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춘 공연계와 푸쉬킨 소설 ‘예브게니 오네긴’
멈춘 공연계와 푸쉬킨 소설 ‘예브게니 오네긴’
  • 에디터 이재우
  • 승인 2021.01.21 15: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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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의 국민시인 푸쉬킨의 소설 『예브게니 오네긴』에는 ‘눈 냄새를 맡은 말이 이리저리 장난을 친다’는 연이 등장한다. 사진출처=픽사베이 이미지 2장 합성.<br>
러시아 국민시인 푸쉬킨의 소설 『예브게니 오네긴』에는 ‘눈 냄새를 맡은 말이 이리저리 장난을 친다’는 연이 등장한다. 사진출처=픽사베이 이미지 2장 합성.

[발행인 칼럼]

신축년 손에 잡은 푸쉬킨 소설 ‘예브게니 오네긴’
#.새 책을 넘길 땐 늘 손의 감각부터 새롭다. 신축년 들어 천천히 읽어 내려가고 있는 책이 한 권 있다. 『예브게니 오네긴』. 러시아 국민 작가 푸쉬킨(Alexander Sergeyevich Pushkin:1799-1837)이 쓴 소설이다. 소설은 소설이되, 장르가 낯설다. 

푸쉬킨은 시 형식으로 쓰여진 이 소설을 스스로 ‘운문소설’이라고 칭했다. 1823년부터 1831년까지 약 8년간에 걸쳐 쓴 이 역작은 러시아 문학의 백미(작가 고골 ‘러시아 영혼의 가장 비범한 발현’, 비평가 벨린스키 ‘푸쉬킨 시대 러시아 삶의 백과사전’)로 평가 받고 있다. (*푸쉬킨은 『예브게니 오네긴』을 쓰던 기간에 우리가 잘 아는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라는 시(詩)를 1825년 발표했다.)

사교계 인물 예브게니 오네긴(Eugene Onegin)과 따찌야나라는 여성의 엇갈린 러브스토리를 다루고 있는 『예브게니 오네긴』은 8장 352연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른바 ‘오네긴 연’으로 불리는 각 연들은 일정한 압운을 가진 14개의 행을 이룬다.(14행×352연) 

『예브게니 오네긴』은 장르를 넘어, 차이콥스키에 의해 오페라로 만들어져 오늘날 대중들에게 사랑받고 있다. 특히 이 작품은 지난해 한-러 수교 30주년을 맞아 발레극, 연극으로 재구성돼 여러 차례 한국무대에 오른 바 있다. 

코로나 사태의 악영향은 공연계도 예외가 아니다. 공연이 멈추고, 배우·스태프들의 생계도 심각한 수준이다. 하지만 조금만 더 기다리고, 참고, 넘어서는 수밖에 없다.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중 하나인 『리어왕』 제3막 제4장에 나오는 대사를 교훈으로 삼아본다. 

“사람들은(당신은) 곰으로부터 도망치지만, 가는 길에 사나운 바다가 기다리고 있다면 돌아서서 곰에 맞서야 한다.” (You would run away from a bear, but if the only way to run was into the stormy ocean, you’d turn around and confront the bear.)

작품 속 ‘말이 눈 장난을 치는’ 연에 눈길
#. 『예브게니 오네긴』 이야기를 이어간다. 올해 유독 눈이 많은 1월이 아닌가. 1820년대 러시아의 서민적 겨울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연(5장 2연)을 접했다. 발췌, 소개하면 이렇다. 

겨울……! 농부는 신바람이 나서
썰매로 눈길을 닦고
눈 냄새를 맡은 말이
이리저리 장난을 친다.
솜털 같은 눈밭에 고랑을 파헤치며
쏜살같이 달려가는 포장 썰매,
마부석에는 털코트에 빨간 띠를 두른
마부가 앉아 있다.
저기서 지주댁 꼬마 하인이 달려온다,
작은 썰매에 쥬치카(개 이름)를 태우고
자기가 말이 되어 썰매를 끈다.
장난꾸러기는 벌써 두 손이 꽁꽁
시리기도 하지만 우습기도 하다.
아이의 엄마가 창문을 열고 으르릉댄다…….
(열린책들, 석영중 옮김)

‘눈 냄새를 맡은 말이 이리저리 장난을 친다’는 구절은 시인 백석의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1938년 발표)를 떠올리게 한다. 백석은 이 시에서 ‘눈은 푹푹 나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고 썼다. 백석의 ‘흰 당나귀’와 푸쉬킨의 ‘말’이 묘하게도 닮은 정서를 자아낸다. 

푸쉬킨상

권총 결투 전 단골 카페서 레모네이드 한잔
#. 러시아 문학 역사상 가장 위대한 작가로 칭송받는 푸쉬킨이지만, 그는 너무 허망하게 생을 마감했다. 권총 결투 때문이다. 구글에서 영문 자료들을 집중적으로 검색해 보았다. 푸쉬킨의 죽음과 당시 상황이 궁금해서다. 

“러시아의 시인 알렉산드르 푸쉬킨은 1837년 치명적 결투에 나서기 전, 여기서 마지막으로 레모네이드 한 잔을 주문했다.”(Russian poet Alexander Pushkin ordered his last glass of lemonade here before leaving for the fatal duel in 1837.)

한 해외 매체에 나오는 문장이다. 푸쉬킨이 결투를 앞두고 레모네이드를 마신 곳은 상트 페테르부르그에 있는 단골 카페(이름은 Literary Cafe)였다. 푸쉬킨은 사망 사흘 전인 1월 26일, 권총 결투를 신청했다. 상대는 아내 나탈리아에게 추파를 던지던 프랑스 기병 장교 단테스(Georges d' Anthès). 

자유분방했던 13세 연하의 아내는 ‘사교계의 유명인사’였다. 그런 아내와 단테스 사이에 불미스런 소문이 나돌자 푸쉬킨은 귀족 가문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어이없게도 권총대결을 선택했다. 장교와의 결투라니, 누가봐도 결과는 뻔해 보였다. 무모하기 짝이 없었다. 다음 날인 1월 27일 오후, 푸쉬킨은 결투에 나가기 전 단골 카페에 들러 레모네이드를 주문해 마셨다고 한다. 결투 장소는 상트 페테르부르그 교외의 숲. 러시아 매체 rbth(rbth닷컴)의 영문 내용(The final days of Russian writers)을 첨부해 당시 상황을 정리해 본다.

푸쉬킨의 권총대결 장면을 재현한 그림. 사진출처=러시아 현지매체 rbth닷컴

1) 두 사람은 서로 빛나는 권총을 겨누며 10보 간격을 두고 서 있었다.(two men stood ten paces apart aiming their gleaming pistols at each other.) 

2) 단테스가 먼저 총을 발사했다.(Baron Georges H. d'Anthès, a French officer on Russian service, shot first.) 

3) 총탄은 푸쉬킨의 위(위장)를 관통했고, 그는 눈 위에 꼬꾸라졌다.(The bullet went through his opponent's stomach, and poet Alexander Pushkin plummeted on to the snow.) 

4) 수행원들은 썰매에 푸쉬킨을 싣고 집으로 왔다.(His attendants took the poet to his house in a sleigh.)  

5) 한 의사는 푸쉬킨이 살아날 가망이 없다고 확신했다.(One of the doctors confirmed that Pushkin would not survive.) 

6) 푸쉬킨은 “끝났어. 나는 죽어가고 있어. 숨을 쉴 수 없어. 숨이 막혀”라고 친구들에게 말했다.(It is finished. I am going. I can hardly breathe. I'm suffocating," the poet told his friends.)

7) 고통스런 48시간 후 푸쉬킨은 마지막 눈을 감았다. (After forty-eight hours of agony, the Russian poet closed his eyes for the last time.)
 
권총 결투에서 치명상...38세로 생 마감
#. 푸쉬킨은  결투 이틀 후인 1837년 1월 29일 오후 2시 45분경, 자신의 아파트에서 사망했다. 일설에는 푸쉬킨이 죽자 단골 카페에서는 더 이상 레모네이드를 팔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푸쉬킨은 국민들의 애도 속에서 잠들지 못했다. 

황제는 민중들의 봉기를 두려워해 장례를 비밀리에 치르도록 명했다. 시인의 시신은 썰매에 실려 지푸라기로 덮인채 수도원으로 이송되어 매장되었다고 한다. 외가(에티오피아) 혈통을 이어받아 까무잡잡한 피부를 지녔던 러시아의 위대한 시인은 그렇게 38세의 짧은 생을 마쳤다. 마흔도 채우지 못한 채.

푸쉬킨의 자존심을 긁은 두 남녀는 어떻게 됐을까. 나탈리아는 푸쉬킨의 아내로만 머물러 있지 않았다. 1845년 한 장군과 재혼했다. 그녀는 1863년 51세의 나이로 사망했는데, 무덤에까지 사람들이 돌을 던지며 욕을 했다고 전해진다. 

그럼, 결투 상대 단테스는?. 당시 러시아에서 결투는 불법이었다. 투옥된 단테스는 법정에 소환됐지만 황제로부터 사면을 받았다. 대신 지위를 박탈당하고 러시아에서 추방됐다. 그는 프랑스로 돌아가 상원의원으로 일하는 등 비교적 장수했다.(1895년 83세로 사망) <발행인, 에디터 이재우>

p.s. 하루빨리...공연계의 ‘볕 들 날’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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