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 미국 리포트/ 돈 맥클린의 ‘아메리칸 파이’
생생 미국 리포트/ 돈 맥클린의 ‘아메리칸 파이’
  • 이훈구 작가
  • 승인 2023.04.28 23: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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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 미국 방문 만찬에서 깜짝 열창
미국인들 40여년간 가사 진의를 밝히려 노력
'아메리칸 파이'를 부르고 있는 돈 맥클린(트위터)

<미국 LA=이훈구 작가(재팬올 미국 대표)> 12년만에 국빈 방문 중인 윤석열 대통령이 26일(현지 시각) 정상회담 이후 조 바이든 대통령이 백악관에서 주재한 국빈 만찬에서 애창곡인 돈 맥클린(Don McLean)의 ‘아메리칸 파이’(American Pie)를 직접 불러 화제다. 거의 모든 미국 주류 언론에서 이 장면을 편집하여 내보내는 등 모처럼 교포사회도 미국 뉴스에 등장하는 대한민국의 대통령의 모습을 반가워 하고 있다.

이날 바이든 대통령은 윤 대통령에게 돈 맥클린의 친필 사인이 담긴 통기타를 선물했다. 평소 윤 대통령이 돈 맥클린의 노래를 즐겨 듣는다는 점에 착안한 ‘깜짝 선물’이었던 것. 윤 대통령은 참석한 내빈들이 노래를 요청하자 “한미 동맹의 든든한 후원자이고 주주이신 여러분께서 원하시면 한 소절만 (부르겠다)”며 “근데 (가사가) 기억이 잘 날지 모르겠다”고 했다. 

곧이어 피아노 연주가 흘러나오자 윤 대통령은 마이크를 잡고 “A long long time ago, I can still remember how that music used to make me smile(아주 오래 전을 난 기억해. 그 음악이 얼마나 나를 웃게 해 주었는지)”라며 1분간 아메리칸 파이의 앞 소절을 열창했다. 

조 바이든 대통령으로부터 '돈 맥클린'의 친필 사인 기타를 선물받고 즐거워 하는 대한민국 윤석열 대통령

‘아메리칸 파이’하면 70년대 학창 시절, 팝송 책의 추억을 공유하시는 분들과 세기말 학창 시절을 보내신 분들의 기억이 다르다. 글자 그대로 제목을 해석하면 ‘미국식 파이’를 뜻한다. ‘아메리칸 파이’는 버터가 듬뿍 들어간 바삭한 크러스트 속에 상상할 수 있는 가장 맛있는 속이 숨어있는 미국을 대표하는 행복한 맛의 디저트다. 

신선한 휘핑크림, 바닐라 아이스크림, 잔뜩 부푼 머랭이나 체다 치즈 한 조각을 더 올리는 등(특히 북동부 및 중서부 일부 지역에서 인기 있는 방식) 미국에서 파이를 즐기는 방법은 끝도 없이 다양하며 ‘미국판 가정식 백반’을 파는 곳이라면 어김 없이 후식으로 나온다. 물론 남부의 경우에는 호두가 첨부된 아주 단 ‘피칸 파이’(Pecan Pie)가 대세다. 경우에 따라서 버터를 바르고 시럽을 부어 먹는 ‘펜케익’을 먹기도 하지만 대세는 당연히 ‘아메리칸 파이’다.

전형적인 '아메리칸 파이'

그렇다면 왜 ‘아메리칸 파이’라는 노래가 화제가 되었을까? 윤대통령의 학창 시절 애창곡임에는 분명하지만 이 노래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자녀들에 대한 추억도 담겨 있다고 한다. 특히 모범생이었던 장남 보 바이든(Joseph Robinette ‘Beau’ Biden III, 1969년 2월 3일 ~ 2015년 5월 30일)을 추모하는 의미가 있다고 한다. 물론 46세에 요절한 이 아들 때문에 가족은 한바탕 소동을 빚기도 했다. 

악동인 차남 헌터 바이든(Robert Hunter Biden, 1970-) 때문인데  형이 죽고 5개월 후 형수인 할리 바이든(Hallie Biden)과 열애를 하고 있음이 밝혀져 미국 전역에 큰 충격을 안겨 주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 바이든 대통령이 생전 보 바이든이 애창하던 이 노래에 대한 추억이 대단하다는 걸 잘 알 수 있다. 그리고 윤대통령 역시 70년대 학창 시절 주구장창 불렀을 노래다. 1972년 빌보드 핫 100 연말 차트에서 3위에 올랐던 곡이기 때문이다.

이 노래는 나온 지 50년 후 테일러 스위프트의 ‘All Too Well’(10 Minute Version)이 10분 13초로 기록을 경신하기 까지 세상에서 가장 긴 노래로 등재되어 있었다. 무려 8분이 넘는 곡이다. 돈 맥클린이 시인인 T.S 엘리엇(Thomas Stearns Eliot)의 장편 시 ‘황무지’(The Waste Land)에서 영감을 얻어 만들었다고 한다. 

가사의 내용은 요절한 선배 가수 버디 할리(Buddy Holly), 리치 밸런스(Ritchie Valens), 빅 바퍼(The Big Bopper)를 추모하기 위해 만들어졌다고 한다. 이들은 공통점이 있는데 요절했으며 음악의 선구자였다는 점이다. 가사는 매우 착잡하지만 역설적으로 곡 자체는 아주 흥겹고 신이 나는 게 특징이다. 

미국 락의 선구자이자 한날 한시에 동승한 비행기 사고로 요절한 버디 할리, 리치 발란스, 빅 바퍼 추모 앨범.

버디 할리는 1950년대 미국의 락(Rock ‘n’ Roll) 음악의 주도자이다. 그럼에도 영국의 밥 딜런(Bob Dylan), 비틀즈(Beatles), 롤링 스톤즈(The Rolling Stones), 에릭 클랩튼(Eric Clapton), 엘튼 존(Elton John) 등 상당히 많은 가수들에게 영향을 주었다. 리치 밸런스 하면 락 음악에서는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며 한국에서는 ‘라 밤바’(La Bamba)와 전기영화로 유명하다. 빅 바퍼 역시 마찬가지인데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인 만큼 철저한 고증을 거쳤으며 세 사람이 한 비행기에 탔다가 추락사고 요절한 비운의 천재들이다. 

가사에 각주까지 달아 놓은 게 그 특징인데 전부 6절로 되어 있으며 8분 32초나 걸리는 이 긴 명곡은 돈 맥클린에게 가사의 의미를 묻지 않는다는 조건 하에 녹음되고 공개되었다. 특이한 것은 1972년 히트한 이 곡에 대하여 뉴욕 출신의 돈 맥클린은 돌연 영국의 BBC 라디오에 출연하여 ‘발매 20주년’ 기념 인터뷰를 한다. 

생방송으로 진행된 이날 인터뷰에서 사회자 닉키 캠벨(Nicky Campbell)의 집요한 질문이 이어지지만 역시 그는 답하지 않았다. 락 음악에 대한 헌정곡이라는 것은 동의했지만 ‘And the three men I admire most The Father, Son and the Holy Ghost’가 위의 세 사람을 은유하느냐는 질문에 대해서도 대답하지 않았‘다. 

심지어 가사에 등장하는 ‘소녀’(girl)가 ‘제니스 조플린’(Janis Joplin)을 뜻하느냐는 질문에도 그냥 미소로 넘어갈 정도였다. 다만 그는 여러 인터뷰를 통해 이 곡이 ‘미국을 상징하는 서사시’이자 2차 대전 이후 물질적 풍요와 정신적 안정감의 최절정이었던 ‘1950년대의 미국’ 그리고 버디 할리의 전통을 계승하기를 원했던 것 만큼은 분명하다는 점을 시사했다. 

끝으로 이날 만찬장에서 공연을 한 브로드웨이 뮤지컬 정상급 스타들이 윤 대통령 열창을 곁에서 지켜보면서 박수를 보냈다. 뮤지컬 ‘미스 사이공’의 주연 레아 살롱가(Lea Salonga), ‘오페라의 유령’의 노먼 루이스(Norman Lewis), ‘위키드’의 제시카 보스크(Jessica Vosk) 등이었다. 

현역 가수들인 이들은 이 노래의 의미를 어떻게 받아 들였을까? 아마도 필자가 보기에는 올해 ‘한미동맹 70주년’을 맞이 하면서 옛날은 지나고 새로운 시기를 맞이하자는 의미로 받아들여졌다. 코리아타운의 교포들이 아침 출근길에 나눴던 이야기들도 이와 다르지 않았다. 현재 로스앤젤레스에서는 오는 8월 15일 ‘한미동맹 70주년’ 기념행사 준비로 매우 분주한 까닭에 ‘아메리칸 파이’는 더욱 화제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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