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니 쇼크'(Sony Shock)라는 말이 생긴 이유
'소니 쇼크'(Sony Shock)라는 말이 생긴 이유
  • 김재현 기자
  • 승인 2019.03.10 10: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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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니는 한때 일본 전자업계 그 자체였다. ‘메이드 인 재팬’이 아니라 ‘메이드 인 소니’. 그만큼 소니의 자부심은 강했다. 소니의 PC 브랜드 VAIO 기획자로 개발 현장에 몸담았던 미야자키 타쿠마(宮崎琢磨)는 2006년 ‘소니 침몰’이라는 책에서 소니의 명성에 대해 이렇게 적고 있다.

<마쓰시타전기(현재의 파나소닉)가 항상 소니 제품을 재탕하는 바람에 ‘카피의 마쓰시타’라고 야유 받던 시절에 소니는 ‘기술의 모르모토’로 불릴 정도로 높은 기술력을 인정 받았다.>

하지만 자부심은 때론 자만을 부른다. 캐나다 출신의 일본 전문 저널리스트 벤자민 풀포드(Benjamin Fulford)는 2003년 11월 포브스에 ‘소니를 죽인 건 자부심’(The Pride That Killed Sony)이라는 제목의 글을 기고했다. 그는 이렇게 꼬집었다.

<몇 해 전 소니의 한 중역이 내게 “소니는 더 이상 진정한 경쟁자가 없다”(no longer had any real competitors)고 말했다. 소니는 자만심을 겪고 있었다.>(Sony has suffered from hubris)

영광의 자부심이 결국엔 자만심이라는 ‘병’이 됐다는 것이다. 벤자민 풀포드의 지적처럼, 2003년은 소니에게는 충격의 한 해였다. 정확히는 그해 2003년 4월 25일 도쿄증시에서 소니의 주가가 폭락하는 이른바 ‘소니 쇼크’(Sony Shock)가 발생했다.

사실, 소니 쇼크는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었다. 2003년 3월 연결결산 순이익이 1155억엔을 기록, 전년 동기 대비 7.5배나 됐기 때문이다. 그런데 소니쇼크(주가 폭락)가 발생한 이유는 뭘까.

소니는 앞서 그해 1월 말, 1800억엔의 순이익이 예상된다고 발표했다. 그런데 두 달 후인 3월에 뚜껑을 열어보니 순이익이 예상보다 700억엔 가량 감소했다. 심지어 영업이익 면에서는 1000억 이상 적자였다고 한다.

그런 소식이 시장에 전해지자 주가가 전날(3720엔)보다 무려 27% 폭락한 2720엔을 기록했다. 주가는 25~27일 사이 30% 가까이 폭락했다. 이데이 노부유키 당시 소니 회장은 “소니 쇼크는 우리에게도 쇼크였다”며 책임 전가를 하는 발언을 꺼내 사퇴론을 불러 일으켰다.

‘소니 침몰’의 저자 미야자키 타쿠마는 ‘소니 쇼크’와 관련, 이데이 회장을 비판했다. 그는 “이익 감소에 대해 이데이씨가 ‘이라크전쟁의 영향’이라고 발표했는데, 주식 시장은 이를 ‘말도 안되는 핑계’로 판단, 기대가 실망으로 반전되어 소니 주식에 대한 매각이 급속히 퍼져나가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데이 회장에 대해서는 평가가 엇갈린다. 1995년부터 2005년까지 소니를 이끌었던 이데이 는 ‘제2 창업기’를 연 카리스마의 경영자였다. 사장에 취임한지 2년 만에 실적(영업이익)이 50% 증가하면서 V자 회복을 이루는 등 사원들에게도 인기가 대단했다.

가문도 좋았다. 아버지는 와세다 대학 경제학부 교수를 지냈고, 이데이 역시 와세다 대학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소니에 평사원으로 입사해 회장까지 오른 이데이는 ‘소니 쇼크’ 2년 후인 2005년 3월 7일 사임을 발표했다. 사임 전후로 소니는 혹독한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2003년 10월 사원 2만 명 해고에 이어 이데이 퇴임 후인 2005년 9월에도 추가로 1만명을 해고했다. ‘소니 침몰’의 저자 미야자키 타쿠마도 이 무렵 회사를 떠났다. 그는 당시 구조조정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대규모 구조조정은 회사조직을 잘못된 방향으로 왜곡 시켰다. 본사 라인보다는 영업과 설계라는 현장의 최전방에서 근무하는 직원들에게 집중된 구조조정으로, 반드시 필요한 귀중한 인재들은 대부분 퇴사해 버리고 정말로 나가줬으면 하는 사람들만 회사에 남았다. 사원의 질과 양이라는 면에서 편중화 현상을 더욱 심화시키는 결과를 낳았던 것이다.>(미야자키 타쿠마 저 ‘소니 침몰’)

양적(3만 명 해고)으로나, 질적(설계 등 현장 파트 해고)으로나 소니의 명성이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소니의 부활엔 오랜 시간이 걸렸다. 2005년 그룹 최초로 외국인 CEO(하워드 스트링거:Howard Stringer)를 영입했지만 별 소득이 없었다. 심지어 소니의 몰락은 2008년 절정을 이뤘다.

당시 소니의 매출액 비중은 일본 국내 23%, 해외 77%로 글로벌 비중이 월등하게 높았다. 이런 구조는 엔화 급등과 금융 위기 확산으로 직격탄을 맞는 근본 원인이 됐다.

당시 엔화는 80엔대의 초강세를 보였다. 소니가 매출액과 영업실적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는 구조적 상황이었다. 세계 금융위기가 몰아닥친 2008년 말 소니의 주가는 소니 쇼크때 보다 더 떨어진 1000엔대를 기록했다. 2008년 그해 10억 달러의 연간 손실을 봤다.

하지만 2012년부터 실적 회복기를 맞았다. 소니 컴퓨터 엔터테인먼트를 이끌던 히라이 가즈오(平井一夫) 가 CEO에 오르면서다. 6년 후인 2018년 6월, 요시다 겐이치로(吉田憲一郎) 사장은 주주총회에서 “전년과 비교해 영업이익(7348억)은 155%, 당기순이익(4907억엔)은 570% 늘었다”고 발표했다. <김재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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