배우, 김진근(대배우 김진규님의 아들) 두 배우의 신들린 연기와 신중현의 사이키델릭 락이 어우러진 걸작품이다. 

필자에게는 김종만 배우와의 필연적 만남의 정점이 된 작품이기도 한데 ‘YOUNG FILMMAKER SHOW CASE’내내 마음 편하게 다른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었다. 중국 영화들이 다수 출품되었지만 그 난해함에 흔한 박수 한번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중국영화가 아닌 것으로 포장하기 위해 서구 배우들을 쓰고 영어로 대사를 한다고 해도 ‘시나리오’의 힘이 없으면 소용없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한 계기가 되었다.

아프리카 섹션

끝으로 올해 L.A국제단편영화제와 이번 AWFF에 참가한 소회로 한국의 영화학도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것이 있다. 지금 유투브 상에서 가장 많은 여행 동영상을 남기고 있는 것이 한국인 청년들이다. 그들은 남들이 가기를 꺼려하는 오지에 가서 체험담을 올리는 등 맹활약하고 있다. 그런데 영화학도들에게는 이러한 용기와 도전이 잘 보이지 않는다. 

미국에 유학 온 많은 사람들이 생활에 안주하거나 다른 직업을 찾고 도전에 실패하여 귀국을 하고 있고 이러한 영화제들 속에서 한국의 젊은 영화인들의 작품은 매우 드물기 때문이다. 아무리 세계 3대 영화제에서 수상을 하고 OTT에서 좋은 작품들이 흥행에 성공했다고 해도 독립영화, 단편영화들의 약진이 없다면 결국은 용두사미가 될 것이다. 

냉정하게 말해서 한국의 단편영화제에서 대상을 수상한 감독들이 입봉 한 경우가 거의 없다는 점이 지금 ‘한국영화의 위기’를 단적으로 이야기 해준다는 점에서 분발을 당부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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