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후쿠하라 요시하루(福原義春)
▶경력: 시세이도(資生堂) 명예회장
▶평가: 시세이도 중흥의 경영자
▶태생: 도쿄
▶생몰연도: 1931~
일본의 세계적 화장품 브랜드 시세이도(資生堂:Shiseido)를 글로벌 기업(매출 12조 2700억원, 종업원수 4만 8000명)으로 키운 건 현 명예회장인 후쿠하라 요시하루(福原義春·89)다. 그는 시세이도 창업자 후쿠하라 아리노부의 손자로, 10년간(1987~1997년) 사장(10대 사장)을 지냈다.
회사명(資生堂)은 중국 고전 『역경』에서 따와
시세이도의 회사명은 중국 고전 『역경』에 나오는 ‘지재곤원 만물자생(至哉坤元 萬物資生)’이라는 구절에서 따왔다. “만물 생성의 근원인 자연에서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고 개발하여 인간을 아름다움의 세계로 인도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창업주 후쿠하라 아리노부(福原有信:1848~1924)의 동양사상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치바현 출신인 후쿠하라 아리노부는 지금의 도쿄대 의학부에서 서양약을 공부한 후 해군병원약국장을 지냈다. 23세(1872년) 때 관직을 사임하고 민간 최초의 서양조제약국인 자생당(資生堂)을 도쿄 긴자에 열었다. 1897년 화장수를 출시하고, 1917년에는 화장품부를 독립시켜 오늘날의 시세이도 토대를 마련했다.
후쿠하라 아리노부에 이어 사업을 맡은 이가 그의 3남인 후쿠하라 신조(福原信三:1883~1948) 초대사장이다. 치바대학 의학부를 졸업하고 미국 콜롬비아대학 약학부에서 공부한 신조는 귀국 후 큰형과 함께 시세이도를 경영했다.
중학 시절 화가의 꿈을 키웠지만 아버지의 희망대로 약학을 공부한 후쿠하라 신조는 1915년 회사의 심벌마크인 동백(花椿)을 직접 디자인했다. 그는 ’사진예술‘이라는 잡지를 창간하는 등 사진가로도 활동했으며 ’일본사진회‘를 결성해 회장을 맡기도 했다.
창업주 후쿠하라 아리노부 손자 요시하루 명예회장
이야기는 다시 현 명예회장인 후쿠하라 요시하루로 옮겨간다. 시세이도 중흥의 중심엔 창업주 후쿠하라 아리노부의 손자인 요시하루가 있다. 그는 아리노부의 다섯 번째 아들(福原信義)의 장남이다. 게이오대 경제학부 졸업 후 시세이도에 입사한 요시하루는 미국법인 사장, 상품개발 부장 등을 거쳐 1987년 10대 사장에 취임했다. 10년간 사장직에 있으면서 시세이도를 탄탄한 기반 위에 올려놓았다.
2001년 명예회장으로 물러난 그는 도쿄도 사진미술관 관장, 문자활자 문화추진기구 회장, 기업 메세나 협의회 회장 등을 지낸 ’문화인 경영자’다. 단독 저서 20여 권과 공동 편저 30여 권 등 상당수의 책을 낸 출판인이기도 하다.
잠시 곁길. 조선 근세기(순조) 최고의 거상 임상옥은 “장사는 이문을 남기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남기는 것”이라는 상도철학으로 유명하다. 이익보다 사람의 가치를 우선시 한 것이다. 일본 경영자 중, 임상옥과 비슷한 철학을 가진 이가 후쿠하라 요시하루 명예회장이다.
‘가치는 보이는 사람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는 겉으로 드러난 '가격'을 보지 말고 숨어 있는 '가치'를 보라고 강조했다. 요시하루가 말한 원문은 ‘가격은 보이지만 가치는 보이는 사람밖에 보이지 않는다’(価格は見えますが、価値は見える人にしか見えません).
가격과 가치는 마치 뫼비우스의 띠 같은 것. 그러니 가치와 가격의 관계를 혼동하는 시대가 아닌가. 단언컨대, 사람의 가치, 제품의 가치, 기업의 가치를 제대로 볼 수 있는 이는 많지 않을 것이다.
심지어 눈에 보이지 않는 가치를 꿰뚫어 볼 수 있는 이는 더 극소수이기 마련이다. 가치가 아닌, 가격만 보는 눈은 결코 좋은 눈이 아닐 터. 비즈니스엔 ‘좋은 눈’을 가져야 한다는 게 요시하루의 조언이다.
사람이든, 기업이든 그 가치의 척도는 ‘신용(신뢰) 총량’으로 결정될 수밖에 없다. 다른 사람(또는 기업)의 가치를 잘 읽는 것도 중요하지만, 스스로 신용을 쌓고 신뢰를 주는 일도 그 이상으로 중요하다. <에디터 이재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