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훈구의, 일본영화 경제학㉛/ 전후 황금기9(도호)
이훈구의, 일본영화 경제학㉛/ 전후 황금기9(도호)
  • 이훈구 작가
  • 승인 2020.05.26 12:47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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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라자와 아키라 감독의 '7인의 사무라이'.

황금기 시대를 맞은 영화사 도호(東宝)

도호(東宝)하면 지금도 떠 오르는 단어들이 있다. ‘고지라’(GODZILLA, ゴジラ), 도라에몽(ドラえもん), 극장판 짱구는 못말려(クレヨンしんちゃん) 그리고 구로사와 아키라(黑澤明) 등이 생각날 것이다. 도호는 사실 도호쟁의 이후 신도호(新東宝)와 분리(정확히 말하면 도호의 자회사로 시작하여 독자적 경영으로 바뀜)되는 과정에서 재능 있는 기획자들이 옮겨가기도 했지만 오히려 이러한 유출이 자기 색깔을 만들어내는데 일조했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또한 신도호의 나중 운명이 그러하듯 서로 선의적 관계에서 인력 스와핑을 종종 하기도 하고 앞서 밝혔듯이 구로사와 아키라 같은 경우는 시나리오를 집필해 준 인연도 있고 하여 서로 ‘윈윈’하는 전략을 썼기에 황금기에 달러박스를 생산해 내는 저력을 발휘한다.

도호, 사무라이-닌자-괴수영화에 집중

일본의 영화사들은 서로 전통을 존중하면서 때로는 상대의 기획을 인정해 주는 경우가 많아서 황당무계한 발상이라도 일단 듣고 보는 경향이 많았던 것이다. 덕분에 도호는 사무라이, 닌자 영화들과 고지라로 대표되는 괴수영화 그리고 구로사와 아키라라는 세가지 컨셉으로 밀고 나갔다. 사실 엄밀히 말하자면 1950년대는 구로사와 아키라의 독무대였기도 하다. 도호는 동시상영방식으로 흥행에 성공한 도에이(東映)에 자극받아 나중에 배급업에도 진출하여 막강한 라인을 구축하기도 하지만 이 시기 도호는 ‘오리엔탈리즘(Orientalism)’에 주목했다. 닛카쓰, 도에이, 도호라는 3대 매이저 영화사들의 경쟁구도 속에서 뭔가 색다른 것이 필요했던 것이다.

이러한 모순적 상황이 가능한 건 당시의 일본이 패전국이었기 때문이다. 자신들은 과거의 영화를 회상할 컨텐츠가 필요했지만 그렇다고 군국주의 시절을 회상할 수는 없었다. 아즈치, 모모야마 시대와 에도시대의 검객이었던 미야모토 무사시(宮本武蔵)시리즈가 유행했던 것도 같은 맥락에서 바라봐야 한다. 한국의 ‘국뽕 논쟁’처럼 전후 일본인들의 패배주의를 극복하기 위해 전국시대와 에도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여기에 오리엔털리즘이라는 옷을 입히면 서구의 영화계는 환호를 보내주었다. 기모노와 사무라이가 빠진 일본영화는 세계시장에서 그 가치가 떨어지게 마련이었다.

1950년 7억명 넘는 관객 돌파는 ‘도호의 덕’

이 시기 도호는 그 이후에도 그랬지만 ‘사회고발영화’는 되도록 피해 가면서 사무라이 영화와 괴수영화에 집중하여 황금기의 한 축을 지켜나갔던 것이다. 물론 구로사와 아키라라는 거장이 버티고 있었지만 1950년에 이미 영화관수 2410개, 215편의 일본영화와 185편의 외화를 통해 7억1800만명의 관객수를 돌파한 저력의 절반은 도호에서 나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나 그 시절 도호의 영화들은 이후 서구영화계에서 리메이크 되고 일본 본토에서도 계속 속편들이 제작되는 추세이고 보면 이들의 활약은 대단한 것이었다.

구로자의 ‘7인의 사무라이’ 할리우드서 리메이크

이 시절 도호의 영화 중 가장 빛나는 영화는 ‘7인의 사무라이’와 괴수영화 ‘고지라’이다. 특별히 구로사와 아키라를 언급하기 위해서는 ‘7인의 사무라이’가 제격이다. 1936년 현재의 스튜디오 도호에서 처음 영화 일을 시작한 구로사와 아키라는 57년 동안 30편의 영화를 연출했으며 시나리오작가, 프로듀서, 편집자로서도 활동했는데 주옥 같은 그의 작품들 중 ‘7인의 사무라이(七人の侍, Seven Samurai, 1954)’를 언급하는 이유는 할리우드에서 각각 '아웃레이스', '황야의 무법자’, ‘황야의 7인’으로 리메이크됐기 때문이다. 훗날 수많은 액션영화와 서부영화의 원형이 되었다는 점에서 그 업적은 실로 크다 하겠다.

우선 현대 시나리오 작법의 표준이라고 할 수 있는 ‘캐릭터 중심’의 시나리오로 만들어졌다. 인물들의 설정이 기이하다. 원래 이 작품은 정착민에게 끝내 신뢰받지 못하고 마을을 떠나는 떠돌이 낭인들의 패배를 주제로 하는 작품으로 기획되었다. 그러나 이후 여러 차례의 수정을 거쳐 종전과 다른 사무라이 영화로 거듭난다. ‘전문가들이 모여 일을 벌이는’ 팀업 장르로 변신하는 것이다. 기이한 인물들이 흥미진진한 전투를 이끌어 내면서 기존 사무라이영화에 등장하는 무사들이 뭔가 대가나 명분을 바라고 싸운 것과 달리 이 영화에 등장하는 무사들은 비록 낭인이지만 위기에 빠진 농민들을 구원해 내면서 자신들의 성취감도 갖고 동료를 잃은 슬픔 속에서도 마을 사람들에게 진정한 무사도가 무엇인지를 가르쳐 주는 것으로 마무리 된다.

미후네 도시로의 연기...권위적 사무라이 모습 탈피

전투 중에 일어난 각종 부조리와 회의감들은 무사들이 응당 가져야 할 승리감과 성취감 대신 쓸쓸함을 안겨주고 마지막 씬에서 평화롭게 농사를 짓는 농민들과 그들을 바라보는 무사들의 교차된 장면은 전국시대를 마무리 한 에도시대의 특징인 무사들의 시대에서 농민들과 상인들의 시대가 도래했다는 메시지를 주고 있다. 실제로 미후네 도시로(三船敏郎)가 연기한 호쾌하면서도 순진한 가짜 사무라이는 아주 매력적으로 묘사 되었다. 종전의 권위적이고 지배적인 사무라이상을 탈피한 것이었다, 또한 여러 가지 일화를 남기고 있는데 이 영화가 상영되고 난 후 일본 자위대에서 구로사와 감독을 찾아 왔다고 한다. 영화에 등장하는 전투 작전이 ‘미군 작전 프로그램’과 동일하다는 이유였다. 물론 구로사와는 상식적으로 생각하여 전투장면을 만들었을 뿐이다. 서부영화의 장면들이 맑고 화창하다는 이유만으로 일부러 비오는 날만 골라서 촬영을 하기도 했다.

구로사와의 이러한 강박은 훗날 할리우드에 스카우트 되어 ‘도라 도라 도라’를 촬영하다가 중도 하차하게 된 원인과 일치하게 되는데 그는 한가지의 공식을 정하면 그 틀에 반드시 맞춰야 하는 고집이 있었다. 아무튼 이 영화는 현재 가치로 약 7억 6천만 엔(약 100억, 당시 일본영화 평균 제작비 2천 6백만 엔)이라는 막대한 제작비에 271일에 달하는 긴 촬영기간과 세트, 로케이션의 기록을 남겼으며 기념비적인 마을 방어전 촬영을 위해서 카메라 8대를 동원해 촬영했다고 한다. 최초 막대한 제작비로 인해 수익배분에는 실패했지만 2차 판권비로 보충되었다.

'고지라'(1954년)

괴수영화의 원조로 불리는 고지라

구로사와가 ‘7인의 사무라이’로 성공을 거두었던 1954년에는 또 다른 일본의 히트 상품이 등장한다. 바로 혼다 이시로(本多猪四郎)의 ‘고지라’(GODZILLA, ゴジラ)가 그것이다. 괴수영화 즉 ‘가이주에이가(怪獸映畵)’의 원조로 불리는 고지라는 원자폭탄 투하 이후의 세계를 무대로 핵실험으로 잠에서 깨어나는 구석기 시대 괴물인 고지라를 주인공으로 하고 있다. 무자비하게 도쿄를 파괴하고 생태학적 관점에서도 ‘반핵(反核)’의 메시지가 강한 영화다. 게다가 전 세계 특수촬영영화의 출발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일본 영화계는 이전 전쟁 기간에도 진주만 폭격 같은 장면들을 미니어처로 특수촬영 한 바 있었다. 그러나 고지라는 이를 더욱 발전시킨 영화이기도 하다. 원래 킹콩 시리즈처럼 스탑 모션(stop motion)으로 영화를 촬영하고자 했다.

'킹콩 대 고지라'(1962년)

영화 ‘고지라’에 동원된 특수 촬영 기법들

스탑 모션이란 현재는 100년 이상 머문 영화기술로 영화제작자들이 카메라를 멈추고 인형들을 조금씩 조금씩 움직인 후 다시 카메라를 돌리면서 실제 물체들이 움직이는 영상을 찍어 영상을 만드는 작업을 뜻한다. 킹콩에서는 탈을 쓴 인간이 인형을 대신하게 되는데 시간과 예산을 생각한 혼다 이시로는 쓰부야라 에이지(円谷英二)에게 특수촬영을 담당시킨다. 그는 특수촬영 분야에서 탁월한 족적을 남겼는데 고지라 시리즈 외에도 울트라맨(ウルトラマン)시리즈 등 약 250편을 제작한 바 있다.

그는 독일감독 슈테른베르크의 지도를 받은 바 있었기 때문에 키아로스쿠로 기법(Chiaroscuro, 광선에 의해 나타나는 묘사 대상의 밝고 어두운 관계를 화면 위에 표현하는 기법)을 알았다. 그는 수소 폭탄 실험 때문에 소생한 구석기 시대의 괴수가 한밤 중에 도쿄만(東京灣)을 건너 도쿄 시내를 습격할 때 이러한 명암의 극단적인 대조를 잘 살려냈다. 뿐만 아니라 스탑 모션이 제작기간이 길다는 것을 감안하여 선택한 방법이 특수 촬영으로 고무 슈츠와 미니어처 세트, 애니매트로닉스(Animation)과 일렉트로닉스(Electronics)의 합성어로 정교하게 만들어진 로봇) 등을 더했으며 다만 건물을 고지라가 밟는 장면들만 부득이 바지를 입은 배우가 대신하는 트릭을 썼다.

'고지라의 역습'(1984년)

고지라 이후 아류 영화들 쏟아져

고지라 시리즈는 대성공을 거두었을 뿐만 아니라 이후 신 고지라, 고지라사우루스, 모스라, 킹 기도라, 데스기도라, 메카고지라, 미니라, 고지라주니어, 안기도스, 라돈, 바라곤, 모슬라, 긴기도라, 구이랄라,고로자우루스, 바란, 만다, 헤도라, 가이강, 에비라, 카미키라스, 쿠몽가, 카메바, 가니메, 게조라 등 아류 괴수들을 쏟아냈을 뿐만 아니라 제트 재규어 같은 과학자가 괴수를 방지하기 위해 만든 로봇까지 등장하면서 지금까지 제작되고 있다. 또한 괴수들끼리의 대결 영화도 제작되고 1962년에는 ‘킹콩 대고지라’를 제작하여 일본의 고지라와 미국의 킹콩이 격전을 벌이기도 한다.

그러나 이 시리즈도 70년대부터부터는 도호의 자금 사정이 어려워지면서 제작편수가 줄었으며 무엇보다도 쓰부라야 에이지가 사망하면서 급격하게 퀄리티가 낮아진 끝에 1975년 메카고지라의 역습을 끝으로 오리지널 시리즈는 제작을 멈춘다. 그러나 울트라맨 시리즈와 묶어 이른바 ‘쇼와 시리즈(showa series)’라 불렸던 이 컨텐츠들은 텔레비전 시리즈로도 제작되어 더빙되어 미국 본토에서도 사랑을 받게 된다.

또한 1980년대 일본 경제의 부흥과 함께 울트라 시리즈, 가면라이더仮面ライダー ) 시리즈 등이 부활하면서 고지라 시리즈 역시 부활하게 되면서 1998년 할리우드에서 리메이크 된다. 이 리메이크판 영화들은 최근까지 일본과 할리우드에서 이어지고 있으며 심지어 성인판 만화 등 여러 컨텐츠로 반세기 이상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이훈구 작가=미국 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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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하하 2020-05-26 22:37:11
좋은 글 감사합니다.!!
일본 영화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유익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