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훈구의, 일본영화 경제학(64) ‘사도 마조히즘의 도입’ 고누마 마사루
이훈구의, 일본영화 경제학(64) ‘사도 마조히즘의 도입’ 고누마 마사루
  • 이훈구 작가
  • 승인 2023.03.31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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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노마 마사루 감독

<미국 LA=이훈구 작가(재팬올 미국대표)> 닛카쓰(日活) 로망포르노(ロマンポルノ)의 ‘4대 감독’ 중 마지막으로 사도 마조히즘(Sadomasochism)으로 자신만의 색깔을 확실하게 드러냈던 고누마 마사루(小沼勝) 감독에 대한 이야기다. ‘구마시로 다쓰미’(神代辰巳), ‘다나카 노보루’(田中登), ‘소네 주세이’(曽根中生)에 이은 ‘로망 포르노’ 장르의 마지막 4번째 감독으로 기묘하고도 도착적인 에로티즘을 보여주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로망포르노에 사도마조히즘을 도입하여 좀 더 어둡고 강렬한 영화들을 내놓았으며 당대 프랑스의 소설가 겸 영화감독이었던 ‘알랭 로브그리예’(Alain Robbe-Grillet)와 작품 스타일이 많이 닮아 화제가 되었다. 

사도 마조히즘은 고통으로 쾌감을 느끼게 되는 것을 뜻하며 성적(性的)대상에게 고통을 줌으로써 성적인 쾌감을 얻는 이상 성행위를 뜻한다. 고노마 마사루의 이러한 경향은 두가지 반응으로 나타났다. 한편으로는 장르 출범 후 다소 지루해질 수도 있는 ‘로망 포르노’ 영화들에 있어서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었다는 점과 다소 ‘변태성욕’으로 비춰지는 특성상 비현실적이고 선정적인 문체가 거부감을 주기도 했다. 

사실 ‘페미니즘’이 판을 치는 21세기였다면 로망 포르노에서 그것도 사도 마조히즘적 영화의 양산은 불가능했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티븐 쉐인버그’(Steven Shainberg) 감독의 영화 ‘세크러터리’(Secretary, 2002)처럼 ‘조금은 색다른 사랑 이야기’로 받아들여지기도 하니 못 만들 이유는 없을 터이다. 고누마 마사루의 영화들에 대해서 로망포르노를 통해 단순한 포르노가 아닌 인간 본성에 다가가는 리얼리즘 작품들을 연이어 만들어내었다는 찬사가 쏟아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영화 '꽃술의 유혹'

▲외로움과 향수병을 영화로 달래
고누마 마사루는 교사였던 그의 아버지에 대한 기억을 전혀 가지고 있지 않다. 1937년생(홋카이도 오타루(北海道 小樽) 출신)이고 제2차 세계 대전에 징집된 아버지가 1년 만에 결핵에 걸려 고향으로 돌아가 사망했기 때문이다. 전쟁 후 어머니는 재혼을 했고 당시 15세였던 고누마 마사루는 도쿄에서 살게 되었다. 

그는 “그 당시에는 TV가 없었다. 나는 도쿄에 대해 전혀 몰랐다. 아프리카나 알래스카가 오늘날 아이들에게 있는 것처럼 내게는 거리가 멀었다. 나는 가고 싶지 않았다. 나는 울었다.”라는 말로 회상하였다. 이때부터 외로움과 향수병을 달래기 위해 영화관에 가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후 자연스럽게 니혼 대학(日本大學校) 예술학부에서 영화학을 전공했다. 졸업 직후인 1961년 다나카 노보루와 같은 시기에 닛카쓰 스튜디오에 입사하면서 이른바 ‘4인조 그룹’ 활동을 했는데 이를 두고 회사에서는 “성실한 유키, 게으른 오하라, 충실한 다나카, 무모한 고누마”라고 불리워졌다. 

입사 시기부터 고누마는 ‘무모하다’는 타이틀이 따라다녔고 클립보드를 담당하는 조감독으로 활동했다. 그는 결국 자신이 감독이 될 것이라는 희망으로 그 시절을 견뎌냈는데 ‘스즈키 세이준’(鈴木清順)이 롤모델이었다. ‘로망포르노’ 장르가 런칭 되자 많은 영화인들이 닛카쓰를 떠났지만 그는 절호의 기회로 보았다. 오히려 고누마 마사루는 “감독이 된 기쁨은 그 순간 그 무엇보다 컸으며 영화를 만들 수 있어서 행복했다.”는 회상을 할 만큼 ‘로망포르노’가 기회였던 것이다. 

영화 '여교사 감미로운 생활' 스틸사진

▲에로스 인터내셔널에 기여
그의 특기는 ‘밧줄 강간’ 판타지물. 이 연재물에서도 수차례 언급 되었던 다니 나오미(谷ナオミ)와 철떡궁합이었다. 풍만한 몸매의 소유자로 사도마조히즘(SM)적 주제를 다룬 대단히 힘든 영화들에 있어서 문자 그대로 그녀의 역할은 지대했고 그녀만을 위한 역할이 만들어질 정도였다. 

서구인들이 일본영화에 빠져들게 된 데에는 에로티시즘의 공헌이 컸고 그 이면에는 로망 포르노의 영향이 지대했는데 특히 고누마 마사루의 영화들과 다니 나오미의 등장은 이른바 일본영화의 ‘에로스 인터내셔널’(Eros International)이라는 신조어를 탄생시킬 정도로 큰 인기를 누렸다. 뉴욕 42번가의 연중무휴 영화관, 런던 소호의 섹스클럽, 빠리 피가로의 포르노 극장을 애용하는 이들이 친숙하게 느끼고 받아들일 영화들이었기 때문이다. 

1969년에 이미 키네마 준보(キネマ旬報)가 ‘핑크 영화는 해외로도 수출 된다’는 기사를 개재하고 어떤 영화가 어느 나라로 수출되었는지를 정확하게 나열할 정도였으니 ‘무모한’ 고누마 마사루야 말로 일본 영화의 수출 역군 쯤으로 여긴 게 당연했다. 당시 로망 포르노는 일본 내에서도 매우 대중적이었으며 폭넓은 문화적 지형을 형성하고 있었다. 

얼마나 장르가 인기가 있었는지 닛카쓰가 타 분야에서 활동하던 유명인들이 카메라 앞에서 옷을 벗게 하는데 별문제가 없었다. 따라서고누마 마사루는 캐스팅 운이 따르는 감독이었다. 그의 전성기에는 연기자 사회에서 가장 존경받던 배우들마저도 로망포르노물에 출연하기를 원할 정도가 되었기 때문에 ‘SM물’의 창작은 물론 캐스팅도 원활했기 때문이다.

영화 '가루이자와 부인'(1982)

▲가루이자와 부인
‘가루이자와 부인’(軽井沢夫人, 1982)은 고누마 마사루의 영화 중 가장 관심을 끈 작품이다. 닛카쓰 창립 70주년 기념으로 명명되었으며 로망 포르노의 연 1회 특별번호 ‘에로스 대작’(エロス大作)으로 상영됐다. 다카다 미와(高田美和)의 출연으로 큰 화제를 몰고 온 작품이다. 

그녀는 이미 자리를 잡고 활발하게 활동하던 존경 받는 연기자 집안 출신의 여배우였다. 아버지가 쇼지쿠(松竹), 지다이게키(시대극)의 스타였던 다카다 코요시(高田浩吉)였으며 조카가 청춘스타 ‘오후라 류우이치’(大浦龍宇一)일 정도. 이미 1960년대 다수의 영화에 출연했으며 1970년에는 ‘남자는 괴로워’(男はつらいよ) 시리즈를 연상시키는 ‘코미디 : 여자도 괴로워’(喜劇 女もつらいわ 1970)의 주연을 맡기도 했는데 이후 무려 12년 만에 컴백한 영화이기도 했다. 

플롯은 본질적으로 ‘채털리 부인’과 유사하지만 마지막 15분에 다다라서 갑자기 발생하는 죽은 시체와 관련된 음모나 몇 가지의 정치적 속임수 정도가 추가된다. 대학생인 신이치는 아르바이트를 하며 공부를 하고 있다. 명목상 호화 층 전용 리조트 타운에서 웨이터로 일하게 된다. 일본 부유층들만의 공간인 만큼 높은 권력자나 기업가들의 파티가 열린다. 

신이치는 여기서 요시코(다카다 미와)의 눈과 마주치게 되는데 그녀는 이른바 ‘트로피 와이프’(トロフィーワイプ, 나이 많은 남자의 젊고 매력적인 아내)이다. 자신의 실수로 갑자기 해고되는 신이치. 그런 그에게 새로운 기회가 찾아오게 된다. 바로 요시코의 아들을 위한 가정교사로 채용되는 것이다. 얼마 후 신이치는 요시코의 집으로 이사하게 되는데 남편 나카가와에게 싫증이 난 상태. 영화는 당연히 요시코가 신이치에게 빠져들면서 파국으로 치닫게 되는 것이다.

다니 나오미

▲꽃술의 유혹으로 데뷔
그의 데뷔작은 ‘꽃술의 유혹’(花芯の誘い, 1971)이다. 마 게이코(牧恵子)가 주연한 영화로 데뷔작부터 강렬했다. 주인공 야노 마사코(마 게이코)는 ‘여성 현대사’의 기자로 특종기사를 쫓아바쁜 날들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마사코는 뜻밖의 사건에 휘말려 폭행과 성폭력을 당하고 그 충격으로 기억을 잃고 폐인처럼 되어 버렸다. 의사의 진단에 따르면 강도에 의한 심신 상실로 이런 종류의 질병에는 받은 폭력을 재현하고 체험시키는 것 외에는 없다는 것이었다. 

이에 오빠와 연인은 마사코의 기억을 되찾아 주기 위해 여러 사람을 사주하여 강도의 폭행과 성폭력을 재연하게 하지만 그녀는 여전히 암고양이처럼 번민할 뿐이다. 그러던 중에 마사코가 쫓고 있던 특종을 조사한 결과, 그것은 반전(反戰)의식으로 탈영 흑인 병사들에게 있다고 보고 그 조직을 찾아가 마사코를 덮치게 하는데 순간, 기억이 돌아온다는 스토리다. 

다니 나오미의 특집기사를 다룬 잡지'성인영화' 23호

이후 회사의 방침에 의하여 ‘시리즈’물을 연출하게 된다. 여교사 시리즈의 첫 작품인 ‘여교사: 감미로운 생활’(女教師 甘い生活, 1973)이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시장은 점점 좀 더 어둡고 강렬한 로망포르노 영화를 원하고 있었다. 결국 그는 사도마조히즘에 도전한다. 바로 ‘꽃과 뱀’(花と蛇, 1974)으로 닛카쓰 로망포르노에 ‘SM 스타일’을 도입한 첫번째 영화로 기록되었다. 사도마조히즘 작가로 유명한 단 오니로쿠(団鬼六)의 원작에, 불행한 결혼생활을 하던 대기업 회장부인이 젊은 남자와의 관계에서 자신의 피학적 성애 취향을 발견하는 과정을 그렸다. 

다니 나오미(谷ナオミ)를 단숨에 ‘SM의 여왕’으로 만들어준 작품이다. 관객들의 열광적 호응에 힘입어 4개월 후 차기작인 ‘희생양 부인’(生贄夫人, 1974)을 연출하게 되는데 두 작품의 원작자인 단 오니쿠로가 하드코어 섹스 영화에 대한 반감이 클 정도로 파격적인 작품들이었다. ‘꽃과 뱀’의 성공은 1970년대를 거쳐 1980년대 중반에 돌아온 ‘시리즈’에 영감을 주었다.

영화 '수녀 루나의 고백'

▲수녀 루나의 고백
고누마 마사루는 1960년대 아이돌가수였던 혼혈 일본인 다카무라 루나(高村ルナ)를 캐스팅하여 ‘수녀 루나의 고백’(修道女ルナの告白, 1976)을 연출한다. 이 영화는 로망포르노의 하위장르인 ‘수녀 익스플로이테이션’(nunsploitation: 유럽에서 시작된 소프트코어 섹스영화의 일종으로 가톨릭 수녀를 주인공으로 한 B급영화)의 초기작으로 이후 여러 감독들에 의해 지속적으로 제작되는 인기 시리즈물로 남았다. 역시 엄청난 화제를 몰고 왔다. 

다카무라 루나는 왕년에 ‘골든하프’(Golden Half’라는 걸그룹의 멤버였고 1960년대 전성기를 구가한 바 있었다. 모든 멤버가 혼혈 일본인이었고 이중 단연 돋보였던 멤버가 바로 다카무라 루나였던 것이다. 고누마 마사루가 카리스마적 열정을 가지고 연출했으며 골든 하프의 멤버였던 다카무라 루나를 타락한 천사로 묘사한다. 영화 속에서 그녀는 호색한인 수도원장이 종을 당기는 줄에 자신을 묶었던 기억으로 괴로워하며 유럽의 수도원을 도망쳐 갑작스레 언니의 집에 나타나 고의적으로 미래의 형부를 유혹한다. 

여기까지는 별다를 것이 없으나 이후 파격의 연속이다. 그녀의 언니는 부유한 비즈니스맨 집단을 상대로 자신의 외음부 잉크 자국을 팔며 돈을 번다. 게다가 루나는 수도원 시절부터 알고 지내던 레즈비언과 함께 수녀가 쓰는 머리가리개를 벗지도 않은 채 버젓이 돈을 훔친다. ‘수녀물’이면서 여성 동성애와 신체 결박, 마스터베이션을 하는 수녀, 외음부의 자국 등이 등장하는 아주 괴이한 작품이었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이후 전 세계적으로 많은 아류작들을 양산해 낸다. 

영화 '나기사'

▲영화의 마지막 시기에 그랑프리도
1980년대에 접어들자 로망포르노 장르에도 위기가 찾아왔다. 이 시기 고누마 마사루는 성인용 비디오(Adult Video) 시장으로 눈을 돌려 저예산 하드코어영화 ‘상자 속의 여자: 처녀 제물’(箱の中の女 処女いけにえ, 1985)로 ‘AV 업계’에 진출하였다. 변태커플에게 납치되어 상자 속에 갇히게 되는 젊은 여성의 이야기를 긴 테이크의 실제 정사를 포함하여 거칠게 찍은 것이 그 특징이다. 

영화 '버스정류소에서 옷을 갈아입은 여자'

전편의 인기로 인해 속편인 ‘상자 속의 여자 2’(箱の中の女2, 1988)는 완성도를 높여 필름 영화로 극장개봉까지 한다. 그럼에도 세월을 이기지 못하고 1990년대에 들어서는 ‘V-시네마’(극장 개봉을 거치지 않고 비디오로 출시되는 영화) 시장으로 옮겨가 ‘작귀’(雀鬼) 시리즈로 마작의 세계를 다뤄 1992년부터 1999년까지 시리즈 중 총 8편을 연출한다. 

마지막 시기에 접어들어 그는 ‘나기사’(NAGISA なぎさ, 2000)로 국제영화제에 첫 진출하여 새로이 주목받았다. 베를린국제어린이영화제에서 그랑프리를 수상하였다. 1960년대를 배경으로 한 소녀의 성장담을 다뤄 호평을 얻어낸 것이다. 마지막 연출작은 ‘버스정류소에서 옷을 갈아입은 여자’(女はバス停で服を着替えた, 2003)이다. 

고노마 마사루 감독의 수제자 나카다 히데오 감독

한편 지난 2000년, 고누마 마사루 감독 밑에서 견습 생활을 한 나카다 히데오(中田秀夫)감독은 그의 멘토에 대한 다큐멘터리 ‘새디스틱 마조히스틱’을 제작했다. 한국에서는 영화 ‘링’(リング, 1998)으로 유명해졌고 최근에 리메이크 된 ‘스마트폰을 떨어뜨렸을 뿐인데’(スマホを落としただけなのに, 2018)로 유명한 감독이다. 그의 영화 스승이 바로 고누마 마사루로 그가 1971년 데뷔 이래 미의식과 사도 마조히즘의 세계를 탐닉한 감독의 영화 세계와 과거 배우 및 스탭들의 증언을 통해 로망 포르노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들을 들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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