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희선의 재팬토크/ 새 연호로 본 일본 40가지 현상
정희선의 재팬토크/ 새 연호로 본 일본 40가지 현상
  • 정희선 객원기자
  • 승인 2019.04.04 1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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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원의 물개가 연호 퍼포먼스를 펼치고 있다. photo= 아사히신문 캡쳐.

248번 째 새 연호(‘레이와’:令和) 발표로 일본 열도가 떠들썩하다. 축하 분위기 속에서 ‘레이와’에 명령을 뜻하는 한자(令)가 들어가면서 해석을 두고 의견이 분분하다. 유통업계들은 발빠르게 마케팅 전략을 펴고 있다. 이런 연호 교체기의 혼란을 틈타 금융권 사기도 벌어지고 있다. 모두 연호가 바뀌면서 일본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상들이다. 도쿄에 살면서 며칠 동안 보고 들었던 현상들을 정리했다.

①일본에 와서 가장 난감했던 순간. “쇼와(昭和) 몇 년 생이죠?” 연호에 생소한 나 같은 외국인에게 그런 질문은 그야말로 ‘노답’이다.
②마이니치신문에 따르면, 1975년 조사에서 일본인 82%가 “주로 연호를 사용한다”고 답했다. 반면, 최근 조사에서는 34%로 줄었다.(연호와 서기 병용은 68%)
③일본 정부가 1일 새 연호 ‘레이와(令和)를 발표했다. 지금까지는 모두 중국 고전에서 발췌했지만, 이번 연호의 출전은 만엽집(萬葉集:만요슈)이다.
④일본의 가장 오랜 시가집인 만엽집의 제5권, 매화꽃을 노래한 시 32수(首)에서 레이와가 나왔다.
⑤레이와의 고안자는 만엽집에 정통한 오사카여대의 나카니시 스스무(中西進) 교수로 알려져 있다. 그는 연호의 취지에 대해 언론에 “노코멘트”라고 답했다.


⑥연호 후보안을 제출한 사람(학자, 전문가)이 사망할 경우, 그 후보안은 목록에서 제외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⑦일본에서 연호 발표는 정부 대변인격인 관방장관의 몫이다. 1987년 1월 7일 평성(平成:헤이세이) 발표 때는 오부치 게이조 당시 관방장관이 맡았다.
⑧그런데 이번엔 좀 달랐다.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이 발표하고, 아베 총리가 별도로 기자회견을 열었다. 아베 총리는 새 연호의 취지를 설명하는데 18분을 사용했다. 지지율 상승을 위한 ‘정치적인 유세’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⑨아베 총리는 레이와에 대해 “사람들의 아름다운 마음이 화합하는 가운데 문화가 자라난다는 의미가 담겨있다”고 설명했다.
⑩하지만 도쿄 템플대의 제프 킹스턴(Jeff Kingston) 아시아 연구 소장은 CNN과의 인터뷰에서 “새 연호 선정은 일본 정치의 우경화를 반영하는 것”(the choice of the name mirrors the rightward trend in Japanese politics)이라고 지적했다.

 

일본 전문가들은 연호를 어떻게 보고 있을까?
⑪도쿄대학 사료편찬소의 야마모토 히로부미(山本博文) 교수는 “헤이세이는 정치적인 언어로 정치적인 이념을 나타낸 것”이라며 “하지만 레이와는 정치로부터 벗어난 인상을 준다”고 말했다.
⑫노벨상 수상자이자 의학자인 교토대 야마나카 신야(山中伸弥) 교수는 “레이(令)라는 글자는 지금까지 연호에 사용된 적이 없고, 와(和)는 쇼와(昭和)처럼 전통을 중요시하는 동시에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일본의 지금 모습과 일치한다”고 말했다. 외국 언론들의 해석은 조금씩 미묘한 차이를 보였다.
⑬영국 BBC는 “레이와는 명령, 질서뿐만 아니라 상서롭거나, 좋다는 의미”(Rei can mean "commands" or "order", as well as "auspicious" or "good")라고 전했다.
⑭미국 월스트리트저널도 ‘상서롭다’(auspicious)라는 단어에 주목했다.
⑮영국 가디언은 “TV 해설자들이 직역하는데 애를 먹었다”(TV commentators struggled to offer a direct translation)고 전했다.


일본 사람들은 명령을 뜻하는 한자(令)에 어리둥절한 분위기다.
⑯특히 아베 총리의 노선에 비판적인 사람들은 대체로 “국수주의적 냄새가 풍긴다”고 지적했다.
⑰트위터엔 “민중은 반대하지 말고 얌전히 있으라는 느낌을 받았다”는 글이 올라왔다.
⑱일본 개그맨 키튼(キートン46)씨는 트위터에 “령(令)이라는 글자나 명령(命令)같은 건 내게 그다지 좋은 이미지가 아니다”라며 “이제 연호가 됐으니 이미지가 변하면 좋겠다”(令って字が命令とか私はあまりいいイメージがないので、元号になってイメージが変わるといいですな)는 말을 올렸다. 새 연호의 의미를 잘 모르겠다는 사람들도 많이 눈에 띄었다.
⑲도쿄 오타(大田)구에 거주하는 29세의 회사원은 “좀 더 친숙한 연호였으면 좋았을 것 같다”(もっと親しみが持てる元号のほうがよかった)고 언론에 말했다.
⑳아이치현에 사는 66세의 노리카즈(榊原令和)씨는 연호 발표에 깜짝 놀란 케이스다. 이 남성은 이름에 令和가 들어가지만, 발음이 연호와는 다르다. 그는 “설마 같은 한자가 사용될 줄은 생각하지 못했다”(まさか、同じ漢字が使われるとは思いもしませんでした)고 말했다.

 

㉑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의 연호 발표 이후, 언론들 대부분이 역사적인 사건을 알리기 위해 호외를 발행했다.
㉒도쿄 도심 시부야와 신바시(新橋) 등에서는 호외를 받기 위한 쟁탈전이 벌어졌다.
㉓한 일본인은 내게 “평소 재해 등에 차분하게 대응하는 일본인들이지만, 이번 경우는 좀 다른 것 같다”며 “일본인답지 않다”고 말했다. 호외를 구매하려는 분위기도 심상찮다.
㉔언론에선 “호외가 5000엔 이상의 가치가 있을 것”이라는 보도가 나왔다.
㉕중고사이트 ‘메르카리’에서는 ‘5555엔에 판다’는 내용도 올라와 있다.

 

새 연호 축하 반응도 가지가지였다.
㉖연호의 출처인 만엽집에 대한 구매가 쇄도하고 있다. 이미 서점에서는 품귀현상을 빚었다. 한 출판사는 “주문이 평소보다 수백 배 더 많이 들어오고 있다”고 말했다.
㉗대형서점인 문교당그룹홀딩스의 주가가 일시적으로 29% 상승하기도 했다.
㉘시즈오카현의 한 동물원에서는 물개가 붓을 입에 물고 새 연호를 화이트보드에 쓰는 퍼포먼스도 펼쳤다.
㉙사이타마의 경영 컨설팅 회사 YIC컨설팅은 연호 발표 후 ‘레이와 컨설팅’으로 이름을 변경하고 법무국에 등기를 신청했다.
㉚초대 진무 천황의 탄생지로 알려진 미야자키현의 다카치호봉(1574m) 정상에서도 연호와 관련된 행사가 벌어졌다.

 

업계들도 발빠르게 움직였다.
㉛음료회사 코카콜라는 호외 발표 1시간 이후인 12시 40분부터 콜라페트병에 ‘레이와’ 라벨을 붙여 사람들에게 나눠주는 마케팅을 펼쳤다. 호외를 챙기지 못한 사람들은 ‘꿩 대신 닭’으로 콜라를 받고 기뻐했다.
㉜가장 바쁜 곳은 달력업체들이다. 발표가 마자마자 곧바로 ‘레이와 원년’(令和元年)이라는 글자가 들어간 달력 인쇄에 돌입했다. ‘따끈따끈한’ 새 달력을 챙기려는 사람들의 발걸음도 분주하다.
㉝레이와의 출처로 알려진 ‘만연집’의 배경을 찾아가는 성지순례 여행 문의도 쇄도하고 있다.
㉞호텔 숙박료도 깍아준다. ‘레이’ 혹은 ‘와’ 한자가 들어간 이름의 고객에겐 10% 할인, 두 글자 모두 들어간 고객에겐 20%까지 할인해 준다.
㉟ 굿즈 시장도 활기다. 티셔츠, 컵, 핸드폰 케이스, 열쇠고리 등 ‘레이와 굿즈’가 쏟아지고 있다.

 

뭐니뭐니해도 물 만난 곳은 유통업계다.
㊱킨텐츠 백화점은 복주머니 판매, 과자회사 카루비는 포장지에 연호를 적어 넣은 포테이토칩을 한정판매 한다. 세이부 백화점은 4월말까지 헤이세이가 새겨진 도라야키(화과자)를. 5월 1일부터는 레이와가 새겨진 도라야끼를 판매한다.
㊲소소한 이벤트도 있다. 돈키호테는 1000엔 이상 구입한 사람을 대상으로 1엔 단위는 깎아주는 행사를 진행한다.
㊳IT업체들도 시간 싸움을 벌이고 있다. 은행, 보험사, 정부기관에 IT 서비스 제공하는 업체들은 ‘레이와 원년’으로 시스템을 고치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㊴게임시장도 예외는 아니다. 블루마블 게임 일본버전인 ‘인생게임’(人生ゲーム)은 레이와 버전으로 업그레이드해 출시했다. 추첨을 통해 뽑힌 사람 100명에게는 무료 배포했다.
㊵ 새 연호에 편승한 사기 사건도 일어나고 있다. 금융기관 직원을 사칭한 한 남성은 사이타마현의 80대 여성을 상대로 “연호가 바뀌기 때문에 카드를 새로 발급받는 것이 좋다”며 카드 3장과 현금 100만엔을 가로챘다.


정희선 객원기자
-인디애나대 켈리 비즈니스 스쿨(Kelly School of Business) MBA
-한국 대기업 전략기획팀 근무
-글로벌 경영컨설팅사 L.E.K 도쿄 지사 근무
-현재 도쿄 거주. 일본 산업, 기업 분석 애널리스트
-'불황의 시대, 일본 기업에 취업하라'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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