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리랑카=김성진 작가> 스리랑카에는 공식 언어가 3개다. 다수민족이 사용하는 싱할라어와 소수민족의 언어인 타밀어 그리고 영어다. 침략어이자 지배어였던 영어가 민족 간의 소통어가 되었음은 아이러니한 일이기도 하지만 영어는 스리랑카 전반에 걸쳐 출세의 수단으로 자리를 잡은지 오래다.
침입자의 언어였던 영어는 오늘날 전 지구적 소통의 언어로 자리를 잡았다. 여기 스리랑카에서도 영어의 유창함은 선진 과학기술 습득과 인터넷 사용 등을 쉽게 하고 비즈니스와 정치 분야에서도 성공을 담보한다. 영어에 능통한 사람들은 전문직과 관직에 종사하며 상당한 특권과 부를 향유한다. 반면 영어교육의 기회를 충분히 얻지 못한 가난한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피해의식과 상실감을 동반할 수밖에 없다.
스리랑카 영어교육의 ‘명과 암’
스리랑카는 영어교육의 열풍이 대단하다. 영어로 교육하는 국제학교가 성행하고 있고 영국의 영향을 받은 비싼 등록금을 내는 기숙 사립학교도 많다. 학비가 무료인 국공립학교는 당연히 가난한 사람들의 차지이다. 이러한 교육의 열풍은 지방에도 불어와 자녀를 좋은 학교에 보내기 위한 부모들은 좋은 학교가 위치한 곳으로 위장전입을 감행한다.
위장전입은 문자 그대로 불법이므로 지방정부 관리에게 뇌물을 상납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좋은 학군에 자녀들을 보내기 위해 통학 시간이 두 시간이나 되어도 감수한다. ‘서쿨서비스’라고 하는 학생등하교 차량을 운행하는 사업이 인기 있는 업종인 것이 그 이유다. 그만큼 수요가 많다는 것이다.
자녀에 대한 교육의 열정은 자녀의 사회적 성공을 배려하는 마음이 과시욕과 맞물려 작동하는데 살림살이 규모에 맞지 않게 분수에 넘치도록 공부를 시키고자 하는 부모들은 등록금 납부 시기가 다가오면 사방팔방 학비 빌리러 다니는 꼴을 본다. 몸에 지닌 몇 푼 안 되는 귀금속을 전당하여 학비에 보태는 부모도 있다.
한글, 미래의 언어가 아닌 ‘노동자 언어’
그러면 스리랑카에서 우리 한글의 위상은 어떨까? 한글은 한마디로 노동자 언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양국 정부 간 협약에 따라 일정 정도의 수준의 한국어를 배워서 한국에 노동자로 들이는 제도를 확립하였는데 EPS-TOPIK이라는 한글 능력 시험을 통과해야만 입국 자격을 주는 것이다.
코로나 사태로 인하여 한국 정부는 외국인 근로자 유입을 무기한 중단하였었다. 이 기간에 수강생들은 학원을 떠났고 한글학원들은 개점휴업을 하였다. 한글의 인기가 한순간에 사라진 것이다. 거의 2년 동안 수입이 없어진 학원장과 선생들은 생계를 위하여 닥치는 대로 아무 일이나 할 수밖에 없었다.
여기서 눈여겨 보아야 할 것은 이들은 단지 직업을 얻기 위해 한글을 습득하려고 하는 것이지 미래를 위한 성공의 발판으로 삼기 위한 언어는 아니며 영어처럼 꼭 배워야 하는 인기 있는 배움직한 언어가 아니라는 것이다. 과연 한글과 한국문화는 서구의 근대화된 문화나 영어처럼 비중 있게 절실하게 그들의 마음속에 담겨 있을까?
스리랑카 정부에서 볼 때 한글 교육의 열풍은 나쁠 필요가 없다. 한국은 자국의 노동자들이 달러를 벌어들이는 또 다른 한 곳의 달러 수입원일 뿐이다. 한글을 배운 노동자들은 결코 영어를 누리는 기득권에 범접하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안다. 10년 가까운 세월 동안 한국에서 일한 근로자들은 기껏해야 내 집 장만하고 은행의 잔액이 조금 더 여유 있을 뿐이다. 과거 중동에, 독일에 일하러 다녀온 우리네 삼촌, 이모를 보면 알 수 있다. 집 짓고 개인택시 하나 가지는 것이 지상의 목표였지 않았던가.
한국 이민정책에 대전환이 필요한 시기
스리랑카 사람들이 진심으로 인생 언어로 한국어를 채택하기 위해서는 우리나라 이민정책의 획기적인 변화가 필요하다고 보는데 반가운 소식이 하나 있다. 한국의 이민학회에서 새로운 주장이 나오고 있다고 한다. ‘저출산·고령사회 대응-인구정책의 새로운 대안 모색’ 정책 토론회에서 “유학생, 전문기술자 등의 인재를 유치해 정착을 지원하고, 워킹 홀리데이 같은 외국인 청년의 국내 취업과 생활 기회 제공을 확대해야 한다”며 “재외동포의 방문·유학·취업·정착을 지원하고 고용허가제로 입국한 우수한 외국인 근로자의 가족 재결합을 보장하자”고 제안했다는 등의 내용이다.
위와 같은 소식을 필자처럼 반가운 일이라고 하는 이도 있고 실무를 집행하는 정부 관계자들은 정책의 변화에 따라올 부작용 때문에 우려하는 목소리를 내기도 한다. 그러나 급변하는 세계의 정세와 인구 절벽이라는 현실을 맞게 되는 우리는 심각하게 진지하게 이민정책을 고려해 볼 때가 되지 않았나 생각한다.
주스리랑카 한국대사관의 노력으로 2023년부터는 스리랑카 대학입시 시험에 한글이 채택되었다는 반가운 소식이 있지만, 필자의 고등학교 시절 제2외국어 과목은 너무나 생소한 독일어였다. 지금은 고작 ‘Ich liebe dich’(이히 리베 디히, 한국말 뜻: 사랑해)만 기억할 뿐이다. 학교 단위로 결정되기 때문에 학생 개인의 취향이 반영될 수 없었기에 내 잘못은 아니었다. 바라건대, 스리랑카의 많은 고등학생들이 우리 한글을 공부하였으면 좋겠고 ‘사랑해요 한국’이라는 말이라도 기억에 남았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