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훈구의, 일본영화경제학(66)/ 로망 포르노의 스타들(2)
이훈구의, 일본영화경제학(66)/ 로망 포르노의 스타들(2)
  • 이훈구 작가
  • 승인 2023.06.05 1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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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자마츠리 유키

<미국 LA=이훈구 작가(재팬올 미국대표)> 닛카쓰(日活) 로망포르노(ロマンポルノ) 여배우들의 캐스팅은 전적으로 외모와 몸매 그리고 기본 노출과 성적 학대 장면의 동의 또한 기본적인 베드씬 등 여러 가지 수고가 따랐지만 차츰 장르가 자리를 잡아가면서 오히려 지원자가 늘어난다. 당시 세계사적으로 볼 때 체제경쟁이 심화 되어 있었던 시기에 서구권과 동구권의 ‘성애영화’ 경쟁도 한몫 했기 때문이다. 

특히 유고슬라비아는 포르노와 정치를 결합 시킨 작품을 만들어 칸 영화제에 출품하여 화제가 되기도 했는데 그 선두 주자는 두샨 마카바예프(Dušan Makavejev)였다. ‘WR: 유기체의 신비’(WR: Mysteries of The Organism, 1972)는 최고의 걸작으로 평가 받는데 발기된 페니스에 석고 깁스를 하는 장면이 매우 파격적이었다. 

연기 지도를 하고 있는 두샨 마카베예프 감독

마카베예프는 기록영화와 픽션이 혼합된 독특한 형식으로 자본주의, 사회주의 진영 모두 성적 억압에 짓눌려 ‘성 해방’을 이루지 못했다고 일갈했다. 이에 로망 포르노 계열의 감독들과 배우들 역시 ‘에로스 인터내셔널’(エロスインターナショナル)에 편승하여 적극적으로 출연을 하기 시작했다. 따라서 초기의 몇몇 에로덕션 계열의 영화들이 체구도 크고 선이 굵은 금발 여성들의 색다른 매력을 활용했지만 점차 일본 여배우들로 교체해 갔다. 오늘날까지 세계적으로 화자 되는 ‘스타’들이 탄생하게 된 계기다. 

▲카자마츠리 유키
카자마츠리 유키(風祭ゆき)는 에로스 인터내셔널에서 가장 먼저 언급될 배우다. ‘세계적인 거장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이 사랑한 여배우’라는 칭호가 뒤따른다. 쿠엔틴 타란티노(QUENTIN TARANTINO)가 그녀의 광팬임을 인증하면서 자신의 걸작 ‘킬빌’(Kill Bill: Voume 1. 2003)에 캐스팅을 했을 정도다. 

영화 '착한 자매'

그녀는 한국에서도 낯이 익은데 지난 2016년 로뽀클래식 필름 페스티벌에서 영화 ‘착한 자매’(美姉妹・犯す, 1982)를 통해서다. 한국 상영 포스터에 노골적으로 ‘킬빌’의 카자마츠리 유키 주연이라는 카피가 달렸을 정도다. 그녀가 처음부터 ‘로망 포르노’의 배우가 된 것은 결코 아니었다. 1953년 도쿄 출생으로 무사시노 음악대학 단기대학부(武蔵野音楽大学短期大学部) 성악과(声楽科)를 졸업했다. 1977년 24세에 신도 가네토(新藤兼人)감독의 영화, ‘치쿠잔의 여행’(竹山ひとり旅, The Life of Chikuzan, 1977)으로 데뷔했다. 

그러다가 어떤 잡지에서 세미 누드 화보가 실린 것이 계기가 되어 1979년부터 닛카쓰 로망 포르노 영화의 캐스팅 제안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녀는 지적인 미모와 성악과 출신이라는 프리미엄에 도쿄 출신이라는 점이 최고의 강점이었다. 

영화 '습격 당하는 여교사'(1983)

무려 1년 동안 캐스팅 제안을 뿌리쳤지만 운명적으로 1960년대 쇼치쿠 누벨바그의 기수이자 현대 일본 아방가르드의 선두 주자로 정치적인 영화를 지향했던 거장 ‘오시마 나기사’(大島渚)감독에게 설득되어 누드 장면이 있는 영화에 출연하게 된다. 결국 1980년 오하라 코유(小原宏裕) 감독의 작품인 ‘붉은 거리 비’(赤い通り雨)에 출연한다. 대학에 다니는 착실한 형과 거칠고 싸움만 하는 동생이 한 여자를 놓고 벌인 이야기를 그리고 있는데 동생은 강간을 형은 부드러운 유도를 통해 관계를 맺어 가는데 클라이맥스에 가서야 비로서 여주인공이 두 남자가 형제였음을 알게 된다. 

물론 반전은 진실한 사랑을 위해 강간을 했던 동생을 경찰에 고발한다는 점인데 관객들은 통쾌한 복수극으로 이해했다. 수시로 여주인공의 대사가 등장하는데 바로 “야메로!”(ヤメロ!)이다. “그만 둬!”라는 뜻의 이 대사가 수시로 등장하기 때문에 이후 “야메떼!”(やめて!, 역시 그만 둬! 뜻)와 함께 전 세계적 유행어가 된 일본어이기도 하다.

카자마츠리 유키 하면 ‘착한 자매’를 연상하지만 진짜 그녀가 로망 포르노 계열의 스타가 된 것은 ‘여교사 시리즈’(女教師シリーズ)다. 역사적으로 카자마츠리 유키는 로망 포르노를 최후까지 지킨 배우이다. 로망 포르노의 첫 번째 종료 시점인 1988년작 다이치 야스오(大地康雄)감독의 ‘라스트 카바레’(ラスト・キャバレー)의 주연이기도 했다. 

도시 개발을 위해 사라져 간 수많은 카바레 중 하나를 경영하고 있던 아버지와 딸, 부모, 아이, 그리고 거기에 얽힌 사람들 각각의 생각들을 그려내는데 시대의 우울함 속에서 사라져가려고 하는 사랑과 로맨스를 얹은 로망 포르노 작품이다. 그녀는 이러한 공로 때문인지 이후에도 ‘연기파 미인 배우’로 각인되어 종횡무진 활약한다. 

영화 '여교사 사냥'(1982)

여교사 시리즈는 1977년-1983년까지 시리즈물로 폭발적 인기를 누렸는데 그중 ‘여교사 더러운 방과후’(女教師 汚れた放課後, 1981), ‘여교사 사냥’(女教師狩り, 1982) ‘습격당하는 여교사’(襲われる女教師, 1983) 등에 출연해 인기를 누렸다. 자신의 폭발적 인기와 달리 결코 달갑지 않은 별명을 얻게 되었는데 바로 ‘강간 여왕’(レイプ・クイーンと呼)이다. 

로망 포르노 배우로서는 늦은 나이인 27세에 장르에 데뷔했지만 그녀의 몸매와 외모 그리고 분위기는 결코 ‘SM’(Sadism Masochism, 사도 마조히즘)영화에는 안 어울리는 것이었다. 주로 비련의 여인 역이 더 잘 맞았다. 로망 포르노 장르가 1차 종료된 이후에도 그녀는 ‘세일러복과 기관총’(セーラー服と機関銃, 1981), ‘10층의 모스키토’(十階のモスキート, 1983)등의 일반영화와 드라마 ‘형사 요로시쿠’(刑事ヨロシク, 1982), ‘파도의 동이 그릇’(波の盆, 1983)등의 텔레비전 드라마에 출연하여 계속 인기를 이어갔다.

영화 '붉은 거리 비'

로망 포르노 영화에서 셀 수 없이 ‘강간’을 당해야 하는 비련의 배역들을 소화해 냈지만 현실 속에서의 그녀는 매우 활동적인 진취적 성격이었다. 자동차 레이서, 클레이 사격 등에도 능했고 카메라를 배워 능숙하게 다뤘으며 Mac이나 Windows의 이해도가 빨라 다른 사람들을 가르치고 심지어 홈페이지를 직접 만들어 관리를 할 정도의 수준이라고 한다. 그녀는 지금도 글로벌한 인기를 구가 중인 배우이며 서구에서도 인지도가 있다.

다카쿠라 미키

▲다카쿠라 미키
다카쿠라 미키(高倉美貴)는 원조 닛카쓰 SM(사도 마조히즘)의 여왕인 다니 나오미(谷ナオミ)와  2대 닛카쓰 SM의 여왕 마부키 준코(麻吹淳子)에 이은 ‘3대 닛카쓰 SM의 여왕’으로 불리었다. ▲기모노가 잘 어울리고 ▲길고 검은 흑단 같은 머리카락 ▲몸에 어느 정도 살집이 있어 결박했을 때 줄이 피부 위에 확실히 도드라져야 하며 ▲고문을 받을 때 강한 표정을 지어야 하고 학대를 받을 때에도 당당해야 한다는 원칙이 있었다. 

다카쿠라 미키는 원조 여왕인 다니 나오미와 차별화 된 몸매를 가지고 있어 성공한 케이스다. 다니 나오미가 인지도 낮은 감독들과도 작업한 SM계의 선구자였고 마부키 준코가 과도기 배우였다면 그녀는 ‘3년 동안 4작품에만 출연 한다’는 파격적 조건을 내걸 만큼 데뷔부터 화려했다. 원래 아동복 디자이너가 되기 위해 도쿄에 상경하여 부티크에서 일하던 중 ‘그라비아’(グラビア雑誌)의 비키니 모델로 선정된 게 계기가 되어 수많은 러브콜을 받은바 있었다. ‘SM’배우가 반드시 풍만하고 기모노만 입어야 한다는 공식을 깰 수 있는 히든카드였기 때문이다.

 

영화 ‘단 오니쿠로의 미녀밧줄화장’(1983)

데뷔의 결정적 원인은 관능 소설 작가인 ‘단 오니로쿠’(団鬼六)에게 발견된 것이다. 거의 모든 SM영화의 원작자인 만큼 당연히 비록 그녀는 데뷔를 숙명적으로 ‘SM’을 통해 할 수 밖에는 없었지만 그래도 작품성은 괜찮았다. 처음 그녀의 부모는 허락할 수 없다는 입장이었지만 천하의 단 오니로쿠와 오시마 나기사의 집요한 설득에 데뷔를 하게 되었다. 

영화 '더러운 방과 후'(1981)

사실 단 오니로쿠의 원작을 바탕으로 한 시리즈물도 슬슬 바닥을 드러낼 즈음 그녀는 혜성처럼 등장해 무려 다섯 편(그의 원작 각색)의 영화를 찍었으니 로망 포르노의 하위 장르로서 ‘SM’의 마지막을 함께 한 배우이기도 하다. 사실 단 오니쿠로의 주로 ‘밧줄 고문’ 시리즈는 보수적이고 진부하며 예측 가능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었기 때문에 전형적인 닳고 닳은 퇴폐적인 느낌이 지배적이었던 것도 사실이다. 

따라서 풍만한 몸매의 다니 나오미를 대신하여 삐쩍 마른 몸매의 다카쿠라 미키를 캐스팅하게 된 것은 필연적이었다. 그녀가 청초하고 기품 있다는 평가를 받으면서 ‘닛카쓰 로망 포르노 사상 가장 아름다운 여배우’라는 찬사가 뒤따랐다. 당연히 단 오니쿠로와의 의리에 의해 3년 계약을 하고도 그의 부탁에 따라 1년을 연장해 줄 정도였다.

영화 '라스크 카바레'(1988)

그녀의 필모그래피 역시 단 오니쿠로의 원작 5편이다. ‘단 오니쿠로의 미녀밧줄지옥’(団鬼六 美女縄地獄, 1983), ‘단 오니쿠로의 미녀밧줄화장’(団鬼六 美女縄化粧, 1983), ‘단 오니쿠로의 수도녀밧줄지옥’(団鬼六 修道女縄地獄, 1984), ‘단 오니쿠로의 밧줄 비난’(団鬼六 縄責め, 1984), ‘단 오니쿠로의 밧줄고문 비난’(団鬼六 緊縛卍責め, 1985)등이다. 이중 ‘단 오니쿠로의 미녀밧줄화장’이 가장 큰 인기를 구가했다. 

단 오니쿠로의 원작 소설인 ‘젖은 복수’(濡れた復讐)를 영화화 했는데 청초한 여대생이 납치 당하여 성적학대에 놓인다는 설정인데 그녀의 미모가 당연히 흥행에 한몫을 했음이 분명하다. 게다가 당시 한참 소프트코어 패티시 영화로 각광 받던 ‘수도녀’(가톨릭 수녀)시리즈에도 등장하는데 벌거벗은 수녀가 주인공인 이 영화는 수녀원을 중심으로 한 갖가지 변태행위가 관례적으로 펼쳐지는 게 일반적이었다. 결국 ‘단 오니쿠로의 수도녀 밧줄지옥’은 ‘수녀 성애 영화’의 대표작이 되었다.

 

아이조메 교코

▲아이조메 교코
아이조메 교코(愛染恭子)는 사실 전설적인 인물이다. 아버지의 할머니가 캐나다인이라는 ‘혼혈’ 계보의 여배우다. 사실 그녀는 로망 포르노 장르에 있어서 기념비적인 작품에 출연하기도 했지만 포르노 영화와 AV(어덜트 비디오)영화는 물론 나중에는 포르노 영화의 감독으로 직접 연출까지 한 이력이 있으며 여전히 현역이다. 텔레비전 드라마에도 다수 출연하는 등 한마디로 ‘멀티 플레이어’형 영화인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었다. 누드 모델로 활약하던 중 1975년 핑크 무비인 ‘치한 지하철’(痴漢地下鉄)의 주연으로 캐스팅 되면서 20여편의 필모그래피를 쌓고 로망 포르노 장르로 옮겨 온 베테랑이었다. 

아이조메 교코는 한마디로 운도 따랐다. 로망 포르노의 첫 작품이 장르 사상 최고의 걸작이라는 ‘백일몽’(白日夢, 1981)이었기 때문이다. 극작가 다니자키 준이치로(谷崎潤一郎)의 4막 희곡이 원작으로 치과 치료를 받으러 온 청년이 같은 환자의 아름다운 숙녀를 보는 가운데 마취의 혼수 속에서 백일몽을 본다는 이야기이다. 

다큐멘터리 '쇼킹 재팬- 색의 나라'

‘백일몽’은 밝은 대낮에 꾸는 꿈이라는 뜻으로, 실현 불가능한 헛된 공상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지금까지 일본에서 4번 영화화가 되었는데 ‘로망 포르노’ 버전도 대성공을 거두었다. ‘다케치 테츠치’(武智鉄二)가 감독이라는 점만으로도 화제를 몰고 왔기 때문이다. 연극 평론가, 연출가, 영화 감독의 삼역을 소화해 냈을 뿐만 아니라 가부키(歌舞伎) 연출에도 일가견이 있었다. 외설죄로 기소된 이력도 있었지만 그의 연출은 화제를 몰고 오기에 충분했다. 

아이조메 교코는 일본 최초의 하드코어 포르노 여배우이면서 현재도 현역 감독으로 활동하고 있다. 2010년까지 현역 스트리퍼로 공연을 했는가 하면 성인용품 등을 판매하는 회사에서 디자이너를 맡은 적도 있었다. 그런데 정작 자신이 원래부터 음란했을거라는 편견에 대하여 인터뷰를 통해 20세가 될 때까지 순결을 지켰다는 고백을 했다. 백일몽의 성공으로 스트립 극단을 설립해 운영하기도 했는데 공개적으로 외설적 공연을 하던 중 체포 되었다가 석방 되는 순간 다시 무대에 설 정도로 ‘스트립’에 대한 애정이 있었다. 

배우로서 그녀가 진정한 프로라는 일화가 있다. 1984년 AV작품인 ‘더 서바이벌’(ザ・サバイバル)의 촬영 중 처녀성 상실 씬을 찍기 위해 처녀막 재생 수술을 받았는데 그 장면마저 작품에 사용할 정도였다. 덕분에 자전적 스토리가 가미된 다큐멘터리까지 제작되었을 정도다. 한국에서는 ‘쇼킹 재팬: 색의 나라’(Yoyochu in the Land of the Rising Sex, と代々木忠の世界, 2010)라는 제목으로 개봉되었으며 ‘이시오카 마사토’(石岡正人)가 감독하였다. AV라는 장르의 포르노 영화가 탄생하게 된 배경을 다루는데 솔직담백하게 업계의 현실을 다뤄 호평을 받았다. 그녀의 영화인으로서의 필모그래피는 현재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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