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브랜드 네이밍 이야기: 오리온 맥주)
오키나와의 미군 민정관 버거 장군
태평양전쟁에서 승리한 미군(극동군 총사령부)은 오키나와에 ‘류큐열도미국민정부’(琉球列島米国民政府)를 설치해 그곳을 통치했다. 1957년 어느 날, 미군의 민정관(民政官) 보나 F. 버거 준장은 오키나와의 상공회의소에서 강연을 했다. 그는 “앞으로 오키나와 산업의 기둥은 ‘시멘트’와 ‘맥주’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인터넷 매체 ITmedia 비즈니스)
시멘트는 건물이나 도로 등을 건설하는 ‘하드’ 측면, 맥주는 오키나와 사람들에게 희망과 의욕을 주는 ‘소프트’ 측면을 의미했다. 당시 이 강연을 주의 깊게 듣고 있던 한 경영인이 있었다. 구시켄 소세이(具志堅宗精:1896~1979)라는 사람으로, 그는 자신의 이름을 딴 된장, 간장 회사(具志堅味噌醤油)를 경영하고 있었다.
전후(戰後) 복구 차원의 새 사업을 구상중이던 그는 때마침 버거 준장의 말을 듣고 맥주사업을 실현에 옮겼다. 1957년 5월 구시켄을 필두로, 지역 유지들이 힘을 모아 회사를 설립했다. 회사는 세웠지만 곧바로 맥주를 생산해 낼 수는 없었다. 왜 그랬을까.
사실, 아열대의 오키나와에서 맥주 산업을 일으킨다는 것은 상식 밖의 일이었다. 더군다나, 오키나와의 수질도 문제였다. 오키나와는 산호초가 융기한 섬이어서 토양이 알칼리성으로, 경수(硬水)가 주를 이뤘다. 그런데 이 경수가 맥주 제조에는 적합하지 않았다.
구시켄은 오키나와 각지를 현지 조사한 끝에, 산이 있는 나고(名護) 지역에서 맑은 연수(軟水)를 찾아냈다. 그는 그곳에 공장을 세웠다. 2년에 걸친 수질 조사와 공장 건설을 통해 마침내 회사가 설립됐다.
회사 설립 발기 당시, 사명은 ‘오키나와 기린 맥주 주식회사’였다. 본토 맥주 대기업 기린과 기술 제휴를 도모했던 것. 하지만 협상이 무산되면서 기린이라는 이름을 떼고 ‘오키나와 맥주 주식회사’가 됐다.
오리온으로 브랜드 정한 3가지 이유
기업 브랜드 네이밍의 경우, 창업자의 의지가 반영된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오키나와를 대표하는 맥주 브랜드에는 뭔가 특별한 게 필요했다. 회사는 1957년 11월, 신문에 파격적으로 현상 공모 광고를 냈다. 1등 당선 상금은 83달러 40센트로, 당시로서는 상당한 고액이었다. (이 돈의 가치를 알고 싶은가. 1958년 대한민국의 1인당 국민소득이 80달러였다.)
공모 결과, 현민들로부터 2500여 건이 접수됐고 그 중에서 별자리(별 3개) ‘오리온’이라는 이름이 선택됐다. 오리온 맥주 홈페이지에는 당시 선정 이유가 올라와 있다. “첫째, 오리온은 남쪽 별이라는 점에서 (열도의 남쪽인) 오키나와의 이미지와 일치한다. 둘째, 별은 사람들의 희망과 동경을 상징한다”고 밝히고 있다.
그런데 3번째 이유가 흥미롭다. “당시 오키나와를 통치하고 있던 미군 최고 사령관의 상징이 ‘쓰리 스타’(별 3개)였다는 점도 선정 이유가 됐다”는 것이다. (원문: 当時沖縄を統治していた米軍の最高司令官の象徴が"スリースター"であったことなどが選定の理由となりました。)
회사는 공모 결과를 바탕으로 맥주 이름을 ‘오리온’으로 결정하고, 아예 회사 이름도 ‘오리온 맥주주식회사’로 바꿨다. 1959년 5월 17일, 현민들의 염원을 담은 오키나와 최초의 맥주가 그렇게 세상에 나왔다.
오리온 맥주는 생산된 상품 80%가 오키나와에서 소비되면서 ‘현민 맥주’로 불린다. 일본 전체에서 시장 점유율은 1%선에 그친다.
하지만 연매출 300 억엔이 안되는 중소기업 오리온맥주는 최근 거대 자본의 먹잇감이 되고 말았다. 1월 26일 노무라홀딩스와 미국 투자펀드 칼라일 그룹이 공동으로 매수한다고 밝히면서다. 창업 62년 만에 주인이 바뀌게 된 것이다.
오키나와는 1972년 5월 15일 미국의 지배를 벗어났지만(본토로 반환), 그 지역을 대표하는 향토기업 오리온 맥주는 또 다시 미국 자본의 지배를 받는 운명을 맞았다. (브랜드 네이밍 이야기 맥주편 끝) <에디터 이재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