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드리 헵번과 브랜드 아크(ARCH)의 만남
오드리 헵번과 브랜드 아크(ARCH)의 만남
  • 에디터 이재우
  • 승인 2020.02.24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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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티스틱 브랜드 아크(ARCH)가 최근 출시한 오드리 헵번을 위한 리틀 블랙 드레스. 좌우는 아크스튜디오스(아크)의 로고.

가브리엘 코코 샤넬은 “패션은 건축과 같다. 비율이 핵심”(Fashion is architecture: it is a matter of proportions)이라고 했고, 피에르 발망은 “옷 만드는 작업은 움직임의 건축학”(Dressmaking is the architecture of movement)이라고 했다. 건축학적 패션, 인체공학적 패션을 주창한 것.

아티스틱 패션 브랜드 ‘아크’의 2가지 의미

2018년 한국에서 탄생한 아티스틱 브랜드 아크(ARCH)에도 이런 ‘건축스러움’이 녹아 있다. 아크는 프랑스 패션 명문 ‘파리 의상 조합학교’(Ecole de la Chambre Syndicale de la Couture Parisienne; 칼 라거펠트, 이브 생 로랑, 이세이 미야케 등이 공부) 출신인 조아라(37) 디자이너가 크리에이티브 아트 디렉터를 맡고 있는 ‘프레타 꾸띄르’(프레타 포르테+오뜨 꾸띄르) 브랜드다. 조 디자이너는 지난해 프랑스 명품 코스메틱 ‘드발뢰르 아크’(de valeur ARCH)를 출시한 바 있다.

샤넬과 협업하는 등 프랑스에서 15년간 활동한 조 디자이너는 한국으로 복귀해 브랜드 아크를 론칭했다. 자신의 영어 이름(아라 조:Ara Cho)을 따서 만든 것. 이름을 따서 명명한 것 이외에 아크(ARCH)에는 샤넬과 발망의 철학처럼 건축학적(architecture)인 의미도 갖고 있다. architecture의 앞 네글자를 빌려 아크(ARCH)라고 했다는 것이다.

리틀블랙드레스는 최고급 크레이프 원단을 사용했다.
오드리 헵번이 영화(‘티파니에서 아침을’)에서 입었던 리틀 블랙 드레스. 사진=에브리싱오드리닷컴(https://www.everythingaudrey.com/)

“옷맵시+기부 활동, 오드리를 작품으로 소환하고 싶었다”

조아라 디자이너는 아크의 핵심을 ‘여성성, 우아함, 편안함’에 두고 있다고 말한다. 그런 조 디자이너는 파리에서 패션을 공부하면서 영화에 깊게 탐닉했다. 인물을 통해 영감을 얻기도 하고, 브랜드나 원단에 대한 힌트를 얻기도 했다. 조 디자이너가 영화속 인물 중에서 오랫동안 가슴에 담아둔 이는 명배우 오드리 헵번(Audrey Hepburn)이다.

영화에서 헵번이 입었던 의상들은 아크의 핵심(여성성, 우아함, 편안함)과 맞아떨어지고 “나에게 우아함이란 주목하지 않고 지나치는 것이 아니라 한 인간의 영혼과 맞닥뜨리는 것”(For me, elegance is not to pass unnoticed but to get to the very soul of what one is)”이라고 말한 크리스찬 라크르와(Christian Lacroix)의 생각과도 결을 같이 한다.

조 디자이너는 오드리 헵번의 옷맵시 뿐만 아니라 그 내면(배우 이외의 유니세프 친선 대사 활동)까지 ‘소환’해 작품으로 만들어 보고 싶었다. 그렇게 최근 리미티드 에디션으로 탄생한 것이 ‘리틀 블랙 드레스’(Little Black Dress)다. 리틀 블랙 드레스는 오드리 헵번이 영화(‘티파니에서 아침을’)에서 입었던 의상 이름이다. 헵번에게 이 드레스를 만들어준 디자이너는 잘 알려진대로 위베르 드 지방시(Hubert de Givenchy)다.

지난해 11월 중국 심천에서 ‘브랜드 로레이 어워드상’을 수상한 조아라 디자이너. 조 디자이너는 지난해 12월 ‘월드스타연예대상’ 아티스트 부문상(서울)도 수상한 바 있다.

위베르 드 지방시의 뮤즈, 오드리 헵번

헵번은 영화에서 이 우아한 드레스를 입었고, 이후 두 사람은 40년 우정을 유지했다. 둘의 특별했던 관계를 살펴볼 수 있는 한 장면이 있다. 전기작가 알렉산더 워커가 쓴 책 <아름다운 인생, 오드리 헵번>(출판사 달과 소, 2003년)이라는 책에는 이런 내용이 나온다.

<1989년, (스위스에 거주하는 오드리의) 예순 번째 생일에 예순 송이의 백장미가 배달 되었다. 지방시가 보낸 것이었다. 지방시는 그때 프랑스의 투르 근처에 있는 17세기 정원풍의 저택에 살고 있었는데, 오드리에게 장미 묘목을 선물 받은 후 정원수로 키우고 있었다. 지방시는 오드리의 나이와 똑같은 수의 장미를 심어 두었다가 전부 그녀에게 보냈던 것이다.>

리틀 블랙 드레스 출시 배경은?

조 디자이너는 “두 사람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라며 “오드리 헵번은 ‘사브리나’와 ‘티파니에서 아침을’ 등 여러 영화에서 지방시의 옷만 입었다. 그런 오드리는 지방시의 영원한 뮤즈였던 셈”이라고 했다. 조 디자이너는 리틀 블랙 드레스 출시 배경에 대해서는 이렇게 말했다.

칼 라거펠트는 “블랙 없이는 샤넬도 없다. 존재 자체가 불가능하다. 검정색 옷 몇 벌 없는 사람이 어디 있는가”라며 블랙을 찬사했다.
조 디자이너는 "아크가 내놓은 이 드레스는 세련되고 우아한 핏(fit)감이 어느 자리에서나 돋보이는 데일리 룩”이라고 했다.

“오드리 헵번은 시대를 아우르는 아이콘으로, 여성의 근원적 삶의 가치를 보여주었습니다. 그런 오드리 캐슬린 러스턴(Audrey Kathleen Ruston: 오드리 햅번의 본명)에게 바치는 오드리 드레스(Audrey Dress)를 만들었습니다. 디자이너에게 블랙은 본연의 아름다움을 전달하는 최고의 컬러죠. 리틀 블랙 드레스는 세련되고 우아한 핏(fit)감이 어느 자리에서나 돋보이는 데일리 룩입니다.”

조아라 디자이너는 최고급 크레이프 원단의 리틀 블랙 드레스를 ‘오드리 드레스’라고 이름 지었다. ‘헵번 드레스’가 아니고 왜 ‘오드리 드레스’일까.

오드리 헵번의 이름에 대한 전기작가의 기록

여기서 오드리 헵번의 이름에 대한 부분도 짚고 넘어가면 흥미롭다. 오드리 헵번은 1929년 5월 4일 아일랜드계 아버지와 네덜란드계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출생지는 벨기에 브뤼셀의 외곽 도시.

전기작가 알렉산더 워커에 따르면, 오드리 헵번 아버지의 이름은 ‘조셉 빅터 안톤 헵번 러스턴’이라고 한다. 헵번은 왕실가(家)의 이름이다. 오드리 아버지의 혈통이 ‘헵번가(家)’였는지는 확실치 않다. 다만 오드리의 사촌인 월터 러스턴은 “오드리는 죽는 날까지 자신은 헵번가의 사람이었다고 확신했다”고 밝혔다.

저자 알렉산더 워커는 오드리의 출생 당시 이름에 대해 “에다(어머니쪽 네덜란드 가문의 이름) 캐슬린(아버지의 아일랜드 가문의 이름을 딴 것으로 추정) 헵번 러스턴이라고 이름 지어졌다”고 했다. 에다 캐슬린 헵번 러스턴이 본명이라는 것. 오드리는 1940년대 초, 독일군의 점령지인 네덜란드에서 10대를 보내고 있었다. 알렉산더 워커는 어린 오드리의 당시 심정을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네덜란드 이름 ‘에다’의 영어식 표현이 ‘오드리’

<이 기간 동안 사람들 앞에서 그는 영어를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전쟁 전에는 ‘에다’라는 네덜란드 이름을 영국식인 ‘오드리’로 불리는 걸 좋아했지만 (전쟁 중엔)친구들에게 ‘오드리’로 부르지 말고 ‘에다’로만 불러주도록 신신당부했다. 학교에서는 영어 대신 독일어를 가르쳤다.>

오드리 헵번은 1993년 1월 20일 스위스에서 생을 마감했다. 알렉산더 워커는 “집에서 몇 백 미터 떨어진 조그마한 프로테스탄트 교회에서 오드리 헵번의 죽음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려 퍼졌다”고 했다.

이런 스토리를 가진 오드리 헵번의 삶을 ‘리틀 블랙 드레스’로 재표현한 한정판 제품은 ‘아크 스튜디오’를 통해 구입할 수 있다. <에디터 이재우>

▶아크(ARCH) 홈페이지

▶아크 관련 유튜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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