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행 고집하던 아베 총리 드디어
도쿄올림픽 강행을 고집하던 아베 신조 총리가 마침내 두손을 들었다. 아베 총리와 바흐 국제올림픽위원회 IOC 위원장은 24일 밤 회담을 갖고 올림픽 연기를 결정했다. IOC도 이를 공식발표했다. 정확한 개최 시기는 정해지지 않았으며, 늦어도 내년 여름 전에는 개최하기로 합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일본은 과거 올림픽 취소의 트라우마가 있다. 194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도쿄에서 열리기로 돼 있던 올림픽은 중일전쟁으로 취소됐다. 그러면서 개최권이 핀란드 헬싱키로 넘어갔다. 핀란드 역시 전쟁을 피할 수는 없었는데, 1944년 대회 역시 2차 세계대전으로 열리지 못했다. 취소된 두 나라는 1952년(핀란드), 1964년(일본)에야 뒤늦게 대회를 유치할 수 있었다.
1964년 이케다 하야토 내각 때 올림픽 개최
일본으로서는 1964년 도쿄 올림픽은 패전을 딛고 일어선 부흥의 이벤트 현장이었다. 그해 일본은 세계 최초의 상업용 고속철도인 도카이도 신칸센이 개통하는 신시대를 열었다. 당시 일본 총리는 이케다 하야토(池田勇人, 재임 기간: 1960년 7월~1964년 11월)였다. 하지만 올림픽 개최의 초석을 깐 것은 전임 총리인 기시 노부스케(岸信介, 재임 기간: 1957년 2월 ~1960년 7월)였다. 기시는 아베 신조 총리의 외할아버지다.
아베 총리는 1964년 도쿄 올림픽이 열릴 당시 초등학교 4학년이었다. 일본 56, 57대 총리를 지낸 외할아버지 기시(1896~1987)의 무릎에서 올림픽 개최 광경을 지켜봤을 ‘소년 아베’의 심정은 2006년 쓴 책 ‘새로운 나라로’에서 잘 나타나 있다. 아베 총리는 당시 도쿄올림픽을 “일본이 가장 빛났던 시기”라고 묘사했다.
올림픽 개최 전후 내각에 아베 조부들이 총리
도쿄올림픽을 성공적으로 개최한 이케다 하야토 내각은 경제 대국 일본의 모습을 전 세계에 알렸으며, 이후 들어선 사토 에이사쿠(佐藤榮作) 내각은 대국으로 부상한 신일본을 국제 무대에 데뷔시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사토 에이사쿠 총리(재임 기간: 1964년 11월~1972년 7월)는 기시 노부스케의 친동생으로 아베 총리에게는 작은외할버지가 된다. 사토 에이사쿠는 1970년 오사카 국제박람회 개최를 통해 경제대국 일본의 힘을 다시 한번 과시하기도 했다.
이렇듯, 일본의 첫 올림픽 개최 시기 앞뒤 내각에 아베 총리의 외할아버지 형제들이 포진해 있었다. 이런 조부들의 모습을 지켜보며 자란 아베 총리는 올림픽 개최 의지에 강한 모습을 보여왔고, 그동안 고집을 꺾지 않았다.
하지만 각종 여론조사에서 국민 80% 이상이 연기나 취소 반응을 보였고, 다른 나라 일부 종목 선수들의 불참 선언과 코로나 사태 장기화가 예상되면서 결국 연기를 결정할 수밖에 없었다. 아베 총리로서는 취소가 아닌 연기라는 점에서 그의 장기 집권에는 크게 영향을 받지 않을 것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에디터 이재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