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영화 경제학(62)/ 욕정과 광기’의 미학 다나카 노보루
일본영화 경제학(62)/ 욕정과 광기’의 미학 다나카 노보루
  • 이훈구 작가
  • 승인 2023.01.28 13:4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다나카 노보루(田中登)감독

‘다나카 노보루’(田中登)감독은 제78회 베니스 국제 영화제의 클래식 부문(베니스·클래식스)에 있어서 1974년의 작품 ‘(비) 색정 암컷 시장’(㊙色情めす市場)의 4K 디지털 복원 판이 선출되어 상영되었다. 그는 닛카쓰(日活) 로망포르노(ロマンポルノ) 사상 최초로 세계 3대 영화제에 초청 받았으며 평단의 지지를 가장 많이 얻어낸 감독이다. 

영화 ‘고베국제갱단’(1975)

지난 2009년 전주국제영화제에서도 ‘다나카 노보루의 밤’이 열려 화제가 되었고 특히 ‘극으로 치닫는 인간의 광기와 욕망, 성에 대한 집착을 적나라하게 보여 준다’는 소개를 남겼다. 물론 로망 포르노의 전성시절에도 ‘고베국제갱단’(神戸国際ギャング, 1975)을 연출하는 등 ‘야쿠자 영화’로도 큰 인기를 끌었지만 영화 곳곳에 에로틱한 요소들을 삽입하여 장기를 발휘 했다. 

권총만으로 만족하지 못해 소총과 기관총은 물론이고 바주카포와 수류탄이 난무하고 피가 질펀한 상황으로 몰고 가면서도 에로틱한 요소가 가미되어 확실한 볼거리를 제공했다는 평가를 받은 것이다. 일본 영화평단에서는 이를 두고 ‘다나카 미학’(田中美学)이라 부르며 초현실주의적 작품세계라는 평가를 내렸다.

▲규칙에 충실했던 데뷔작
나가노현 하쿠바무라(長野県白馬村)출신으로 메이지대학교(明治大学) 문학부(文学部)에 재학 중 구로사와 아키라(黒澤明)감독의 ‘요짐보’(用心棒)에 야외촬영 로케이션 조수로 참여 한 후 영화에 매료되었다. 불문학을 전공하고 소설가가 되려던 그는 ‘영화감독’으로 진로를 바꾸고 1961년 닛카쓰(日活)에 입사하여 이마무라 쇼헤이(今村昌平), 스즈키 세이준(鈴木清順) 감독의 조감독을 거치며 탄탄하게 감독수업을 받았다. 

때마침 도산 위기였던 닛카쓰가 ‘로망 포르노’를 런칭 하자 그는 이것을 절호의 기회로 받아 들였다. 다른 감독들과는 달리 ‘새로운 장르’로 생각하고 자신의 예술을 실현할 장으로 여겼다고 한다. 다만 작품 편수가 많은 편은 아니었고 리얼리티에 구애받지 않는 초현실적이고 상상적인 이미지 중심의 영화를 표방하며 비주얼에 매우 신경을 썼다고 한다. 그는 1972년 로망 포르노 영화인 ‘꽃잎의 물방울’(花弁のしずく)로 데뷔하였다. 

로망 포르노계의 스타였던 ‘나카가와 리에’(中川梨絵), 그리고 이 연재에서 수차례 언급한바 있는 ‘시라카와 카즈코’(白川和子)가 등장하는 것만으로도 화제인 영화였다. 결혼을 했지만 불감증에 빠진 여인과 그 남편의 불륜이 주요 소재다. 여인이 끝내 그 원인을 알아내고 난 후 비로써 ‘성의 쾌락과 기쁨’을 알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여배우의 리얼한 연기가 일품이었다는 평가를 받은 작품이다. 물론 회사의 방침에 철저히 순응하여 만든 로망 포르노 영화였기 때문에 그 ‘규칙’에 충실했으며 노출수위로 인해 ‘영륜’(영화윤리위원회)을 긴장시키기는 했지만 무난한 데뷔작이었다. 그는 자신의 데뷔작에 대하여 ‘전후 일본사회의 정신적 타격을 은유적으로 다루기 위해 젊은 여성의 경험을 끌어온 것’이라고 술회했다. 

영회 '(비) 색정암컷시장'(1974)

▲탐미적이고 정교한 연출
때로 그는 파격적인 연출로 충격을 주고자 했다. 닛카쓰 소속 감독들 중 가장 비주얼이 뛰어난 감독이면서도 에도 시대의 엽기적이고 퇴폐적인 일본 풍속화인 우키요에(浮世繪)의 전통을 명확히 이어나갔다는 평가도 잇따랐다. 탐미(耽美)적이고 정교한 연출로 높은 평가를 받아 1975~1978년에 걸쳐 3편의 영화가 키네마 순보 베스트 텐에 들어갔는데 이때부터 로망 포르노의 에이스 감독으로 통했다. 

이를 계기로 ‘규칙’에 얽매이기 보다는 파격을 선택하기도 했다. 그의 대표작은 ‘(비) 색정 암컷 시장’이다. 일본의 근대화속에서 매춘으로 살아가는 모녀와 정신 지체 아들의 비극적 가족사를 그렸다. 1960년대 오사카를 배경으로 19살 난 매춘부와 엄마, 그 주변부의 삶을 흑백화면, 핸드헬드 카메라, 탄탄하게 짜여진 구도와 치밀한 서사구조로 다뤄 ‘유럽 예술영화의 미학을 표방했다’는 찬사를 받은 작품이다. 

필자에게는 ‘왕가위’(王家衛)감독이 오버랩 될 만큼 독특한 영상미가 생생했던 작품으로 다나카의 전성기가 이 영화로 시작되었다. ‘세리 메이카’(芹明香)가 딸, 미야시타 준코(宮下順子)가 엄마로 등장하는데 두 사람 모두 직업은 창녀로 둘 사이에도 시기와 질투가 수시로 오간다. 때문에 딸 옆에서 버젓이 몸을 섞는 엄마와 정신지체 남동생의 성욕을 해결해주는 누나가 등장하는 막장 드라마로 치닫지만 덥고 습한 여름날 핸드헬드로 촬영된 흑백화면을 통해 리얼리즘의 진수를 보여주는 것이 그 특징이다.

영화 '꽃잎의 물방울'(1972)과 '실록 아베사다'(1975)

▲‘쇼와’(昭和)3부작
흔히 다나카 노보루의 ‘쇼와 3부작’은 직설적으로 사도마조히즘적인 섹슈얼리티를 표출했던 작품들로 동시대를 배경으로 한다. ‘실록 아베 사다’(実録阿部定, 1975)로 시작하여 ‘다락방의 산보자’(屋根裏の散歩者, 1976), ‘미인난무: 고문!’(発禁本「美人乱舞」より 責める!, 1976)로 이어진다. 3편 모두 히로인이라면 ‘미야시타 준코’라는 점과 파격적 소재 및 기이한 성적행각들로 충격을 주었는데 모두 다 ‘키네마 준보’(キネマ旬報) 베스트 텐에 오르며 비평과 흥행에서 큰 성공을 거두었다. 

‘실록 아베 사다’는 연인을 살해하고 그의 성기를 자른 아베 사다의 유명한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로 이미 우리 연재에서 한번 자세히 언급한 바 있다. ‘다락방의 산보자’는 일본 추리소설의 대가인 에도가와 란포(江戸川乱歩)의 원작을 각색한 작품으로 검은 베일을 쓴 귀부인의 하숙집에서 벌어지는 기이한 성적 행각과 살인사건을 훔쳐 보는 자(관음증)의 시선으로 다뤘다. 

‘미인난무: 고문!’은 ‘포박’(緊縛) 화가 이토 세이우(伊藤晴雨)와 창녀의 관계를 사도마조히즘(Sado-Masochismus)으로 풀어낸다. 여성을 고문하며 예술적 영감을 받게 되면서 자신의 그림을 위해 점점 더 고문에 빠져나오지 못하는 화가와 창녀의 이야기는 파격, 그 자체였다. 쇼와 3부작 중 평단의 반응은 가장 차가웠지만 흥행에서는 가장 뜨거운 반응을 얻은 작품이기도 하다. 

로망포르노 영화의 규칙과 주제를 훨씬 벗어나 지나치게 가학적인 성적묘사를 시도하여 관객들이 열광했고 오늘날까지 찬사가 이어지고 있다. 사실 일본의 로망 포르노 영화에서의 핵심 포인트가 있는데 그건 바로 ‘결박’(포박)에 관한 장면들이 빈번하게 등장한다는 것이다. 시대극, 현대극 상관없이 등장하는 결박 장면은 촬영현장에 고용된 ‘결박’ 전문가에 의해 연출 되었는데 푸근한 몸매의 여배우들을 선호했으며 정교하게 줄을 감을 때마다 보여 지는 살집은 혈기왕성한 로망포르노 관객들에게는 큰 즐거움을 느낌과 동시에 ‘미학’으로 받아들여졌다. 

여배우 나카지마 아오이(왼쪽),나카가와 리에(오른쪽 위), 세리 메이카

여배우들은 스크린 상에서 어떠한 굴욕과 학대도 감내할 준비가 돼 보였다. 따라서 로망 포르노영화에 유독 ‘밧줄’이 들어가는 제목이 많은데 이에 영감을 부여한 이가 바로 오늘의 주제인 ‘다나카 노보루’인 것이다. 이 영향을 가장 많이 받은 영화사는 ‘신도호’(新東宝)로 믿기 어려운 여성의 성공 뒤에는 역설적으로 여성을 혐오하는 남성의 잔혹한 고문 장면들이 누적되었다는 이른바 ‘고문시대극’으로 발전시키기도 했다.

이 새로운 외설적인 형식은 1960년대 핑크필름들이 메타포로 사용하던 ‘강간’의 연장선인데 오히려 이게 매력 포인트로 작용함은 물론 감상 하는 관객들도 죄책감을 느끼지 않으면서도 ‘고문 레퍼토리’에 익숙해져 버리는 결과를 초래했다. 이 역시 에도시대의 고문 장면을 그린 목판화들에서 유래된 것이고 실제로 타이틀 시퀀스에 삽입되었다.

영화 '암고양이들의 밤'(1972)

▲금기를 깨기 위한 시도들
다나카 노보루 하면 가혹한 여성 학대 장면을 떠 올리기 마련이지만 금기를 깨는 이 같은 시도는 닛카쓰의 입장에서는 성인용 소재에 집중하던 시기라 예술적으로 야심찬 시도를 했다고 생각했고 또 그 역시 이런 프로젝트를 만들기로 유명했다. 당시 로망 포르노에 종사하는 감독들이나 배우, 스텝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자신들이 도덕적이거나 지적으로 우월감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또한 장르의 한계를 아주 정확히 인식하고 있었다. 다나카 노보루의 가장 강력한 경쟁자였던 오시마 나기사(大島渚) 조차도 “이른바 로망 포르노라 불리는 닛카쓰의 영화 대다수는 섹스를 소재로 삼지, 주제로 다루지 않는다.”고 이야기 할 정도였다. 따라서 다나카 노보루는 ‘세련되고 관습적인’ 에로 영화를 탈피하고자 했다. 

물론 섹스를 중심으로 한 고정 생산 라인에 맞춰 스튜디오 시스템 안에서 만들기는 했지만 연기는 강렬했고 영화는 세심하면서도 창조적으로 제작되었으며 시대의 미학과 어우러져 우아하게 표현되었다. 남성관객들에 대한 (눈요기)서비스 정신도 강했다. 여배우의 드러난 가슴과 허벅지가 가장 잘 보이는 것을 최우선으로 조명, 장면 구성, 연기를 결정했으며 잘 포장된 성행위를 보여주면서 스크린 속에서 생생하게 퍼포먼스를 펼치도록 한 것이다. 

그러다 보니 그는 예술적 시도도 자주했는데 ‘실록 아베 사다’에서 사다가 젓가락으로 버섯을 집어 다리 사이에 넣고 질에 담근 후 기치에게 먹이는 것 같은 전설적 장면들이 그 전형적 예라고 할 수 있겠다. 1970년대 말 자신의 로망포르노 시대를 마감하듯 내놓은 두 편의 걸작이 바로 그렇다. ‘키네마 준보’ 베스트에 선정된 ‘유부녀 집단폭행치사 사건’(人妻集団暴行致死事件, 1978)과 일본 아카데미 우수감독상을 수상한 ‘핑크살롱 5인의 호색녀’(ピンクサロン 好色五人女, 1978)에서 절정을 이룬다. 

이 영화들은 스크린 밖의 관객들로 하여금 수동적 목격자가 되어 스크린 속 자신들의 정사를 똑바로 인지하도록 강요한다. ‘유부녀 집단폭행치사 사건’의 경우 세 명의 야쿠자가 다이조의 아내 에미코를 참혹하게 강간한다. 학대를 견디지 못한 에미코가 죽지만 다이조는 아내의 죽음을 받아들일 수 없다. 

아내의 사체를 집으로 가져온 다이조는 사체를 목욕시키고 마치 살아있는 사람처럼 대하면서, 급기야 사체와의 섹스를 시도한다. ‘핑크살롱 5인의 호색녀’는 스트리퍼, 유부녀 등의 여자들이 핑크 살롱의 호스티스가 되어 전락해 가는 모습을 그린 이하라 사이카쿠(井原西鶴)의 ‘호색 5인 여자’(好色五人女)를 바탕으로 영화화한 것이다. 업소생활과 그 이후 평범한 여성들의 생활을 동시에 그려내 평단의 지지를 받았다. 

다나카 노보루 감독

▲시인이 되려고 했던...
젊은 시절의 그는 시를 쓰는 것을 매우 좋아했다고 한다. 시와 영화 사이의 연관성에 대해서도 깊이 연구한 감독이다. 그는 “시 속의 어구는 각각 무수한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 다른 말로 이야기 하자면 각 시구는 수많은 상상을 보여준다. 그래서 나는 거꾸로 이미지를 사용해 나의 시적 세계를 표현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나는 영화라는 이미지적인 세계야말로 탐구해야 할 그 무엇이라고 생각한다.”라고 이야기했다.

그는 닛카쓰에서 약 25편 미만의 작품을 만들었고 도에이에서 두편의 로망 포르노가 아닌 장편영화를 만들었다. 때로는 여러 감독이 이미 제작했던 시리즈물을 보란 듯이 만들어 원작을 넘어서는 연출력을 보여줬다. 이치가와 아야코(市川亜矢子)주연의 영화 ‘여교사의 사생활’(女敎師 私生活, 1973)은 가장 오래도록 인기를 끌었던 초기 시리즈물 중 하나였다. 

에도가와 란포(본명  히라이 다로)

영화 속에서 여교사 나오미는 제자인 겐지와 교실에서 뿐만 아니라 밀회 장소인 아파트에서도 동침한다. 그러던 어느 날 겐지가 아직 처녀인 학급친구 가즈코를 데려와 처녀성을 빼앗고 이로 인해 나오미와의 관계가 틀어지게 된다. 이후 나오미는 복수하듯 동료교사 사가구치와 러브호텔로 가게 되고 이후 둘의 관계는 비극적 결말을 향해 치달으면서 교사였던 나오미의 지위마저 위태로워진다. 이 영화는 ‘영화예술’(映畫藝術)이 선정한 올해의 베스트 영화 8위에 선정된다. 

다나카 노보루는 이처럼 한 여자를 중심으로 그녀의 주위에 살고 있는 다양한 인간 캐릭터들의 하루하루 일상을 인상적 장면 위주로 조합한 콜라주로 인기를 끌었다. 특히 시나리오 작가들을 여성으로 기용하는 파격을 택하여 많은 영화들의 섹스 장면이 여성주도로 이루어지는 것이 그 특징이다. 아마도 이러한 시도가 로망 포르노감독이면서도 일찌감치 비평적 성공을 거두고 1960년대 후반 유럽 예술영화를 연상시킨다는 평가를 받게 된 이유다. 이 장르에서는 드물게 공감할 만한 여성캐릭터를 제시하여 주류평단의 찬사를 얻은 것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