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A는 왜 비행기에 거북이를 그려 넣었나?
ANA는 왜 비행기에 거북이를 그려 넣었나?
  • 김재현 기자
  • 승인 2019.03.29 14: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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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A가 하와이 노선에 투입하는 거북이 페인팅 비행기.
ANA가 하와이 노선에 투입하는 거북이 페인팅 비행기.

3월 21일, 도쿄 나리타 공항. 이날 비행기 머리부터 꼬리까지 바다거북 그림이 그려진 비행기 한 대가 프랑스로부터 도착했다. 일본 항공사 ANA(전일본공수)가 주문한 에어버스의 초대형 여객기 A380(520석 규모)이다. ANA는 2016년  A380 3대를 주문했고, 그 중 한 대가 이날 도착했다.(나머지 2대는  2020년 말까지 인수) ANA는 5월 24일부터 이 거북이 비행기를 나리타~하와이 노선에 투입한다.

이 비행기엔 ‘플라잉 호누’(Flying Honu)라는 별명이 붙여졌다. 호누는 하와이 현지어로 ‘녹색 바다 거북’(Hawaiian Green Sea Turtle)을 지칭한다. 호누는 하와이에서 행운과 번영을 상징하며, 현지 주민들에게 널리 사랑 받고 있는 신성한 존재로 알려져 있다.

ANA는 이 거북이 캐릭터 전략에 상당한 공을 들였다고 한다. 동체 그림 선정을 위해 디자인 공모전을 열었는데, 전 세계에서 2197건의 작품이 접수됐다. 그 결과 선택된 것이 ‘플라잉 호누’다.

비행기 동체에 동물을 그린 장식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알래스카항공이 연어 산업을 지원한다는 차원에서 연어 737마리를 그려 넣기도 했다. 하지만 상업용 항공기에 ‘파충류 예술’은 처음이라고 한다. 페인팅 작업에 21일이 걸리는 등 도색 작업은 복잡하고 까다로웠다고 한다.

ANA는 하와이 주민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데도 세심한 신경을 쓴 것으로 알려졌다. 에어버스에 A380을 주문하던 당시, 하와이에 특별한 기부를 했다. 나무심기 비영리단체인 HLRI(Hawaiian Legacy Reforestation Initiative)에 ‘밀로’(milo)라고 불리는 인디안 튤립 트리(Indian tulip tree) 520그루를 전달한 것이다. 520그루는 A380의 비행기 좌석 수를 의미한다. 이 이벤트는 하와이의 토착 생태계를 돕는다는 취지였다.

ANA가 거북이 마케팅 전략을 편 것은 고객 확보 차원이다. 매년 하와이를 방문하는 일본인은 150만 명. 아사히신문 영문판(3월 22일)은 “현재 하와이 항공편의 시장 점유율이 더 높은 일본항공(Japan Airlines)을 따라잡기 위한 포석”이라고 보도했다.

사실, 이번 A380 도입 배경에는 항공업계의 복잡한 계산이 깔려 있다. ANA, 에어버스, 그리고 저가항공사(LCC)인 스카이마크(Skymark Airlines) 사이의 ‘밀당’(밀고 당기기)이다.

1996년 설립된 스카이마크는 한때 ANA와 JAL에 이어 일본 3대 항공사 자리까지 올랐다. 그런 스카이마크가 경영에 무리수를 둔 것은 2011년이다. 그해 2월, 에어버스와 파트너십을 맺고 초대형 항공기 A380 4대 도입 계약을 체결했다.(이후 2대 더 추가 주문)

이를 두고 저가항공사가 과욕을 부렸다는 이야기가 나돌았다. 아니나 다를까. 다른 LCC와 경쟁이 격화되면서 스카이마크의 수익률은 급감했고, 급기야 재정적 어려움에 빠지게 됐다.

스카이마크는 결국 2014년 7월, A380 6대(비용 총 20억 달러)의 주문을 취소했다. 그러자 에어버스는 그해 12월, 스카이마크를 상대로 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 주문 취소에 다른 페널티(벌금)를 부과하기 위해서였다.

설상가상, 2015년 1월 스카이마크는 엄청난 부채를 견디지 못해 도쿄지방법원에 파산보호신청을 냈다. 그런 파산 직전에 몰린 스카이마크에 백기사(재무 투자자)로 등장한 존재가 다름아닌 ANA였다. ANA의 모그룹 ANA 홀딩스와 사모 투자펀드 인테그럴코퍼레이션(Integral Corp.)이 공동지원에 합의했던 것.

ANA는 왜 스카이마크의 백기사를 자청했을까? 당시 “스카이마크가 파산할 경우, 공항의 슬롯이 JAL로 넘어갈 수도 있다”는 말이 나돌았다고 한다.

슬롯(Slot)은 항공업계에서는 ‘특정 항공편이 운항할 수 있도록 허가받은 시간대’를 의미한다. 공항 하늘에 항공기들이 무질서하게 뜨고 내리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질서정연한 운항체계를 갖추고 있다. 이처럼 항공기가 공항에 머무는 물리적, 시간적 공간을 슬롯이라고 한다. 

이 슬롯 확보를 위해 ANA가 움직였다는 것이다. 스카이마크의 A380 주문 취소와 ANA의 백기사 지원이 맞물리는 과정에서 ANA는 2016년 에어버스에 A380 3대를 주문했다. 그 중 한 대가 3월 21일 도착한 것이다. 그 비행기가 ‘플라잉 호누’(Flying Honu)다. <김재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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