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메랑 경단녀’…노무라그룹 사장의 재취업기
‘부메랑 경단녀’…노무라그룹 사장의 재취업기
  • 에디터 이재우
  • 승인 2019.03.06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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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바 '부메랑 직원'으로 재입사해 사장직에 오른 나카가와 준쿄씨.
이른바 '부메랑 직원'으로 재입사해 사장직에 오른 나카가와 준쿄씨.

“노무라홀딩스가 자회사 노무라에셋매니지먼트의 사장에 여성 최초 임원인 나카가와 준코씨(中川順子)를 임명했다”고 4일 니혼게이자이신문이 보도했다. 노무라에셋매니지먼트 사장직에 여성이 오른 것은 처음이라고 한다.

한국이나 일본 기업계에서 ‘여성 최초’라는 걸 강조하는 건 이젠 의미가 없다. 오히려 그 자체가 여성을 깎아내리는 일이기도 하다.

중요한 것은 53세의 나카가와씨가 4년간 전업주부로 살다가 다시 재취업해 지금의 자리에 올랐다는 점이다. 그는 이른바 ‘부메랑 직원’(boomerang employees: 전 직장으로 컴백한 사람)이다.

후쿠오카 출신으로 고베대학 문학부를 졸업한 나카가와씨가 일본 최대의 증권사 노무라증권에 입사한건 1988년이다. 일반 사무직으로 입사한 그는 직종 전환을 통해 투자쪽으로 이동, 투자은행본부 등에서 일했다.

그런데 과장 직책까지 달았던 그는 입사 16년 째인 2004년, 돌연 회사에 사표를 냈다. 남편 직장이 홍콩으로 발령 나면서 퇴사를 결정한 것이다. 나카가와씨는그 이후 4년 간 홍콩에서 전업주부로 살았다.

그러다 남편이 일본으로 오면서 다시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른바 ‘경단녀’(경력 단절 여성)의 재취업이었다. 4년 간 일을 놓은 그가 다시 선택한 곳은 예전 직장인 노무라다.

한국이든, 일본이든, 남성이든, 여성이든, 한번 퇴사한 직장을 다시 들어가기란 쉽지 않다. 본인의 의지로 나왔든, 회사의 사정 탓에 나왔든 예전 조직으로의 복귀는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 부메랑 직원들이 신규 채용자보다 회사에 대한 공헌도가 높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그 이론적 근거를 제시한 전문가는 미국 일리노이 대학에서 노동 및 고용 관계(labor and employment relation)를 연구한 브래드 해리스(Brad Harris) 교수다.

일리노이대 캠퍼스지(illinois.edu 2014년 7월 14일)에 따르면, 브래드 교수는 ‘인적 심리학 저널’(Journal Personnel Psychology)에서 “컴백한 직원이 종종 최고의 고용이 되는 경우가 있다”고 강조했다.

조직 문화를 잘 이해하고(understanding the organisational culture), 위험성이 덜할 뿐만 아니라(not only less risky), 회사의 주요 조직에 더 헌신하는 경향이 있다(more committed to the focal organisation)는 것이다. 그 이유가 뭘까.

해리스 교수는 “부메랑 직원들은 본질적으로 ‘남의 떡이 커 보이지 않는다’는 걸 알기 때문”(because, in essence, they've learned firsthand that the grass isn't always greener on the other side)이라고 했다.

영어 속담에 ‘남의 집 잔디가 더 푸르게 보인다’(The grass is always greener on the other side of the fence)는 말이 있다. 여기서 잔디(grass)는 물질적인 부분을 의미한다. 달리 말하면, 돈이나 경제적 상황이다. 이를 우리 식으로 바꾸면 ‘남의 집 떡이 커 보인다’는 것이 된다.

회사를 떠난 이유가 어떻든, 그 사람은 ‘더 커 보이는 떡’(더 많은 월급이나 더 높은 직급)을 찾아 다른 직장을 선택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새 직장 역시 호락호락하지 않다. 막상 남의 떡이 커 보여서 옮겼지만, 실상 직접 느껴보니 그렇지가 않을 수 있다. 그들은 다시 고민에 빠진다. ‘예전 직장으로 다시 돌아갈까’라고. 그러자니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다. 쉽게 ‘리턴’할 수 없는 이유다. 

그런데 용기를 내어 다시 예전 직장의 문을 노크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드물지만. 이번에 노무라에셋매니지먼트 사장에 오른 나카가와 준코씨도 그런 케이스다.

4년 공백 뒤인 2008년 그는 노무라홀딩스의 자회사로 재입사했다. 문을 두드렸다고 회사가 그냥 문을 열어준 건 아니다.

그동안 예전 동료들과 계속 소통을 하고 있었다. 나카가와씨는 재계 비즈니스 정보 사이트 ‘케이자이카이’(経済界)와의 인터뷰에서 “홍콩에 가서도 회사 분들과 가끔이지만 연락을 취했다”며 “귀국해 재취업 이야기를 듣고 받아들이게 됐다”고 말했다.

나카가와씨는 예전에 근무하던 메인 부서가 아닌 ‘의료, 지원 및 자문’ 파트로 들어왔다. 같은 해 사장직에 오르고, 2년 뒤엔 2010년 노무라홀딩스의 재무책임자(CFO)로 승진했다.

지난해부터는 노무라에셋매니지먼트의 전무를 맡아 왔다. 마침내 올해 3월 4일, 여성 임원으로서는 최초로 노무라에셋매니지먼트 사장에 올랐다.

‘부메랑 직원의 회사 공헌도가 높다’는 브래드 해리스 교수의 연구 결과가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는 것은 아니지만, 분명 나카가와 준코씨의 경우엔 맞아 떨어졌다.

4년 간의 ‘경단녀 공백’ 뒤에 메인이 아닌 지원 파트로 자신의 존재감을 부각시킨 후 다시, 메인으로 컴백했다. 그리고 유리천장을 깨고 수장 자리까지 올랐다.

이쯤되면, 주목받을 만한 ‘커리어우먼 상’이 아닐까. 무엇보다 그 근성. <에디터 이재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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