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브리띵’의 양자경 아시아계 최초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시상식장 레드 카펫, 62년 만에 샴페인 색으로 바꿔
‘인디아나 존스’ 아역 배우 출신 키 호이 콴, 남우조연
<미국 LA=이훈구 작가(재팬올 미국대표)> 전 세계 영화인들의 축제인 제95회 아카데미상 시상식이 12일(현지시각) 미국 로스앤젤레스 돌비극장에서 열렸다. 지난해 아카데미상 시상식에서 있었던 ‘악동’ 윌 스미스의 난동을 상기시키면서 흥행을 예상하며 크리스 락에게 사회자를 제안했으나 거절당했다는 일화가 전해 올 만큼 이번 시상식은 ‘추문’을 남기지 않기 위한 노력이 엿보였다는 평가다.
이를 의식한 듯 사회를 맡은 ‘지미 키멜’(Jimmy Kimmel)은 시종일관 ‘안전’에 대해 강조했다. 89회, 90회에 이어 3번째로 MC를 맡게 되었으며 ABC방송의 간판 MC이며 코미디언인 그는 "우리는 여러분이 즐겁게 보내고 안전하다고 느끼길 바라며 가장 중요하게는 내가 (맞지 않고) 안전하기를 원한다"는 뼈 있는 말로 시작했다.
이후 “만약 내 농담을 듣고 화가 나서 무대로 올라 오고 싶다 하더라도 여러분들을 막는 분들이 있기 때문에 쉽지는 않을 것”이라며 “여러분은 양자경, 만달로리안, 스파이더맨, 파멜만스를 상대해야 할 것”이라고 유머스런 대화를 던졌다. 물론 이름이 불리울 때마다 해당 배우들은 카메라에 얼굴이 잡히는 즉시 저마다 제스처를 취해주며 화답했다.
이번 아카데미상의 화제는 단연 ‘에브리띵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Everything Everywhere All at Once, 2022, 이하 에브리띵)였다. 한국의 다수 언론들은 이 영화가 ‘멀티버스’에 관한 영화라는 견해를 내놓고 있으나 미국의 언론들은 이제야 할리웃이 ‘이민자의 삶’을 제대로 들여다 보기 시작했다는 반응들이다.
이민자의 나라이면서 이민자들에 대한 제대로 된 영화가 많지 않았다는 ‘자기 반성’이었다는 이야기다. 다니엘 콴, 다니엘 샤이너트 감독의 공동 연출이었던 이 작품은 미국에 이민 와 힘겹게 세탁소를 운영하던 에블린이 세무 당국의 조사에 시달리던 어느 날 남편의 이혼 요구와 삐딱하게 구는 딸로 인해 대혼란에 빠지게 되면서 일어나게 되는 이야기다.
여기까지는 매우 평범하다고 할 수 있겠지만 아시아계 미국인 가족이 겪는 현실적 고충과 세대 갈등을 ‘SF 장르’로 표현해 호평을 받았다. ‘멀티버스’안에서 주인공은 수천 수만의 자신이 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음을 알고 인식하며 위기의 세상과 가족을 구한다는 이야기이다.
만약 이 영화가 요즘 흔하디 흔한 ‘멀티버스’ 컨텐츠였다면 결코 아카데미상을 수상 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영화는 단순한 멀티버스가 아니라 ‘아시아계 미국인’들의 이야기를 건드렸다. 흑인들에게 밤낮 뺨 맞고 화풀이 할 곳조차 없는 ‘아시안 이민자’들의 이야기였던 것이다. 사실 이 영화는 필자에게도 많은 위로가 되었다.
이민자의 나라라는 미국에서 아시안들이 경험하는 설움은 많다. 특히 흑인들의 보복 범죄의 표적이 되는 것이나 ‘차이나 포비아’ 때문에 모든 동양인들이 ‘중국인’ 취급을 받는 것도 대단한 유감이고 현실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영화 ‘에브리띵’의 세계적 흥행이 시사하는 바는 대단하다고 할 것이다. 여타의 멀티버스 영화들이 다른 유니버스에서 온 영웅이 현실의 유니버스에서 활약을 하고 있다면 이 영화는 그 자신의 영혼이 자신의 유니버스에서 활약하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3개의 에피소드가 하나로 모아 지는 구조다. 그래서 제목이 길다. 파트1은 ‘에브리띵’(everything)이다. 한 공간에서 다른 유니버스의 에블린(양자경)을 호출하는 설정(버스 점핑)이다. 파트2는 ‘에브리웨어’(everywhere)로 다른 유니버스로 에블린이 들어가 빌런인 ‘조부투파카’와 대결하면서 여러 유니버스를 경험하게 된다는 이야기이다.
파트3은 ‘올 앳 원스’(all at once)로 당연히 흑화된 에블린과 ‘조부투파카’의 대결 끝에 위기 극복을 한다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 영화가 주고자 하는 메시지란 다름 아니다. 비록 가족이라는 울타리에 살고 있지만 각자 다른 ‘유니버스’에 살고 있고 ‘나’에게는 모두 ‘멀티버스’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를 이해하게 되는 것이 결국은 바로 ‘가족’이라는 소중한 메시지를 주고 있는 것이다.
영화 속 에블린은 다른 유니버스를 통해서라도 위기의 가정을 구하게 된다. 특히 유머와 감동이 있으며 저예산 영화였기 때문에 화려한 액션에도 불구하고 그 흔한 CG조차 하지 않았다는 후문이다. 엄청난 예산을 쏟아 부으면서도 영화적 노력을 게을리하고 숱하면 CG로 처리해 버리는 한국 영화계가 깊이 반성할 대목이다.
특별히 이번 아카데미 시상식은 ‘인간승리’의 감동이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아시안 최초로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양자경’(楊紫瓊, Michelle Yeoh, 량쯔충)의 스토리는 물론 남우 주연상을 수상한 브렌든 프레이저(Brendan Fraser)의 재기와 부활에 초점이 맞춰졌다. 두 사람 모두 이번 아카데미상 남녀주연상을 수상하면서 감동을 선사해 주었다.
양자경은 우리에게는 낯설지 않은 배우이다. 많은 언론들이 ‘양쯔충’이라는 이름으로 표현 했지만 필자에게는 여전히 홍콩 영화 황금기를 빛낸 ‘양자경’이다. 양리칭(楊麗菁, Cynthia Khan)의 ‘예스 마담’과 헷갈리면 안 된다.
필자는 찬란했던 1980년대 ‘홍콩 영화 황금기’의 추억을 결코 잊지 못할 것이다. 만화 가게에서 돈을 주고 비디오로 보았던 이른바 날개 극장(재상영관)에서 ‘비 내리는 화면’으로 보았던, 이도 저도 아니면 집에서 비디오 플레이어로 빌려 보았던 간에 당시 주구장창 보던 것이 ‘홍콩 영화’였다. 성룡, 홍금보, 원표로 이어지는 무술영화나 주윤발, 장국영, 유덕화가 나오던 ‘홍콩 느와르’뿐만 아니라 양자경과 양리칭 등이 등장하는 ‘여성 액션’ 영화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그중 양자경의 액션은 남달랐다.
지금도 양리칭보다 더 주목을 받는 이유다. 그녀는 미스 말레이시아 출신의 화교로 결혼과 이혼이라는 부침 속에서도 컴백해 홍콩 영화계를 빛내더니 ‘007 네버 다이’(Tomorrow Never Dies, 1998)에서는 기존의 본드걸 이미지를 확 바꿔 버렸다. 단순하게 빌런에게 붙잡혀 제임스 본드의 구출을 기다리는 ‘본드걸’이 아닌 미녀 첩보원으로 등장하여 함께 악당들을 물리친다. ‘와호장룡’에서의 아트적 무술연기는 덤이고 이번 ‘에브리띵’에서도 현란한 쿵푸를 대역 없이 소화했다.
브렌든 프레이저는 더 웨일 (The Whale, 2022)을 통해 영화의 카피처럼 ‘일생에 단 한번 해낼 수 있는 연기’를 통해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한국의 평론가들은 이 영화를 두고 ‘퀴어 영화에 가족주의를 교묘하게 섞었다’고 맹비난했지만 아카데미는 물론 베니스영화제 역시 이 영화를 주목하고 있다.
그는 영화 ‘미이라’를 통해 스타덤에 올랐지만 이후 잦은 부상으로 수술과 재활을 반복했고 골든글로브를 주관하는 할리우드외신기자협회(HFPA) 회장에게 성추행을 당하면서 우울증에 시달렸다고 2018년 인터뷰에서 밝혔을 만큼 순탄치 못한 배우 생활을 이어 오고 있었다. 그런 그가 ‘더 웨일’(The Whale, 2023)을 통해 동성연애 때문에 가족을 버린 몸무게 272kg 초고도비만 남성 역할로 돌아왔다. 젊은 날 ‘미이라’의 릭 오코넬은 훤칠한 덩치와 강인하지만 푼수 같은 매력이었다면 세월이 흐른 지금 ‘더 웨일’에서 보여 지는 그의 모습은 마치 그동안의 삶이 연상 되어질 만큼 처절하다.
초고도비만으로 생의 마지막을 준비해야 하는 한 남자의 이야기. 그러나 이 남자가 평범하지는 않다. 그는 동성애자로서 잃어버린 ‘동성 연인’에 대한 상처가 있고 생의 마지막이지만 써야 할 글이 있으며 아내와 딸에 대한 미안함으로 강박적 폭식을 했던 과거가 있는 만큼 반드시 화해를 해야 할 딸이 있다. 제목이 왜 ‘고래’인지 고개가 끄덕여지지만 스포일러가 될 것 같아 적지 않기로 한다.
거의 대부분 장면이 주인공의 방이고 소제가 ‘퀴어’이며 흔한 CG 없이 분장의 힘과 스토리텔링으로 버티는 저예산 영화이지만 제79회 베니스영화제에서 무려 6분간이나 기립박수를 받을 만큼 감동적인 작품이다. 사무엘 헌터(Samuel Hunter)의 동명 연극이 원작으로 찰리가 “난 알아야겠어! 내 인생에서 잘한 일이 하나라도 있단 걸!”이라는 대사만큼 깊은 울림을 주는 영화다.
이번 아카데미 시상식을 보면서 ‘WBC 야구’의 씁쓸한 결과들이 떠오른 것이 이곳 미국의 교포사회다. ‘우물 안 개구리’. 더도 아니고 덜도 아닌 한국 영화계를 바라보는 시선인 셈이다. ‘헤어질 결심’이 왜 아카데미상 후보작에 오르지 못했냐는 자조 섞인 이야기에 앞서 세계 영화의 흐름을 읽지 못하는 현실을 되돌아 보아야 한다는 점이다.
아카데미상은 특성상 수 많은 로비를 통해 수상작과 수상자가 결정된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지구촌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스토리와 친절한 영어 시나리오도 뒷받침 되어야 한다는 것이 이번 아카데미상 시상식의 교훈이었다. 걸핏하면 100억원의 예산을 넘기고 이제는 예산 낭비로 자본이 없어 제작 편수를 줄이자는 한국의 영화계, 회전문 캐스팅과 비슷한 포맷, 걸핏하면 화려한 CG로 도배하지만 결국 내용은 빈약한 한국 영화계에 던지는 이번 아카데미상의 결과들은 시사하는 바가 많다.
마지막으로 이번 아카데미 시상식을 보면서 느낀 점은 ‘트렌드’를 제대로 읽는 것 뿐만 아니라 창조적으로 해석해야 한다는 점이다. ‘에브리띵’이 ‘멀티버스+이민자’였고 ‘더 웨일’이 ‘퀴어+가족애’라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하나만 바라 볼 것이 아니라 그 하나에 담겨진 여러 ‘담론’ 들을 다룸으로써 완성도가 더 컸다. 특히 “전성기가 지났다”는 말은 절대 믿지 말라는 말을 남긴 양자경, 베트남 보트피플 출신이면서 영화 ‘인디애나 존스’(영화Indiana Jones)시리즈의 아역배우 출신인 미국 배우 키 호이 콴(Ke Huy-Quan), ‘어두운 곳에서 빛을 찾아 나서는 이야기’라며 자신의 영화를 소개하고 감독과 스텝 모두에게 공을 돌리며 그들 때문에 “깊은 바다를 헤엄쳐 갈 수 있었던 고래가 될 수 있었다.”는 감동적인 소감을 밝힌 브렌든 프레이저를 보면서 ‘영화보다 더 영화적’인 축제로 남게 되었다.
주요 수상 내역은 아래와 같다.
▲ 작품상 = '에브리띵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 감독상 = 대니얼 셰이너트·대니얼 콴('에브리띵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 남우주연상 = 브렌던 프레이저('더 웨일') ▲ 여우주연상 = 량쯔충('에브리띵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 각본상 = '에브리띵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 각색상 = '워먼 토킹' ▲ 남우조연상 = 키 호이 콴('에브리띵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 여우조연상 = 제이미 리 커티스('에브리띵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 편집상 = '에브리띵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 촬영상 = '서부 전선 이상 없다' ▲ 미술상 = '서부 전선 이상 없다' ▲ 의상상 = '블랙 팬서: 와칸다 포에버' ▲ 분장상 = '더 웨일' ▲ 시각효과상 = '아바타: 물의 길' ▲ 음악상 = '서부 전선 이상 없다' ▲ 주제가상 = '나투 나투'('RRR: 라이즈 로어 리볼트') ▲ 음향상 = '탑건: 매버릭' ▲ 국제장편영화상 = '서부 전선 이상 없다'(독일) ▲ 장편 애니메이션상 = '기예르모 델토로의 피노키오' ▲ 단편 애니메이션상 = '소년과 두더지와 여우와 말' ▲ 단편영화상 = '언 아이리시 굿바이' ▲ 장편 다큐멘터리상 = '나발니' ▲ 단편 다큐멘터리상 = '아기 코끼리와 노부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