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 미국 리포트/ 나파밸리의 ‘한국 큰손들’
생생 미국 리포트/ 나파밸리의 ‘한국 큰손들’
  • 이훈구 작가
  • 승인 2023.01.20 16: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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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파밸리의 환영문구 간판

<미국 LA=이훈구 작가(재팬올 미국대표)> ‘와인 하면 프랑스’라는 고정관념이 있다. 따라서 전 세계나라들은 ‘프랑스 와인’을 따라 잡는 것이 그 목표였다. 물론 한국은 세계 2위 와인 수입국이다. ‘마주앙’(Majuang)이라는 자체 브랜드가 있고 어떤 이들은 ‘한국 와인의 자존심’이라고 까지 부르지만 세계와 경쟁하기에는 턱 없이 부족한 게 현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제 부터인가 한국인들은 ‘와인’을 마시는 것을 매우 고급진 술 문화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곳곳에 와인바가 생겨나고 드라마나 영화에서 작업남들이 여성들에게 하는 대사가 “우리 와인 한잔 할래요?”가 되었다. 그렇다면 현재 전 세계 최고의 와인은 어떤 것인가? 그렇다! 오늘은 그 유명하다는 ‘프랑스’와인을 제치고 세계 최고의 와인으로 등극한 미국 캘리포니아의 나파밸리(Napa Valley) 와인에 대해 이야기를 하겠다.

1976년 5월 26일 파리에서 열린 와인 블라인드 테스트 '파리의 심판'.

▲파리의 심판(Judgement of Paris)

1976년 5월 26일. 프랑스 수도 파리(Paris) 인터콘티넨털 호텔에서 이른바 ‘파리의 심판’이라는 세기적 사건이 일어났다. ‘포도주 블라인드 테스팅 대회’(눈가리고 포도주 시음하기)가 열렸는데 그 이전까지는 언제나 프랑스가 우승이었다. 이 대회에서 프랑스 출신 심사위원이 절대 다수 참여한 가운데 프랑스와 미국 간 결승이 벌어졌다. 

그런데 결과는 레드 와인(Red Wine)과 화이트 와인(White Wine) 모두 미국의 완승으로 끝났다. 그 이전까지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 많은 나라들이 와인의 종주국이라 부를 수 있는 프랑스를 이겨 보고자 연구 개발에 힘쓰고 있을 때였다, 하다못해 ‘흉내만이라도 내 보자’가 목표였던 셈인데 미국이 우승을 한 것이다. 그 우승의 주인공이 바로 ‘나파밸리’와인이다. 

사실 역전의 전조는 있었다. 영국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영국은 자체 와인생산이 미비해 거의 모든 양을 프랑스에서 수입하고 있었다. 그러나 미국에도 관심을 갖게 되는데 캘리포니아가 토양과 기후환경의 이점으로 질 좋은 포도가 생산된다는 점에서 착안한 것이다. 

영국 수입상 ‘스티븐 스퍼리어’(Steven Spurrier)가 캘리포니아를 방문하게 되었고 의외로 질 좋은 와인에 감탄하며 놀라고 말았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프랑스 와인과 한번 겨뤄보자는 호기심이 생겼다. 따라서 미국 수입상 ‘패트리샤 갈라거’(Patricia Gallagher)와 프랑스와 미국 와인이제조자들에게 ‘블라인드 테스트’를 제안하게 된다. 

'파리의 심판' 결과를 특종 보도한 조지 테이버 미국 타임지 기자.

당연히 프랑스는 승낙이었고 미국 역시 ‘져도 본전’이라는 생각으로 참여하게 된다. 총 11명의 (공인 받은) 심사위원 중 9명이 프랑스인이었고 대회를 주관한 스퍼리어는 물론 심사위원들 역시 프랑스의 완승을 장담하고 있었다. 때문에 주최 측에서 전 세계 언론에 취재협조를 요청했으나 미국의 타임(TIME) 기자이면서 파리 특파원이었던 ‘조지 M. 테이버’(George M. Taber’만이 참석했다. 그나마 공짜로 와인이나 시음하자는 심정이었다고 한다. 

프랑스 와인 4병과 미국 와인 6병이 참가한 이 대회에서 먼저 화이트 와인이 눈을 가린 상태에서 시음되었다. 1등은 놀랍게도 1973년 캘리포니아산 ‘샤토 몽텔레나’(Chateau Montelena)로 발표되었고 2등은 프랑스의 ‘뫼르소 샤르메’(Meursault Charmes)였다. 심사위원들보다 소믈리에들이 더 놀랐다. 

이어진 레드 와인 역시 1위는 캘리포니아산 ‘스텍스 립 와인 셀라스’(Stag’s Leap Wine Cellars)였다. 당연히 특종기사가 되어 세계로 타전 되었고 이 놀라운 이야기를 모티브로 스크린으로 옮긴 것이 지난 2008년의 영화 ‘와인 미라클’(Wine Miracle, 원제 BOTTLE SHOCK)이다.

1976년 당시 우승했던 캘리포니아 와인들

▲포도 생산 최적의 조건 캘리포니아

나파밸리는 미국 서부일주 여행의 필수 코스이며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고 있다. 특히 마야카마스 빈야드(Mayacamas Vineyards)는 석조 건물로 1889년 마운틴 디어의 휴화산 분화구 측면에 동굴을 파 만들었으며 이 역사적인 건물은 2017년에 발생한 이 지역 산불에서도 살아남았다. 나파밸리 하면 대부분의 와인 애호가들이 카베르네 소비뇽(Cabernet Sauvignon)과 샤도네이(CHARDONNAY)를 떠올릴 정도이며 정확한 의미는 단독 지명 또는 AVA(American Viticultural Area, 미국 포도지정 재배지역)를 뜻한다. 

많은 남부 지역에 비해 안개 또는 바람이 적은 따뜻한 기후로 인해 카베르네 쇼비뇽, 카베르네 프랑, 멜롯, 시라, 진판델, 쇼비뇽 블랑, 비오니에와 같은 다양한 품종이 자랄 수 있는 완벽한 조건을 갖추고 있기도 하다. 때문에 줄곧 프랑스의 도전을 뿌리치고 있기도 하다. ‘파리의 심판’이후 미국 와인은 불티나듯 전 세계로 팔려나갔고 프랑스는 어떻게든 만회를 하고 싶어 했다. 1986년에도 대회가 열렸는데 이때는 1-5위까지를 모두 캘리포니아산 와인이 차지했으며 30년 후인 2006년에도 다시한번 붙었지만 역시 미국이 이겼다. 프랑스가 미국을 이겨 보기 위해 노력을 한만큼 미국도 모든 노력과 연구를 아끼지 않았다. 

나파밸리 와인의 산파 찰스 크룩

나파 밸리의 와인 산업은 19세기 중반 소노마 카운티의 조지 욘트 (George Yount)가 최초의 와인 포도를 재배하면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를 발전시킨 이는 ‘찰스 크룩’ (Charles Krug)으로 1858년 양조업자 ‘잔 패칫’(John Patchett)의 포도로 나파에서 와인을 생산하기 시작하면서 급속도로 발전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3년 후인 1861년 크룩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존재하는 ‘Charles Krug winery’(최초의 상업용 와이너리)를 설립했다. 

이후 폭발적인 산업의 발달로 와인 메이커인 ‘애거스턴 해러스띠’(Agoston Haraszthy)의 지도하에 와인을 생산하기 시작했다. 이 결과 1870년에서 1880년 사이에 나파 밸리의 와인 생산량은 거의 1000% 증가했으며 1890년까지 생산된 와인의 갤런 측면에서 캘리포니아 최고의 카운티가 되었다.

영화 '와인 미라클'(원제 BOTTLE SHOCK, 2008)

19세기 후반에 나파 밸리가 경험한 성장의 대부분은 저렴한 중국인 노동력뿐만 아니라 전신 및 철도와 같은 기반 시설의 발전에 기인한다. 나파의 철도 개발로 농작물, 와인, 관광객을 쉽게 수송할 수 있게 되어 미국 전역으로 퍼져 나가게 된다. 물론 처음에는 프랑스의 기술력에 의존하였다. 그 성과로 1889년 빠리 세계 박람회에 출품되었고 나파의 와인 제조 사업을 개선하여 다른 부유한 기업가들을 유치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성공가도만 달려 온 것은 결코 아니었다. 필록세라(Phyloxera)의 발병으로 와인 포도 작물이 거의 죽는 시련을 겪었으며 그 뒤를 이어 1918년 미국에서 알콜 생산 및 운송이 불법이 된 ‘금주법’이 시행되어 큰 타격을 받았다. 1933년 금지령이 폐지되었을 때에도 미국은 대공황의 한가운데 있었고 그 결과 나파 밸리의 와인 산업은 1960년대까지 회복이 더딜 만큼 부침을 겪어야 했다. 천만 다행으로 1944년에 7명의 양조업자가 550개의 와이너리와 연합할 때까지 성장할 ‘Napa Valley Vintners 무역 협회’를 결성했기에 살아남을 수 있었다.

한화솔루션이 인수한 세븐 스톤즈 와이너리.

▲한국기업의 진출 활발 및 한인들의 약진 두드러져

최근 이곳 나파 밸리에 한화와 신세계 등 한국 대기업들이 대규모 투자를 통해 와이너리를 인수해 화제가 되고 있다. 한때 유입 되었던 중국 자본이 빠진 자리를 대신한 것으로 덩달아서 중소 규모의 한인 소유 와이너리들도 입지를 다져가고 있다. 조심스럽지만 한인들이 와인 산업의 새 강자가 될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가장 대표적 한국 기업은 한화솔루션이다. 한화솔루션은 지난 6일 미국 법인 한화솔루션USA홀딩스코퍼레이션을 통해 나파밸리의 세븐 스톤즈 와이너리를 3,400만달러에 사들였다. 세븐 스톤즈 와이너리는 총 195만9,000여스퀘어피트 부지에 유기농 포도밭, 와이너리, 레지던스 등으로 구성돼 있다. 

한화솔루션이 인수한 세븐 스톤즈 와이너리는 최고급 컬트 와인 생산지로 유명하다. 컬트 와인이란 놀랄 만한 맛이지만 구하기가 힘들 정도로 생산량이 적어 열광적인 추종자(컬트)를 확보하고 있는 와인을 뜻한다. 프랑스 유명 와인 산지 보르도 와이너리들이 보통 연간 20만~30만병을 생산하는 데 반해 세븐 스톤즈에서 매년 만드는 와인 병 수는 3,600병에서 최대 6,000병에 그쳐 희소가치가 매우 크다.

신세계의 경우도 올해 2월 부동산개발 회사인 신세계프러퍼티를 앞세워 나파밸리의 셰이퍼 빈야드를 인수한 바 있다. 셰이퍼 빈야드는 한 해에 총 40만 병이 넘는 와인을 만든다. 한화솔루션이 사들인 세븐 스톤즈 와이너리에 비하면 포도밭 규모만 해도 10배 이상 넓다. 인수 금액도 2억5,000만달러인데 이전 10년 동안 중국계 자본이 사들인 나파밸리 와이너리 전체를 다 합친 금액을 넘는 최대 규모로 신세계는 현재 북미 지역에서 생산되는 프리미엄 와인을 대량 또는 독점적으로 확보할 수 있는 공급선을 확보한 것으로 평가된다.

또한 나파밸리 와이너리에 자리 잡고 있는 한인 중소기업들도 있다. 한인 최초로 나파밸리 와이너리를 소유한 이희상 운산그룹 회장이 그 주인공으로, 지난 2004년 리빙스턴 와이너리를 인수해 다나 에스테이트를 열었다. SM엔터테인먼트의 창립자인 이수만 회장의 나파밸리 이모스 와이너리에서 생산하는 이모스 나파 리저브 2019년산은 유명 와인 평론가 안토니오 갈로니로부터 96점의 평점을 받을 정도로 품질을 인정받고 있다.

OB맥주 시절 '마주앙'의 신문광고

▲한국의 와인 역사

그렇다면 한국의 와인역사는 어떻게 될까? 1970년대 초 식량 부족에도 많은 양의 곡물이 술을 만드는 데 사용되자 박정희 대통령은 큰 고민에 빠졌다고 한다. 게다가 외국 정상들이 한국을 국빈방문 했을 때도 마땅히 내놓을 대표 술이 없었다. 그래서 발굴해 낸 것이 ‘경주법주’였는데 문제는 국민들이 하루 삼시세끼를 먹기에도 부족한 마당에 곡주를 제조한다는 것은 무리였고 차마 ‘금주령’을 내릴 수 없었던 대통령의 입장에서 당시 대한상공회의소 의장이자 OB맥주를 생산하는 동양맥주의 고 박두병 두산그룹 창업회장에게 곡주를 대체할 포도주를 만들라고 지시한데서 비롯되었다. 

이전, 박정희 대통령은 방한한 독일 대통령 뤼프케에게서 독일 모젤와인을 선물로 받았는데 정작 자신은 선물할만한 와인이 없어서 난감했던 경험도 있었다. 1973년 와인 개발 작업에 본격 착수해 독일의 라인·모젤 지방과 유사한 기후·토양을 지닌 경북 영일군 청하면에 포도원을 조성했으며 1974년 ‘국민주개발정책’을 정부에서 내놓음으로서 활기를 띄게 되었다고 한다. 

놀랍게도 ‘마주앙’이라는 말은 외래어가 아닌 순 우리말이다. ‘마주 앉아서 즐긴다’는 의미가 있다고 한다. ‘88 서울 올림픽’을 계기로 와인 수입 자유화가 이루어진지 35년이 지났다. 두 차례 경제위기에도 불구하고 한‧칠레 FTA 체결, 와인 만화 붐, 와인 수입 면허 자유화, 대형마트의 와인 유통 시장 본격 진출 등  2000년대 와인 시장 성장에 기여한 요인들로 인해 한국은 미국에 이어 세계 2위의 와인 시장으로 자리매김한 상태다. 이번 인수를 계기로 언젠가는 나파밸리의 경험을 이식하여 한국와인이 세계를 재패할 날도 오지 않을까 하는 꿈꿔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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