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쿠시마/ 소설가 하야시 후미코의 '소설 속 공간'
야쿠시마/ 소설가 하야시 후미코의 '소설 속 공간'
  • 이재우
  • 승인 2019.06.04 10: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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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근대문학의 한 축을 담당했던 하야시 후미코
그녀는 야쿠시마에서 역작 ‘부운’(浮雲)을 썼다
그녀가 묵었던 호텔로비에서 강마을을 찍었다
안개가 걷힌 강마을의 전경. 일본 근대문학의 한 축을 담당했던 소설가 하야시 후미코가 묵었던 호텔 바로 옆에 있다.
안개가 걷힌 강마을의 전경. 일본 근대문학의 한 축을 담당했던 소설가 하야시 후미코가 묵었던 호텔 바로 옆에 있다.

# 지난해 5월과 6월, 일본의 외딴 섬 야쿠시마(屋久島)에서 열흘 가량 묵었다. 두 번째 방문인 6월의 어느 날, 나는 ‘산장호텔’이라는 이름의 숙소 로비에서 호텔 밖 창문을 열고 뭔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호텔은 빨간 다리가 놓여진 강 언덕 위에 자리잡고 있다. 호텔 로비는 5층.

나는 로비 창문을 열어젖히고 강을 뒤덮은 안개가 걷히길 1시간 째 기다리고 있었다. 카메라 셔터에 손을 얹어놓은 채. 이윽고 비를 머금고 있던 안개가 서서히 길을 터주기 시작했다. 멀리서부터 이마를 서로 맞대고 있던 강가의 작은 집들이 시야에 들어왔다. 강 기슭에 몸을 묶은 작은 배들도 따라서 모습을 드러냈다. 안개가 그라데이션처럼 밀려나고 맑은 강이 얼굴을 내밀었다.

빨간 다리를 걸어가면 하야시 후미코가 묵었던 산장호텔이 보인다.
빨간 다리를 걸어가면 하야시 후미코가 묵었던 산장호텔이 보인다.

때는 왔다. 며칠을 기다리고 또 기다렸던 순간이었다. 사진은 테크닉 보다는 ‘기다림의 미학’이라고 하지 않던가. 셔터 위에 얹은 손이 미세하게 떨렸다. 떨리는 손을 진정시키며 파인더속 뷰(view)를 맞춰나갔다. 아, 그런데 웬걸. 머리가 명령을 내리지 않았는데도 벌써 손은 셔터를 차르르~ 누르고 있었다. ‘에라 모르겠다. 니(네) 마음대로 하세요’라는 식으로 내버려두었다.

# 남들이 보면 대단한 걸 찍는 전문가처럼 ‘사설’을 풀어 놓았는데, 사실 그런 사진 기교나  깜냥이 있지는 않다. 이 호텔을 사진 포인트로 잡은 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이 호텔 로비의 한 쪽 벽에는 한 소설가의 삶을 담은 사진들이 붙어있다. 여성이다. 이미 68년 전에 죽었다. 그녀의 이름은 하야시 후미코(林 芙美子: 1903~1951). 일본 근대문학의 한 축을 이뤘던 소설가다. 하야시 후미코는 필생의 역작 ‘부운’(浮雲)이라는 소설을 이곳 야쿠시마에서 집필했다. 더 정확히는 이 산장호텔에서.

호텔입구에는 ‘하야시 후미코 부운의 숙소’라는 글이 쓰여 있다.
호텔입구에는 ‘하야시 후미코 부운의 숙소’라는 글이 쓰여 있다.

야쿠시마는 1993년 일본에서 가장 먼저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된 곳으로 수령 수천 년 된 삼나무와 이끼가 장관을 이루는 섬이다. 그 4년 뒤인 1997년엔 일본 애니메이션의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이곳을 배경으로 ‘원령공주’(모노노케히메)를 만들었다. 지금은 야쿠시마가 세계자연유산과 원령공주의 섬으로 더 잘 알려져 있지만 훨씬 그 이전에는 하야시 후미코가 ‘부운’을 쓴 소설의 섬으로 사람들에게 인식됐다.

# 독자들이 ‘강 사진 하나 찍는데 뭐 그리 기다릴 필요가 있나’라고 물을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하야시 후미코 소설의 한 대목을 읽고 나면 ‘아~ 그렇구나’라고 고개가 끄덕여 질 것이다. 소개하면 이렇다. “야쿠시마는 한 달에 35일은 비가 내릴 정도이니까요.” 30일도 모잘라 거기다 5일을 더 붙였다. 비가 많이 내린다는 사실을 그렇게 표현한 것이다.

산장호텔 로비에 비치된 하야시 후미코의 소설 ‘부운’
산장호텔 로비에 비치된 하야시 후미코의 소설 ‘부운’

소설 ‘부운’은 1949년부터 1951년 4월까지 3년간 일본 월간지 ‘풍설’(風雪)과 ‘문학계’(文學界)에 동시 연재되면서 완성됐다. 사생아로 태어난 하야시 후미코는 하녀, 노점상, 여공, 여급 등의 직업을 전전하면서 방랑하는 인생을 보냈다. 베스트셀러가 된 ‘방랑기’라는 작품도 있지만, 특히 죽은 해(1951)에 마무리된 ‘부운’은 그녀의 삶을 대변하고 있다. 소설의 제목처럼 인생은 곧 ‘뜬구름’이니 말이다. 하야시 후미코는 특히 생생한 인물묘사가 특징이다. ‘부운’의 한 구절을 인용해 본다.

<12시, 시계가 울렸다. 도미오카(남자 주인공)는 아침목욕을 했다. 5, 6일 동안이나 목욕을 하지 못한 가난한 생활에서 해방된 기분이었다. 코발트 타일이 붙은 작은 욕조 가득 뜨거운 물이 넘쳤다. 흰 외국 비누로 몸을 씻자 도미오카는 말라서 죽어간 아내에 대한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 작은 창으로 눈이 내려 쌓여 있는 것을 보자 도미오카는 방대하고도 위협적인 인간사회의 단면을 훔쳐본 기분이었다. 자신의 마음은 어디에도 없다. 눈이 내리는 넓은 들판을 목적도 없이 방황하고 있는 듯한 황량한 정취가 현실의 발바닥에 붙어오는 듯한 느낌이었다. 쉭쉭하고 소리를 내며 가스에서 솥이 타고 있었다.>

# 하야시 후미코는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6월 28일, 48세의 나이로 숨을 거뒀다. 추도식에는 아이를 업은 엄마, 직공 등 2천여 명의 여성이 몰려들었다고 한다. 작품 대부분은 나루세 미키오(成瀨巳喜男)라는 걸출한 감독에 의해 영화로 만들어졌다.

호텔 벽에 붙은 하야시 후미코 관련 자료.
호텔 벽에 붙은 하야시 후미코 관련 자료.

일본 유명 문학상엔 아쿠타가와 류노스케(芥川龍之介)와 나오키 산주고(直木三十五)를 기리는 ‘아쿠타가와상’과 ‘나오키상’만 있는 게 아니다. 가난한 여성의 삶을 살다간 하야시 후미코를 추억하는 ‘하야시 후미코상’도 있다. 한국과 일본에선 여성문학상을 눈 씻고 찾아봐도 볼 수 없지만, 하야시 후미코 만큼은 죽어서 ‘문학상’은 남겼으니 행복한 인생이 아닐까.

하지만 하야시 후미코 문학상이 만들어 진 건 2014년에 불과하다. 권위있는 문학단체나 기관이 아닌 그녀의 출신지인 기타큐슈시가 제정했다. 문학상 중단편을 대상으로 시상하는데 연령, 성별, 국적을 가리지 않고 누구나 응모할 수 있다.

#. 2019년 6월 3일 현재, 나는 ‘원령공주의 섬’ 야쿠시마 사진전(6월 13일까지)을 열고 있다.하야시 후미코가 묵었던 호텔, 그 로비에서 찍었던 강마을, 야쿠시마의 삼나무 사진들이 서울 종로구 북촌의 한옥카페 삼청동 4차원에 전시돼 있다. 사진전인 만큼 사진들이 주인공이지만, 전시 공간 한 켠에 하야시 후미코가 쓴 ‘부운’의 한글 번역본(뜬구름)도 비치해 놓았다. <이재우 기자, 재팬올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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