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계자로 2대 연속 '사위 양자' 들인 닌텐도
후계자로 2대 연속 '사위 양자' 들인 닌텐도
  • 이재우 기자
  • 승인 2019.05.07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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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경제잡지 포브스는 매년 전 세계 부자 명단을 발표한다. 현재, 일본은 유니클로를 운영하는 패스트리테일링의 야나이 타다시 회장과 소프트뱅크그룹 손정의 회장이 수위를 다투고 있다.

부자 순위는 일본경제의 성장 단면을 보여주는 척도이기도 하다. 지금으로부터 11년 전인 2008년에도 그랬다. 그 무렵, 일본의 게임 산업은 황금기를 누렸다.

2008년 5월 포브스는 일본의 부자 순위(Japan's 40 Richest)를 발표하면서 “닌텐도의 야마우치 히로시(Hiroshi Yamauchi)가 1위에 올랐다”고 보도했다. 야마우치 히로시(山内 溥:1927~2013)는 일본 최대의 게임회사 닌텐도의 3대 회장을 지낸 인물이다.

포브스는 “야마우치의 재산 순가치가 30억 달러로 치솟았다”며 “위(Wii) 게임기 판매의 증가 덕택에(thanks mostly to booming sales of the Wii gaming device) 2006년 이후 3배가 됐다”고 전했다.

위(Wii)는 닌텐도사가 제작한 가정용 비디오 게임기를 말한다. 닌텐도는 위(Wii)의 성공으로 2007년 시가총액 10조 엔을 넘어서면서 도요타, 미쯔비시 UFJ 파이낸셜 그룹에 이어 시총 3위에 올랐다. 12년이 지난 2019년 현재, 닌텐도는 시총 17위(5조 1600억엔)에 랭크돼 있다.(니혼게이자이신문 자료)

미국 작가 데이비드 세프(David Sheff)는 ‘닌텐도의 비밀’(이레미디어, 2009)이라는 책에서 “Wii라는 이름은 We로 발음된다는 점과 사람들이 모여 있는 모양을 형상화한 것으로 게임 인구 확대라는 닌텐도의 기본 전략이 담겨 있다”고 했다.

이번 ‘일본 브랜드 네이밍 이야기’는 일본에서 한때 부자 반열 1위에 올랐던 닌텐도(任天堂)의 야마우치 가문과 그 브랜드의 성장을 담았다.  <편집자주>

# 만약 스티브 잡스와 닌텐도가 맞붙었다면?
‘게임을 즐기면서 돈도 벌 수 있다.’
수염을 기른 열일곱 살의 청년은 어느 날, 지역신문 채용란에서 이런 문구를 발견했다. 1974년 오리건 주의 리드대학(Read College)을 막 자퇴하고 캘리포니아주의 부모 집으로 돌아온 청년에겐 일자리가 필요했다. 이 청년의 이름은 스티브 잡스(Steve Jobs)였다. 잡스를 채용한 곳은 미국 최대 게임회사 아타리(Atari)였다.

아타리의 관계자는 당시 “우리는 로비에서 그 청년(잡스)을 만났는데, 그는 괴짜 아니면 좀 별난 사람처럼 보였다”고 말했다(We've got this kid in the lobby. He's either got something or is a crackpot.)고 한다. <원문: 북미 게임매체 가마수트라(gamasutra)에 실린 ‘스티브 잡스, 아타리의 40번째 직원’(Steve Jobs, Atari Employee Number 40)이라는 제목의 기사)

잡스는 별다른 경력이 없었지만 채용 공고를 낸 아타리의 40번째 직원으로 취직하게 됐다. 잡스에게 맡겨진 임무는 게임기 개발자를 보조하는 일이었다.

그 무렵 잡스에게는 컴퓨터 천재인 다섯 살 위의 친구 스티브 워즈니악(Steve Wozniak: 휴렛팩커드의 기술자)이 있었다. 게임광이었던 워즈니악은 아타리 공장에서 게임을 실컷 즐기는 대신, 잡스가 게임기 회로 수리에 애로를 겪으면 성심성의껏 도와주었다고 한다.

잡스는 업무 시간이 아닌 오프타임에 워즈니악과 집 차고에서 가정용 컴퓨터 회로판을 만들었는데, 이를 ‘애플 Ⅰ’(Apple I)라고 불렀다. 잡스는 후속 제품을 아타리 측에 제안했지만 거절 당했다. 최초의 비디오 게임으로 알려진 ‘퐁’(pong)의 설계자인 아타리의 개발자 앨런 앨콘(Allan Alcorn)은 당시 이렇게 말했다.

<잡스는 애플 II를 아타리에 제안했다. 우리는 “사양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나는 잡스를 좋아했다. 그는 훌륭한 청년이었다. 그래서 나는 벤처 캐피탈리스트에 잡스를 소개했다.>
(가마수투라 원문: He offered the Apple II to Atari ... we said no. No thank you. But I liked him. He was a nice guy. So I introduced him to venture capitalists.)

잡스는 아타리와 결별하고 1976년 4월 1일 애플 컴퓨터를 설립했다. 이렇게 스티브 잡스 이야기를 장황하게 늘어놓은 것은 ‘가정’(if) 때문이다.

만약 게임회사 아타리가 잡스의 제안을 받아들였다면 어떻게 됐을까. 잡스가 훗날 애플을 크게 성장시킨 것처럼, 아타리를 글로벌 게임회사로 만들지 않았을까. 일본의 거대 게임회사 닌텐도에 대항하는 그런 회사 말이다. 닌텐도 입장에선 잡스가 아타리를 떠나 컴퓨터업계로 진출한 것이 다행이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 2대 째 아들이 없었던 야마우치 가문
그 행운의 기업 닌텐도는 교토에서 창업한 화투 제조 회사로 출발했다. 창업주는 야마우치 후사지로(山内房治郎: 1859~1940). 화가이자 장인(匠人)이었던 그가 일본의 전통 화투(花札: 하나후다)를 만드는 가게 ‘임천당골패’(任天堂骨牌: 닌텐도곳파이)를 창업한 건 1889년이다. 임천당(任天堂)은 ‘닌텐도’, 골패(骨牌)는 ‘곳파이’라고 발음한다. 골패는 일본의 상업용 카드 ‘카루타’(カルタ)를 지칭한다.

회사 이름 닌텐도(任天堂)는 한자 뜻 그대로다.‘사람이 할 일을 다하고 운을 하늘(天)에 맡긴다(任)’는 의미를 담고 있다. 초대회장 야마우치 후사지로는 손재주가 좋았다고 한다. 화투를 대량 생산하기 위해 도제들을 키웠고, 닌텐도 카루타(カルタ) 사업을 확장해 나갔다. 은퇴 무렵, 닌텐도는 일본 최대의 카드 회사가 되어 있었다.

그런데 야마우치 가문은 2대에 걸쳐 ‘양자사위’(婿養子)를 맞아들인 ‘희한한 집안’이었다. 창업주(1대 회장) 야마우치 후사지로에겐 아들이 없었다. 경영을 잇기 위해선 데릴사위가 필요했다. 그의 딸 야마우치 테이(山内貞)는 가네다 세키료(金田積良)라는 남성과 결혼했다.

가네다 세키료는 성을 야마우치로 바꾸고 ‘야마우치 세키료’(山内積良:1883~1949)가 됐다. 창업주 야마우치 후사지로의 ‘양자사위’가 된 것이다. 그는 1929년 닌텐도의 2대 회장에 취임했다.

어찌된 일인지, 세키료와 테이 부부 역시 아들이 없었다. 부부의 장녀 야마우치 키미(山内君)는 이나바 시키노조(稻葉鹿之丞)라는 남자와 혼인했다. 이나바 시키노조 역시 자신의 성 이나바를 버리고 야마우치(山内) 성을 얻었다. 야마우치 시카노조(山内鹿之丞)라는 이름의 닌텐도상속자가 된 것이다.

야마우치 시카노조와 아내 키미 부부는 3대째 만에 귀한 아들을 얻었다. 야마우치 히로시(山内 溥:1927~2013)라는 사람이다. 그런데 3대 회장 자리는 아버지 시카노조가 아니라 아들 히로시에게 돌아갔다. 아들 히로시가 다섯 살 무렵, 아버지 시카노조가 집을 나갔기 때문이다.

미국 프로야구 시애틀 매리너스 선수들이 구단주 야마우치 히로시의 사망을 추모하고 있는 장면. photo=infendo.com
미국 프로야구 시애틀 매리너스 선수들이 구단주 야마우치 히로시의 사망을 추모하고 있는 장면. photo=infendo.com

# 시애틀 매리너스의 구단주가 되다
창업주의 증손자 야마우치 히로시는 1949년 닌텐도의 3대 회장에 올랐다. 그는 닌텐도곳파이(任天堂骨牌)라는 회사 이름을 ‘닌텐도 카루타’로 바꾸었다. 1953년엔 일본 최초로 플라스틱으로 코팅한 카드를 대량 생산하기 시작했다. 이후 회사 이름은 카루타를 떼어내고 ‘닌텐도주식회사’가 되었다. 편집자주에서 언급한 대로, 야마우치 히로시는 닌텐도의 중흥시대’를 열었다. 

야마우치 히로시는 미국 프로야구 최초의 ‘비백인’ 구단주이기도 했다. 1992년 시애틀 매리너스(Seattle Mariners)가 경영 위기에 처하자 최대주주로 참여했다.MLB(Major League Baseball)는 당시 일본 기업이 미국 구단을 통째로 인수하는 것을 꺼렸다. 그래서 야마우치 히로시의 지분은 49%로 제한됐다.)

일본 프로야구 스타 스즈키 이치로가 메이저리그 진출을 타진했을 당시, 구단주 야마우치 히로시가 “무슨 일이 있어도 잡아”(何が何でも獲れ)라고 했던 일화는 유명하다.(이치로는 2001년 시애틀에 입단, 11시즌을 뛰고 2012년 뉴욕 양키스로 이적했다. 이후 2005년 마이애미 말린스로 옮겼다가 2018년 시애틀로 돌아왔다. 올해 3월 은퇴를 발표했다.)

구단주 야마우치 히로시는 이치로 선수에 대한 애정도 표했다. 2005년 소속팀 선수 이치로가 연간 최다 안타를 기록하자 그 기념으로 자신이 보유하고 있던 닌텐도의 주식 5000주(당시 5800만 엔 상당)를 선물했다.(일본매체 ZAKZAK)

닌텐도 경영자이면서 ML 구단주였던 야마우치 히로시는 2013년 9월 19일 세상을 떠났다.(당시 85세) 며칠 후인 9월 23일, 시애틀 매리너스의 홈구장인 세이프코필드(Safeco Field)에서는 추모 묵념 행사가 진행됐다.

시애틀 선수단은 2013년 시즌이 끝날 때까지 야마우치 히로시의 영어 이니셜(HY)이 새겨진 휘장을 내걸고 경기를 펼친 것으로 전해졌다. 구단이 다른 연고지로 팔려가지 않게 해준 일본 구단주에 대한 예의의 표현이었다.

# 영국 여왕, 위(Wii) 게임의 팬이었다?
야마우치 히로시 사망 5년 전인 2008년엔 재미있는 일도 있었다. 그해 1월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이 닌텐도의 위(Wii) 팬’이라는 언론 보도가 나온 것이다. 여왕은 크리스마스 시즌에 손자가 위(Wii)를 하는 것을 보고 자신도 위(Wii)로 볼링 게임을 즐기게 됐다고 한다. 

당시, 이를 마케팅으로 연결시키려던 회사가 있었다. 메이저 게임유통사 THQ였다. 이 회사는 2009년 여왕을 위한 전용 Wii를 만들기로 했다. 전 세계에 한대 뿐인 황금제품이 탄생했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은 2009년 6월 1일 ‘엘리자베스 여왕, 황금플레이트 위를 받다’(Queen Elizabeth Receives Gold-Plated Wii)는 기사를 싣기도 했다. 하지만 이 제품은 여왕에게 전달되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버킹엄궁의 사전승인을 받지 못해서다.

얄궂은 일이 THQ에 닥친 건 3년 뒤인 2012년 12월이다. 파산보호 신청을 내고 매각되는 운명을 맞은 것이다. 반면 위(Wii)를 만든 주체인 닌텐도는 엄청난 이익을 거둬 들였다.

닌텐도는 현재 중국을 겨냥해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4월 18일 “닌텐도가 텐센트와 제휴를 통해 가정용 게임기 스위치 콘솔을 중국에 출시할 것”(Nintendo, With Tencent’s Help, to Sell Switch Console in China)이라고 보도했다. <이재우 기자, 재팬올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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