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훈구의, 일본영화경제학(65)/ 로망 포르노의 스타들(1)
이훈구의, 일본영화경제학(65)/ 로망 포르노의 스타들(1)
  • 이훈구 작가
  • 승인 2023.05.07 2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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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오가와 세츠코

<미국 LA 이훈구 작가(재팬올 미국대표)> 닛카쓰(日活) 로망포르노(ロマンポルノ)를 언급하면서 ‘4대 감독’에 대하여 다뤘다면 이번에는 여배우 열전(列傳)이다. 사실 인터넷을 통해 일본은 물론 서구의 포털 사이트에 로망 포르노를 검색하면 가장 많이 노출되는 여배우들의 이름들이다. 

가타기리 유코(片桐夕子), 오가와 세츠코(小川節子), 미야시타 준코(宮下順子), 이즈미 준(泉じゅん), 시라카와 가즈코(白川和子), 다니 나오미(谷ナオミ), 이사야마 히로코(伊佐山ひろ子), 가자마 마이코(風間舞子), 하야시 미키(林美樹), 다마 루미(珠瑠美), 마츠이 야스코(松井康子), 니조 아케미(二条朱実), 이노우에 마이(井上麻衣), 야시로 나츠코(八城夏子), 아사부키 아츠코(麻吹淳子), 다카쿠라 미키(高倉美貴), 시마 이즈미(志麻いづみ), 마츠카와 나미(松川ナミ), 아이조메 쿄코(愛染恭子), 카자마츠리 유키(風祭ゆき), 야마구치 치에(山口千枝), 미사키 나미(三崎奈美), 오타 아야코(太田あや子), 마부키 준코(麻吹淳子) 등이다. 

이들 외에도 언급할 여배우들이 많지만 그래도 이 장르가 마무리될 때까지 저마다 걸작들에 등장한 배우들이다. 이들 중 대부분은 계속 배우 생활을 이어 나갔으며 ‘로망 포르노’ 출신임을 당당히 밝혔다. 심지어 아이조메 쿄코처럼 정식 ‘포르노 영화 감독’이 된 배우도 생겨났으니 ‘로망 포르노’는 역설적으로 스타의 산실이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요즘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는 원로 배우들 중 일부는 젊을 때 출연한 로망 포르노 영화를 쉽게 접할 수 있다.

영화 '간호기숙사'

▲에로스 인터내셔널
초기 로망 포르노의 스타들로는 가타기리 유코(片桐夕子), 오가와 세츠코(小川節子), 미야시타 준코(宮下順子), 이즈미 준(泉じゅん)을 들 수 있다. 이들은 닛카쓰의 로망 포르노 런칭이 매우 반가웠을 것이다. 배우로서 기회이기도 했고 핑크 영화 제작사들과는 달리 규모가 큰 로망 포르노 영화들을 찍기 위해 좋은 제작 여건을 제공했다. 제대로 된 스튜디오를 지어 보기 드문 세트 촬영 장면을 진행하기도 했다. 

따라서 종종 스웨덴과 합작으로 포르노 영화(일명 스웨덴 포르노, スウェーデンのポルノ)를 제작하면서 로망 포르노계의 일본 여배우들 혹은 남배우들이 출연하는 일도 꽤 있었다. 명분은 ‘검열의 눈을 피한다’였는데 ‘에로스 인터내셔널’(エロスインターナショナル)에 기여 했음은 분명하다. ‘크리스털 홀그렌’(Crystal Holgren)같은 감독의 크레딧이 등장한다. 아예 스웨덴에서 현지 배우들로만 영화를 찍기도 한다. 따라서 일본에서 카리스마를 떨치던 로망 포르노 스타들의 연기 인생이 일본을 넘어서서 세계화로 나간다는 의미도 있었다. 

영화 '정염 오시치의 사랑 노래'

심지어 당시 영국의 주간지였던 ‘콘티넨털 필름리뷰’(Continental Film Review, 1952년부터 1984년까지 발행)가 대표적으로 최신 로망 포르노에서 가져온 짜릿한 사진들과 영화들에 대해 집중 조명하는 기사도 다수 실렸다. 물론 1970년대에 들어서서는 일본 영화는 곧 외설 영화와 거의 동의어가 되어 갔지만 이들에게 로망 포르노 혹은 일본의 핑크 무비들은 ‘새로운 일본’, ‘상반된 것이 공존하는 나라 일본’라는 제목으로 다뤄졌다. 

‘에로덕션’이 보편화되기 전 논평은 “지금은 섹스가 확실히 덜 강조되는 반면(일본 여성의 자연스런 아름다움이 충분히 매혹적으로 다가온다) 폭력성이 많은 비중을 차지 한다.”라고 결론을 내린다. 미국의 경우에는 1960년대와 70년대에 걸쳐 성적 착취 영화의 거물인 해리 노박(Harry Novak)의 박스오피스 인터내셔널 픽처스(Box Office International Pictures)와 원조 포르노 배우인 래들리 메츠거(Radley Metzger)가 설립한 배급회사 오듀본 필름(Audubon Films)이 앞장 서서 배급해 주었다. 

영화 '부유하는 세계의 여류 예술가'

독일의 경우에는 친절하게 상영정보들이 지금까지 잘 정리되어 남아있다. 세계적인 배급 네트워크가 존재했음은 확실하다. 물론 프랑스 육체파 배우 산드라 줄리앙(Sandra Julien), 스웨덴의 유명한 누드모델이자 ‘성적 착취 영화 스타’였던 크리스티나 린드버그(Christina Lindberg)같이 일본에서 활동한 외국 여배우들도 있다. 이 때문에 전반적으로 로망 포르노에 출연하는 일본 여배우들은 해외에서도 인지도가 높았다.

 

배우 가타기리 유코

▲가타기리 유코
가타기리 유코는 지난해 10월 16일 담관암으로 사망했다. 향년 70세. 도쿄도 출신으로 1970년에 닛카쓰에 입사 한 후 주로 청순한 이미지이지만 도발적인 캐릭터들을 주로 소화했다. 사도 마조히즘(Sadomasochism)으로 자신만의 색깔을 확실하게 드러냈던 고누마 마사루(小沼勝) 감독과 한때 결혼하여 부부로 지낸 이력이 있다. 

아마도 이 인연으로 인해 고누마 마사루 감독의 마지막 영화인 ‘버스 정류소에서 옷을 갈아입은 여자’(女はバス停で服を着替えた, 2003)에 출연했으며 2008년까지 총 69편의 영화에 출연했다. 로망 포르노의 초기 걸작들에 주로 출연한 그녀의 대표작은 소네 주세이 감독의 페르소나였기에 ‘㊙여랑 시장’(秘 女郎市場, Secret Chronicle: Prostitution Market, 1972)으로 성매매 시장(여랑은 창녀를 뜻함)의 연대기 정도로 읽혀지는 이 영화에서 그녀가 연기하는 새로운 천진난만함이 상쾌한 웃음을 자아냈다. 

이때의 이미지가 비록 그녀가 로망 포르노를 대표하는 스타였음에도 불구하고 NHK 등 텔레비전 드라마에 자주 등장하는 계기가 된다. 영어 회화를 유창하게 구사했던 것도 그녀가 배우로서 장점이었다고 한다. 

그녀의 매력이 가장 어필된 작품은 2편까지 제작되었던 ‘백의의 천사의 유혹’(白い天使の誘惑)이다. 하야시 미키(林美樹), 노가마 마사요시(野上正義)등이 출연한 이 영화는 제복과 관련된 페티시즘을 자극하는 로망 포르노 영화였지만 가타기리 유코의 청순미 때문에 일본의 관객들은 신인 견습 간호사의 인간 성장 드라마로 받아들여지는 한편 서스펜스적 요소 때문에 가벼운 영화로 받아들이지도 않았다. 

상경한 지 얼마 안 된 신인 간호부(가타기리 유코)가 젊은 주치의(노가미 마사요시)에 의한 섹스 스캔들에 휘말리면서 진짜 사랑에 대해서 생각해 나간다는 이야기를 큰 줄기로 연애의 괴로움, 인간적 성장의 시너지 효과를 묘사하여 호평을 이끌어냈다. 아마존 닷컴 등에서 아직도 절찬리에 팔리는 DVD이기도 하다.

한때 가수로도 활동한 오가와 세츠코

▲오가와 세츠코
1971년에 데뷔하여 1975년 결혼을 계기로 은퇴하게 되는데 이미 이번 연재를 통해 소네 주세이(曽根中生) 감독이 평소 “내 주변에 이런 미인은 없다”는 칭찬을 달고 다녔다는 전설을 전한바 있는 초창기 로망 포르노 스타다. 짧은 활동 기간에도 불구하고 앨범을 내어 가수로도 활동할 만큼 팔색조의 매력을 지닌 배우였다. ‘색담’(色談)이 들어가는 제목의 영화 중 ‘부유하는 세계의 여류 예술가’(色暦女浮世絵師, 1971)를 통해 유명해졌다. 

소네 주세이 감독의 역작으로 손꼽히는 이 작품은 에도시대 가난한 여자 화가와 우키요에의 모델이 되는 박력 있는 남자의 이야기를 다룬다. 화가가 등장하는 이야기인 만큼 화려한 색조로 그림을 그리는 장면들이 볼거리를 제공했다. 전반적으로는 여성의 복수극이 큰 줄기였다. 때문에 ‘슬픔의 끝을 붓으로 표현 했다’는 평가를 받으며 초기 걸작으로 각인되었다. 

그녀는 오하라 코유(小原宏裕)감독의 데뷔작인 ‘정염 오시치의 사랑노래’(情炎お七恋唄, Burning Desire, 1972)를 통해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에도시대에 방화사건을 일으켜 결국 화형에 처해진 ‘八百屋お七’ (야오야 오시치, 야채가게 오시치)의 이야기를 로망 포르노로 풀어냈다. 에도시대 대형 화재가 발생해 오시치의 집뿐만 아니라 많은 곳들이 전소되어 절에서 피난 생활을 하게 되는데 그녀는 이쿠다 쇼노스케라는 사람과 사랑에 빠지게 된다. 이후 살던 집들이 재건되고 둘은 헤어지게 된다. 

하지만 집으로 돌아와서도 사랑의 열병을 앓던 오시치는 쇼노스케를 다시 만날 방법을 찾다가 ‘다시 화재가 나면 그 절에서 만날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어리석은 마음에 온 마을에 불을 놓게 된다. 결국 붙잡혀 화형에 처해 지게 되는 이야기인데 후에 가부키(歌舞伎)로 만들어졌고 엔카(演歌)의 단골 소제이기도 하다. 지난 2018년 영화 ‘끝난 사람’(終わった人)을 통해 복귀했고 이후 ‘우상 섬의 빛’(鵜の島の光, 2017), ‘클레 마티스의 창가’(クレマチスの窓辺, 2022), ‘호토보리 멜트 사운드’(ほとぼりメルトサウンズ, 2022)등의 여러 작품에 출연 후 필모그래피를 이어가고 있다. 

배우 이즈미 준

▲이즈미 준
이즈미 준은 지난 2016년 로뽀클래식 필름 페스티벌을 통해 알려졌다. 가와사키 요시히로(川崎善広)감독의 ‘간호기숙사’(看護女子寮 いじわるな指, 1985)가 한국에서 공개된 바 있었기 때문이다. 비록 스토리가 없는 로망 포르노 영화라는 평가가 많았지만 ‘이즈미 준’의 개인기로 버틴 영화이기도 했다. 

이지적인 외모로 싱그러운 미소를 날리는 그녀의 매력을 충분히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녀는 이지적 분위기 덕분에 로망 포르노와 일반 영화를 두루 출연할 수 있었다. 데뷔작 ‘느끼고 있습니다’(感じるんです, 1976)를 통해 로망 포르노 배우로 연기를 시작했고 그의 이름마저도 작중 예명인 ‘이즈’에서 따 왔지만 그녀의 몸매와 이미지를 눈여겨 본 많은 감독과 프로듀서들이 텔레비전과 영화에서 캐스팅 제의를 했다. 

이들 드라마와 영화 속에서 항상 ‘누드 장면’이 등장하는 여배우이기도 했다. 텔레비전 드라마였던 ‘더 수퍼걸’(ザ・スーパーガール)이 그런 예이다. 경찰관을 그만둔 히로세 유코가 이끄는 탐정사무소 ‘수퍼걸 세븐’에서 일하는 7명의 여자 탐정의 활약을 그리는 액션물이다. 그런데 그녀의 등장으로 ‘성적(性的) 액션물’이라는 별칭이 붙었다. 이 드라마는 큰 인기를 끌어 현재 아마존 닷컴(일본)에서 DVD 구입까지 가능한 유명한 작품이다. 노골적으로 미국의 TV 시리즈물인 ‘Charlie's Angels’를 노골적으로 패러디했다.

이후 일반 영화에도 출연하여 야마구치 모모에(山口百恵)가 주연하고 도미모토 쇼요시(富本壮吉)감독이 영화 ‘진흙 투성이의 순정’(泥だらけの純情, 1963)에서 그녀의 친구로 등장한다. 이치카와 겐(市川崑)의 영화 ‘고도’(古都)에서도 역시 야마구치 모모에의 친구로 나온다. 1980년 가토 아키라(加藤彰)감독의 로망 포르노물 ‘모모에의 입술 애수’(百恵の唇 愛獣)로 다시 복귀했지만 결혼 이후 은퇴를 결심한다. 유명한 요리 연구가 ‘유키 미츠구’(結城貢)와 결혼하여 현재 도쿄 하라주쿠(東京原宿)에서 회원제 할인 요리점 ‘유키’(結城)를 운영하고 있다.

배우 미야시타 준코

▲미야시타 준코
미야시타 준코는 로망 포르노의 대표 스타이다. 이 연재에서 수차례 다뤘음에도 불구하고 더 할 이야기가 남은 여배우다. 그녀는 로망 포르노에 데뷔하기 전부터 이미 ‘핑크 필름’(ピンク映画)에서의 명성이 있었다. 10년간의 긴 활동 기간이 말해 주듯 미야시타 준코는 많은 감독들과의 협업을 통해 로망 포르노계를 넘어 일본 영화계에 없어서는 안 될 배우가 되어 1980년대에는 야나기마치 미츠오(野田基男)감독의 로테르담국제영화제 수상작인 ‘불꽃 축제’(火まつり, 1986) 등에 출연하면서 주류영화에서 더 많은 일을 하기 시작했다. 

물론 로망 포르노 역사상 가장 걸작으로 평가받는 ‘구마시로 다쓰미’(神代辰巳) 감독의 ‘다다미방 이불 속: 게이샤의 세계’(四畳半襖の裏張り, 1973)와 ‘빨간 머리의 여자’(赫い髪の女, 1979)의 주연으로서 로망 포르노의 역사를 기술한 모든 문서와 기사에 기념비적으로 등장하는 배우이다. 특히 ‘빨간 머리의 여자’에서 그녀는 비록 운명적으로 만난 남녀라고 하더라도 섹스가 사랑의 몸짓이 아니라 자기파괴의 도구가 될 수도 있음을 보여준다. 격정적 관계에 대해서 힘이 넘치는 연기를 보여줌으로써 평론가들의 눈길을 끌었다.

그녀는 이러한 연기력을 인정받아 1973년 시대극 ‘바람 속의 녀석’(風の中のあいつ)을 시작으로 텔레비전 드라마에도 진출한다. 이후 ‘로망 포르노’와 관련된 회고전의 단골 패널이면서 일본 전통 미인이었음에도 에너지와 힘도 있었고 매우 전통적이고 보수적인 일본 스타일을 가지고 있었지만 스크린에서 투지를 보이는 배우로 평가받고 있다. 

최근에는 ‘심야 식당’(深夜食堂) ‘Tokyo Stories’의 제4부, 제37화 ‘배추와 돼지 장미의 1인 냄비’(白菜と豚バラの一人鍋)에 출연해 건재함을 알렸다. 또한 미스테리극 ‘파레토의 오산’(パレートの誤算, 2020)에 출연하였다. 특히 ‘심야식당’에 등장했을 때는 왕년의 섹시 스타가 아닌 자상한 할머니의 모습을 그려내 호평을 받았다. 20세기에서 21세기까지 배우로 활동하면서 숱한 작품에서 여러 배역을 소화해 냈지만 어색하지 않은 ‘천상배우’의 품격을 보여줬다는 극찬이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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