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 미국 리포트/ 소울(SOUL) 없이 퇴보하는 흑인문화
생생 미국 리포트/ 소울(SOUL) 없이 퇴보하는 흑인문화
  • 이훈구 작가
  • 승인 2023.05.17 16: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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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엘비스'

<미국 LA=이훈구 작가(재팬올 미국 대표)> 얼마 전 영화 ‘ELVIS’를 보았다. 평소 엘비스 프레슬리(Elvis Presley)의 광팬이기도 하지만 뮤지션들을 다룬 영화들은 꼭 챙겨보는 편이다. 그들의 위대한 음악에 지대한 영향을 준 요인이 무엇일까 하는 점에 포커스를 맞추기 때문이다. 

버즈 루어먼(Baz Luhrmann) 감독은 오스트레일리아 출신 감독으로 평소 음악이나 뮤지컬 관련 영화에 일가견이 있다. 볼륨댄스를 주제로 한 데뷔작 ‘댄싱히어로’(Strictly Ballroom, 1992)부터 각종 수상식을 휩쓴 ‘물랑 루즈’(Moulin Rouge, 2001) 등 화제작을 남겼는데 그의 작품의 틀은 항상 새로움에 도전하는 주인공이 세대 간 갈등을 극복하고 성공한다는 스토리 라인을 갖고 있다. 

워싱턴 D.C.에 자리한 국립 아프리카계 미국인 역사박물관 외부 전경

▲영화 엘비스를 본 후의 생각들
영화 ‘엘비스’ 역시 그러하다. 점잖은 그리고 개신교가 삶의 밑바탕에 뿌리 내린 1950년대 미국에서 주류미디어들이 경박하며 천박하다고 멸시하던 ‘락캔롤’(Rock ‘n’ Roll)을 대중화 시켰으니 가히 혁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 영화를 보는 내내 느껴지는 안타까움의 잔상이 있었다. 그건 바로 ‘락캔롤 황제’였던 엘비스 프레슬리에게 영향을 준 것이 다름 아닌 ‘흑인문화’였기 때문이다. 한국의 기자들이 매우 의아해 하지만 그가 처음 골든그래미상을 수상하게 된 것은 ‘가스펠’ 분야였다. 

따라서 영화의 맨 처음 그는 가스펠을 부른다. 그런데 찬송가가 아닌 가스펠이다. 이 가스펠의 뿌리는 노예들의 ‘흑인영가’다. 또한 ‘락캔롤’ 역시 흑인음악이다. 그것도 남부흑인노예들의 문화에서 기원한다. 미국에 사는 흑인들이라고 해서 다 문화가 동일한 것은 결코 아니다. 

'락캔롤' 50주년 기념음반

차별이 일찍이 사라진 북부나 신생 주들이 많았던 서부 그리고 오리지널 미합중국을 형성한 동부에는 찾아 보기 드문 남부만의 흑인 문화가 있다. 이 문화는 ‘소울’(SOUL)과 ‘영성’(SPIRITUAL)이 매우 풍부하다. 

엘비스 프레슬리라는 혁명적 뮤지션이 하루 아침에 나온 것이 아니다. 그는 꾸준히 흑인문화의 영향을 지대하게 받아 들였다. ‘락캔롤의 창시자’인 척 베리(Chuck Berry)와 전설적인 기타리스트인 비비 킹(B.B. King) 그리고 흑인교회만의 특유의 역동적 예배가 그를 황제로 만든 것이다. 

그는 남부의 흑인문화에 깊이 빠져 들었으며 그들의 음악과 문화를 사랑했다. 또한 남부 흑인교회들만의 소울과 영성에 참여하며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체험했고 춤, 노래, 의상에 이르기까지 흑인들의 그것을 창조적으로 계승 발전시켰다. 척 베리, 비비킹과는 친밀한 교류를 갖고 음악적 교류도 했다. 

영화에는 아주 세밀하게 그 세 사람의 우정에 대해서 묘사하고 심지어 흑인 거리의 양복점에 가서 골라준 옷을 맞춰 입고 나와 무대에 오르는 장면도 나온다. 기성세대는 흑인들의 전유물을 자신의 것으로 바꾼 그를 혐오했고 1958년 미육군에 복무하면서 여론을 잠재운다. 엘비스 프레슬리의 명곡 중 일부는 흑인들의 오리지널 레이블이 있다. 어릴 때부터 흑인 거리에서 듣던 음악들이다.

'부기 우기'명곡 모음집

▲박해와 찬란한 문화의 관계
매년 2월이 되면 ‘미국 흑인 문화의 달’(African-American Heritage Month)로 지켜진다. 초중고등학교에서 흑인 문화와 역사를 배우고 있다. 미국 전체 인구의 13%가 되며 흑인들이 미국 역사에 공헌한 점들을 다문화 교육의 일환으로 배우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필자가 ‘엘비스’를 보면서 느낀 점이 있다면 박해와 문화의 상관관계일 것이다. 기독교가 그랬다. 공인   되기 이전 박해의 시기 그들의 신앙은 순수했고 열정적이었으며 찬란한 문화의 발전이 이루어졌다. 그런데 공인이 되면서  종교의 자유가 허락되고 난 후 시간이 흐르자 점차 매너리즘에 빠져 결국 ‘종교개혁’을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왔듯 흑인들도 자유가 주어지자 나태해졌다. 

단순한 노예해방을 넘어서 이제는 흑인들이 혜택을 너무 많이 받아 오히려 아시안들이 역차별 받고 있는 것이 현실이고 아무런 일을 하지 않아도 흑인들이 먹고 살기 위한 프로그램들이 얼마든지 있는 시대다. 그런데 ‘평화’가 찾아오자 빛나는 흑인 문화가 사라져가고 있다. 박해 받던 시기 등교를 할 수 없는 현실에 맞춰 ‘우리도 입학하게 해달라!’고 외치던 그 교육열이 사라졌다. 흑인 여성들은 그나마 교육을 받으려고 하지만 흑인 남성들의 진학률은 날로 하락하고 있다. 오히려 대학들이 인종적 성비율을 맞추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을 정도다. 

할리우드 역시 PC(정치적 올바름)의 영향으로 인어공주, 백설공주 등 주요 배역들을 흑인으로 대거 캐스팅하자 오히려 ‘할리 베리’(Halle Berry) 같은 대형 스타가 나오지 않고 있다. 흑인도 대통령이 되었다는 오바마 시대를 거치고 나니 더 이상의 유리천장은 없다는 분위기마저 감지된다. 그 이전처럼 자신들만의 문화를 꽃피우며 그걸 다시 백인들에게 이식하던 시절은 온데 간데 없다. 단지 그들은 국가에서 주는 ‘과도한’ 혜택을 받으며 자연도태 되고 있을 뿐이다. 그중 상당수는 범죄자로 전락하고 ‘흑인들’의 이미지를 나쁘게 하는데 일조 하고 있다.

▲흑인 남학생들 유치에 나선 대학들
대입 시즌인 요즘 대학 입학처마다 흑인계와 라틴계 남학생들을 유치하기 위해 발 벗고 나서고 있다고 LA타임스가 지난 15일 보도했다. 대학들의 이러한 움직임은 평등 교육 정신과 다양성 확보 때문이라고 한다. 물론 근본적 원인은 캠퍼스에 여학생 비율이 점차 늘어나면서 성별 균형이 깨졌기 때문이다. 

전국학생연구센터에 따르면 대학교 재학생의 과반수(58%)가 여학생이며 2022년 가을학기 기준 4년제 공립대학에 재학 중인 남학생 수는 251만 명이지만 여학생은 320만 명이 넘는다고 한다. 인종별로도 비슷한 상황이다. 이중 흑인은 남녀 학생 숫자가 각각 47만명과 79만명(백인은 남학생 247만명, 여학생 316만 명)이었다. 

물론 차별철폐가 된지 오래이고 흑인들이 입학하기 쉽도록 여러 조항들이 마련되어 있지만 오히려 대학진학을 하지 않고 있다. 게다가 흑인 남학생들의 경우 대학에 진학해도 중간에 자퇴하는 경우가 많아 대학들은 장학금과 각종 인턴십 등 다양한 혜택을 제공하며 이탈자를 잡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보도에 따르면 캘리포니아 커뮤니티 칼리지의 경우 산하 116개 캠퍼스가 흑인 남학생을 유치하고 또 그 규모를 유지하기 위해 흑인 남성 교육 네트워크 및 개발 프로그램(A2MEND)을 별도로 운영하기 시작했다. 이 프로그램은 흑인 남학생들에게 1대 1 멘토링과 만남의 공간을 제공해 캠퍼스 생활을 돕고, 70만 달러 규모의 장학금 제도를 통해 재정적으로 돕는다. 

그런데도 그들은 굳이 상급학교 진학을 하려 들지 않는다. 흑인들의 상징이라는 시카고에 위치한 말콤X (흑인해방운동가의 이름을 딴) 칼리지도 재학생의 4분의 3이 여학생으로 채워지자 신입생 모집 행사마다 남학생을 위한 프로그램을 대대적으로 홍보하며 모집에 나서고 있을 정도다. 물론 대학 진학이 문화와 절대적 상관관계를 갖는다고 보지는 않는다. 

또한 흑인들의 경우 여학생보다 남학생이 대학 반대 정서가 강하고 재정적인 문제에 더 예민하다고 한다. 일단 입학하고도 다음 학기 등록률이 현저히 낮은 것이 현실이다. 졸업 후 또다른 차별이 그들을 기다린다고 생각한다. 상급학교를 나온 남성 흑인들의 경우 만일 ‘야망’이 있다면 백인 여성과 결혼한다. 그것이 훗날 출세에도, 또한 각종 선거 출마 등에도 도움이 된다는 판단 때문이다.

비욘세의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홈커밍'

▲흑인문화와 교육의 상관관계
비욘세(Beyonce)의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홈커밍’(HOMECOMING: A film by Beyoncé, 2018)은 단순한 비욘세의 코첼라 페스티벌(Coachella Valley Music and Arts Festival) 라이브 무대 영상이 아니다. 이 다큐멘터리는 미국의 흑인 문화를 기리고 여기에 교육적 의미를 담아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비록 전성기가 지났고 헤드라이너로서는 첫 흑인 여가수이며 출산 후 무대에 섰다는 각종 핸디캡에도 불구하고 역대급 무대를 선보였기 때문이다. 특히 이 다큐멘터리에서는 공연 장면 중간에 흑인 지도자와 지식인들의 다양한 발언들이 소개된다. 흑인 여성들의 삶에 대한 명사들의 발언과 ‘흑인 교육’에 관한 이야기들이 등장한다. 흑인들에게 교육이 미치는 영향은 편견을 깨고도 남는 것이며 비욘세의 성공이 이를 증명한다는 것이다.

흑인 해방운동가 말콤X(사진 위쪽)와  마야 안젤루.

이 다큐멘터리에서 급진적 흑인해방운동가 ‘말콤 X’는 “미국 사회에서 가장 존중받지 못하는 계층은 흑인 여성이다”라면서 “가장 보호받지 못하는 것도, 가장 무시당하는 것도 흑인 여성이다”라고 말한다. 흑인 시인 마야 안젤루(Maya Angelou)는 “내가 원한 것은 내 인종을 대표하는 일이었다. 우리가 얼마나 따뜻할 수 있는지 보여줄 수 있었다. 얼마나 지적이고 너그러울 수 있는지 말이다”라고 발언한다. 

부커 T. 워싱턴
W. E. B. 두 보이스

그 옛날 흑인 교육자 부커 T. 워싱턴(Booker T. Washington)을 겨냥한 W. E. B. 두 보이스(W. E. B. Du Bois)의 “교육은 단순히 일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다. 삶을 가르쳐야 한다”라는 발언도 소환한다. 워싱턴이 1895년 연설을 통해 고등교육은 백인에게 맡기고, 흑인은 노동에 집중하고 무역을 배워야 한다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때문인지 미국 남북전쟁 이전 상당수 지역에서 흑인을 교육하는 것 자체가 불법이었지만 19세기 후반 이후 흑인 가정은 소득의 반을 교육에 썼다는 점을 강조한다. 또한 인종차별 시대라는 특수성 때문에 흑인 교육 시설 설립에 나랏돈이 들어가지 않았고 개인의 돈만 들어갔다는 점을 주목하라고 주장한다.

척 베리 특유의 '오리걸음'(duck walk)

▲현대 흑인문화의 아이콘 척 베리와 비비 킹
필자가 생각하는 현대 흑인문화의 원조 아이콘은 단연 ‘척 베리’라고 생각한다. 1926년 미국 세인트루이스에서 출생하여 교회 성가대원이었던 부모의 영향을 받아 어릴 때부터 가수에 관심을 가졌지만 생계 때문에 이발사 일을 했던 척 베리. 그는 흑인이 만든 블루스를 백인이 빼앗아 리듬 & 블루스로 상업화하자 백인의 컨트리 & 웨스턴을 결합해 형성된 락캔롤을 대중화하여 시대를 뒤흔들었다. 

만일 그가 인종차별이라는 시대적 박해의 흐름이 없었다면 가능한 일이었을까? 미국인들이 한여름에 가장 즐기는 노래는 비치 보이스의 ‘Surfin' U.S.A.’인데 바로 척 베리의 ‘Sweet little sixteen’을 리메이크한 것이었다. 1966년 미국법원이 노래의 저작권이 척 베리의 것임을 판결하여 그 이전까지 흑인들의 노래를 백인들이 은근슬쩍 리메이크 하던 관행이 근절되는 계기를 낳았다. 엄연히 좌석이 인종별로 분리 되어 있던 시대였지만 그의 공연장에서는 ‘음악’이라는 공통분모로 섞여 버렸다. 

1925년 9월 16일, 미시시피주 베어 크릭에서 소작농의 아들로 태어난 비비킹도 그랬다. 그는 가스펠로 출발했지만 블루스의 대부로 남았다. 그의 가장 큰 무기는 초창기 ‘재능과 성실함’이었다. 물론 성장기 애정결핍으로 훗날 15명의 여자에게서 15명의 자식을 낳았으며 도박 같은 경우 1975년에 아예 라스베가스로 이사를 갔을 정도였지만 블루스가 그냥 ‘우울’한 것 만은 아닌 유쾌한 ‘부기 우기’(Boogie-Woogie)도 있다는 것을 가르쳐 주었다. 

최고 전성기 시절의 비비킹

아프리카계 노예 음악의 역습이며 백인문화에 대한 이식(移植)이다. 이처럼 교육을 받았던 받지 못했던 간에 미국의 흑인들은 나름대로 그들의 독창적인 문화가 있고 이것이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에 영향을 끼친 것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종차별이 심하던 그 시절과 비교했을 때 지금은 오히려 백인들의 문화를 따라 하고 주어진 혜택 속에 묻혀 그들만의 잠재력을 묻어두고 살아가려는 것 같아 안타깝다. 

한마디로 ‘흑인다움’이 사라져 버린 것이다. 비록 인종차별은 없어졌지만 그들만의 소울과 문화가 퇴보하고 있다고 느끼는 것은 필자 한 사람 뿐일까? 필자의 눈에는 이미 차별이 없어지고 오히려 아시안들이 역차별을 당하는 것 같은데 그들은 아직도 자신들만이 차별을 받고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그들이 진정 누려야 할 것은 ‘푸드 스템프’와 가산점만은 아닌 것 같다. 그들의 미국 이민 선조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차별 속에서도 스스로 개척하는 무언가가 많아질 때 진정한 차별이 사라지는 것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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