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영화경제학(61)/ 로망포르노 거장 구마시로 다쓰미
일본영화경제학(61)/ 로망포르노 거장 구마시로 다쓰미
  • 이훈구 작가
  • 승인 2023.01.10 13:4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전성기 시절 구마시로 다쓰미 감독(중앙)

<미국 LA=이훈구 작가(재팬올 미국대표)> 로망포르노(ロマンポルノ)는 감독들에게 있어서 각자의 창의력을 발휘할 영역을 제공해 주었다는 점에서 긍정적 요소가 있다. 물론 이따금 대중 앞에 외설물을 상영했다는 혐의로 영화가 적발되는 경우가 발생했지만 무죄 판결이 잇따라 내려지면서 로망 포르노계에 뛰어든 감독들은 정기적으로 영화를 만들어나갔다. 

이들은 처음 호기심과 표현의 자유, 일본 관객들의 판타지를 만족시키기 위해 영화를 만들었지만 점차 일본 민중의 성(性)문화와 우키요에(浮世繪)의 전통, 비일상적인 성행위를 빗댄 정치문제 등을 다루기도 하였다. 이 장르가 장수하게 된 비결이 되기도 한다. 후기에 들어서면서부터는 기묘하고도 도착적인 에로티즘을 보여준다. 이중 가장 선구자 역할을 했던 감독은 ‘구마시로 다쓰미’(神代辰巳)이다.

▲구마시로 다쓰미
‘일본 영화 역사’학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요모타 이누히코(四方田犬彦)교수가 가장 먼저 손꼽은 감독이므로 이견이 없이 로망 포르노의 거장으로 가장 먼저 언급하도록 한다. 한국에서도 구마시로 다쓰미(다츠미) 감독에 관한 여러 영화가 상영된 적이 있고 ‘전설의 거장’으로 이해되어 있으며 로망포르노를 예술의 경지로 한 단계 올렸다는 평가를 받는다. 

일본 유명 도서 '영화감독 구마시로 다쓰미'와 구마시로 다쓰미의 '열쇠'(1974)

필자 역시 이 부분에 대해서 동의하는 바이다. 그는 일본 민중들이 얼마나 성(性)을 대범하고도 축제적 분위기에서 즐겨왔는지를 일관된 주제로 삼은 감독이다. 성(性)의 히로애락(喜怒哀樂)을 그린 유일무이한 감독이기도 하다. 물론 이 신화에 등장하는 뮤즈는 ‘시라가와 가즈코’(白川和子)이지만 그의 영화의 특징은 단순히 남성들의 전유물로 여성을 그려내는 것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그가 처음부터 로망포르노의 거장으로 등극했던 것은 아니다. 그는 약간 반항적 기질이 있었다. 징병을 피해 규슈제국대학교 부속 의학 전문부에 입학하였으나 중퇴를 하고, 이후 와세다대학교의 문학부를 졸업하였다. 1955년 조감독 시절 당대의 스타였던 시마자키 유키코(島崎雪子)와 결혼하였다. 

그러나 아내의 명성에 비해 자신의 필모그래피는 초라했다. 그의 감독 데뷔작이자 닛카쓰 역사상 ‘최저 흥행’작으로 남은 ‘카부리츠키 인생’(かぶりつき人生, 스트립쇼 배우의 인생)으로 인해 TV에서 활동하며 두 번째 기회를 기다려야 했다. 그는 1972년 ‘젖은 입술’(濡れた唇)로 복귀하였다. 

이때부터 그는 ‘소네 주세이’(曽根中生), ‘다나카 노보루’(田中登), ‘니시무라 쇼고로’(西村昭五郎), ‘고누마 마사루’(小沼勝) 등과 경쟁하다가 독보적 존재로 부각되었고 결국은 일반영화계로 콜업 되는 기이한 현상이 일어난 감독이다. 그는 닛카쓰 로망포르노계 1세대 감독으로 참여하여 장르의 틀을 닦았으며 한 영화 안에 여러 악인들이 등장하며 여러 사건을 만드는 ‘피카레스크’(Picaresque) 기법을 즐겨 사용하였다. 

시마자키 유키코(왼쪽)와 이시야마 히로코

▲‘이치조 사유리의 젖은 욕정’(一条さゆり·濡れた欲情, 1972)
대표작은 ‘이치조 사유리의 젖은 욕정’(1972)이다. 드라마를 중시하며 엄청난 인기와 높은 비평적 성과를 함께 누렸던 작품으로 두 여성 스트리퍼의 경쟁적인 관계를 중심으로 섹스산업종사자들의 무대 뒤 삶을 조명하였다. 이 영화는 유명한 스트립댄서인 이치조 사유리(一条さゆり)를 실제 캐스팅하여 화제가 되었다. 

실제로 “이 영화는 어디까지나 스트립의 여왕, 이치조 사유리에게 맡긴 픽션입니다”(この映画はあくまでストリップの女王、一条さゆりに託したフィクションです)라는 대사로 시작한다. 물론 다른 스트리퍼인 ‘하루미’(はるみ)역으로 나온 ‘이사야마 히로코’(伊佐山ひろ子)의 연기도 좋았지만 관객들은 이치조 사유리에 열광했다. 

‘이치조 사유리’는 당대 일본 최고의 스트리퍼(stripper)로 공연 외설죄로 총 9회 검거되었으며 심지어 은퇴 공연 때에도 ‘외설물진열죄’(猥褻物陳列罪)로 오사카 경찰에 체포되어 대법원까지 간 재판 끝에 유죄가 확정되어 와카야마(和歌山)형무소에 수감 된 이력이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일본 문화계에 “스트립은 대중오락, 외설에는 해당되지 않는다.”(ストリップは大衆娯楽、猥褻にはあたらない)라는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

'이치조 사유리의 젖은 욕정’은 ‘키네마준보’(キネマ旬報)에서 감독상, 각본상, 여우주연상을 수상하고 그해 각종 베스트 목록에 올라 역사상 가장 유명한 로망포르노 영화가 되었다. ‘젖은 입술’이 워낙 좋은 평가를 받았던 영화였기 때문에 그 후광을 누렸다는 분석도 있다. ‘젖은 입술’은 살인죄로 도주 중인 남자와 그녀의 애인인 매춘녀의 이야기를 단순한 형식으로 다룬 영화로 비평과 흥행에서 성공을 거둔 바 있다.

이치조 사유리와 관련된 도서(왼쪽). 영화 '다다미방 이불 속 게이샤의 세계'(1973)

사실 이치조 사유리 역시 공연에 제약을 받게 되자 영화배우로 변신한 경우에 속했다. 그녀는 ‘고마다 노부지’(駒田信二)의 실록소설(実録小説)인 ‘이치조 사유리의 성’(一条さゆりの性)으로 유명해졌으며 ‘스트립의 여왕’(ストリップの女王)이라는 칭호를 부여 받았을 정도로 유명했다. 특히 ‘신좌익’(新左翼)이나 당대의 여성활동가들로부터 ‘특출의 여왕’(特出しの女王), ‘반권력의 상징’(反権力の象徴)으로 불리며 큰 인기를 누렸다. 

그렇지만 이후 교통사고, 교제 중 남성에 의한 ‘전신 화상’ 등을 겪으며 막노동으로 생계를 유지해야 하는 등 비참한 말년을 보냈다. 르포타쥬 작가인 ‘가토 시코’(加藤詩子)의 저서 ‘이치조 사유리의 진실’(一条さゆりの真実-虚実のはざまを生きた女)에 의해 알려진 사실(유명세)들이 허구가 많다는 증언도 나왔다. 

영화 '이치조 사유리 젖은 욕정'(1972) 스틸사진

▲닛카쓰 로망포르노의 제왕
구마시로 다쓰미는 1973년과 74년에 만든 10편의 영화들의 히트로 ‘닛카쓰 로망포르노의 제왕’(日活ロマンポルノの帝王)으로 불리우며 점차 작품성이 높은 영화들을 내놓기 시작했다. 이 시기 작품들은 지금도 회고전의 단골 영화들이다. 특히 서구의 문학 작품들을 새롭게 재해석하였는데 마르키 드 사드(Marquis de Sade)는 당시 로망 포르노 영화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작가였다. 

이중 소설 ‘쥐스탱 혹은 미덕의 불운’(Justine, ou les malheurs de la vertu)을 영화화한 ‘여지옥: 숲은 젖었다’(女地獄 森は濡れた, 1973)는 외국 문학의 소스에서 극적인 영감을 받은 걸작이었다. ‘규방철학’의 배경을 산중의 외딴 오두막으로 옮긴 것으로 매우 어두운 이야기를 영화화했다. 경시청의 경고로 일주일 만에 상영 중지가 되었고, 1995년 상영 해금까지 영원히 봉인되는 수모를 겪었다. 

이른바 ‘니뽄 에로틱스 시리즈’(ニッポン・エロティックス”シリーズ)의 5탄으로 영화 매니아들 사이에서는 오히려 ‘컬트무비’로 추앙받는 영화다. 마치 김지운 감독의 ‘조용한 가족’을 연상케 하는 구성인데 숲속에 자리 잡은 여관의 주인과 그 아내가 스스로의 쾌락 때문에 숙박객들과 정사를 벌이지만 결국은 참살해 버리게 되는 스토리다. 음란, 광란, 사디즘의 모든 것이 모여 있어 영화를 보다 보면 오두막이야말로 여자들에게는 ‘지옥’이 따로 없다는 생각이 들게 만든다. 이사야마 히로코 외에도 나카가와 리에(中川梨絵)가 등장하는데 그녀는 아역 배우 출신으로 5세에 데뷔하여 67세에 폐암으로 사망하기까지 배우로 활동했다. 

영화 '젖은 입술'(1972)

이외에도 일본의 탐미화 문학의 거장인 소설가 ‘다니자키 준이치로’(谷崎潤一郞)의 원작 소설 ‘열쇠’(鍵)를 영화화한 영화 ‘열쇠’(鍵, The Key)를 기점으로 주로 가정 문제를 다룬 소설을 각색해 영화를 만들기 시작한다. 이 영화는 물질적인 삶에 지루함을 느낀 중년 부부가 삶에 자극을 받기 위해 벌이는 일들을 다룬다. 영화 속에서 남편은 아내를 약물에 취하게 한 후 침대 시트 위에 벌거벗고 누워 있는 모습을 몰래 스냅 촬영하고 아내는 성적 판타지나 불륜 관계에 대한 글들이 빼곡하게 적힌 다이어리를 남편의 눈에 잘 띄는 곳에 남겨 놓는다. 

그런데 사실 이 영화는 1959년 다이에이(大映)에서 이치카와 곤(市川崑)감독이 연출했던 동명의 영화(Odd Obsession)를 로망포르노로 재해석한 것이었다. 이 영화는 다시 틴토 브라스(Tinto Brass)에 의해서 ‘열쇠’(La Chiave The Key, 1983), 같은 해에 기마타 아키타카(木俣堯喬)의 버전, 이케다 도시하루(池田敏春)의 1997년 버전으로 계속 제작된다. 사실 닛카쓰는 자사에서 제작하여 성공을 거둔 영화들까지도 로망 포르노 버전으로 다시 만들었다.

영화 '몽둥이의 슬픔'(1994)과 영화 '여지옥 숲은 젖었다'(1973)

▲화류계 여성들에게 대단한 연정 과시
구마시로 다쓰미의 작품세계를 논할 때 이야기하는 것이 ‘화류계 여성들’을 다루면서도 실제 인물과 극중 인물의 경계를 모호하게 한다는 것이며 그들을 따듯하게 묘사하려고 했다는 것이다. 이 같은 경향은 감독의 성향이기도 했지만 닛카쓰가 핑크 영화와는 아주 다른 무언가를 하려고 노력했던 그것의 연장선상이라고 볼 수 있었다. 

적어도 로망 포르노 속의 여성들은 강인한 여성 캐릭터이면서 급진적 인물상을 선보였으며 자신의 권리를 주장할 줄 아는 힘을 가진 성적 존재였다. 이 같은 전략은 아마도 남성용 핑크무비에 친숙해질 수 없었던 여성관객이나 커플관객을 자신들의 영화관으로 끌어오기 위한 노력이기도 했다. 구마시로 다쓰미는 다분히 이러한 닛카쓰의 노선에 부합하는 감독이었다.

이외에도 자신의 이름조차 지운 떠돌이 청년의 이야기인 ‘방황하는 연인들’(恋人たちは濡れた, 1973), 또한 전쟁 전 유곽의 창녀들의 히로애락을 다룬 ‘다다미방 이불 속: 게이샤의 세계’(四畳半襖の裏張り, 1973), ‘이치조 사유리의 젖은 욕정’의 속편 격인 ‘젖은 욕정: 21인 특별출연’(濡れた欲情 特出し21人, 1974), 홍등가 폐쇄 전날 창녀와 손님의 마지막 밤을 다룬 ‘적선지대: 다마노이’(赤線玉の井 ぬけられます, 1974) 등을 잇달아 내놓아 호평을 받는다. 또한 12세기 귀족이나 무사들의 성생활을 비판적으로 익살과 풍자를 섞어 황당무계하게 묘사한 ‘단노우라 배갯머리 전투’(壇の浦夜枕合戦記, 1977)등의 걸작도 내놓는다. 

그는 폐결핵으로 인해 휠체어를 타고 연출한 ‘몽둥이의 슬픔’(棒の哀しみ, Like a Rolling Stone, 1994)을 통해 블루리본상(ブルーリボン賞)작품상과 감독상, 마이니치영화콩쿨(毎日映画コンクール) 감독상, 호치영화상(報知映画賞)감독상 등을 휩쓸었지만 이듬해 ‘이모럴: 음란한 관계’(インモラル・淫らな関係, 1975)를 마지막으로 급성폐렴으로 세상을 떠난다.

▲에필로그
구마시로 다쓰미의 영화들은 종종 ‘키네마준보’나 ‘영화예술’(映畵藝術)이 선정한 ‘올해의 베스트 10’ 리스트에 올랐다. 대부분 촬영소보다는 로케를 선호하였고 로케의 경우 감독인 구마시로 다쓰미가 절대적인 결정권을 가지는 일은 없었고 스텝들의 의견이나 아이디어도 받아들이면서 진행되었다. 비록 비정상적인 흥분을 기억하고 식욕까지 쾌락을 요구하며 때로는 잔혹함까지 느껴지는 그의 영화들은 평단과 관객들 모두를 만족시켰다. 

때문에 ‘여지옥: 숲은 젖었다’는 “성적 학대를 다뤘지만 지성과 통찰이 엿보인다”는 호평을, ‘다다미방 이불 속: 게이샤의 세계’는 “구마시로 다쓰미의 초기작부터 이어지는 아이디어와 관심사가 한데 어우러진 최상의 혼합체”라는 평가를 평론가 ‘재스퍼 샤프’(Jasper Sharp)에게 들었다. 그는 로망 포르노 감독을 넘어 진정한 예술가로서 평가를 받고 있으며 이 장르에서 평단과 대중들에게 최상의 찬사를 받았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