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진의 SriLanka Talk/ ‘초일상의 정치’와 원숭이 상전
김성진의 SriLanka Talk/ ‘초일상의 정치’와 원숭이 상전
  • 김성진 작가
  • 승인 2022.06.05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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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하고 평화로운 일상을 즐기던 스리랑카 사람들. 이젠 '생존'을 위해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시민들이 시위에 나설 수밖에 없는 현사태
<스리랑카=김성진 작가> 1948년 영국식민지에서 해방되어 독립한 이래 경제적으로 가장 어려운 상황을 맞고 있는 스리랑카는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순식간에 치솟은 엄청난 물가와 연료 고갈, 먹거리 부족이라는 사상 초유의 사태를 맞이하였다. 시간이 지나도 좀처럼 나아질 조짐이 보이지 않아 나라 전체는 큰 혼란에 빠진 모습이다.

지금 닥친 경제위기의 발단이 현 대통령 집안과 측근들이 저지른 부정부패와 정부의 무능력한 경제위기 대응능력에 있음을 알게 된 사람들은 분함을 참지 못하고 거리로 나서고 말았다. 화가 난 사람들은 빼돌린 막대한 돈의 주인이자 무능한 정부의 대표인 현 대통령을 쫓아내려고 연일 구호를 외치며 시위를 하고 있으나 쉽사리 자리에서 내려올 낌새가 보이지 않는다.

시위 운동을 하는 주된 장소는 수도 콜롬보에 있는 대통령 집무실 바로 앞이다. 한국의 광화문처럼 넓은 광장이 있어 사람이 들어오고 나가기가 편리한 곳이다. 가끔 가까운 시내로 행진하기도 하고 대통령 가족의 거처나 부패한 정부 관료의 집 앞에 모여들어 구호를 외친다. 필자도 길을 가다 행진하는 사람들과 만나는데 우리는 서로 손을 흔들며 환하게 웃는다.

어떤 옷을 입고 있든, 아이들의 미소는 이 어려운 나라의 희망이다. 

스리랑카는 예로부터 가까이 있는 인도의 영향을 받아 반정부 시위나 항거 운동도 인도와 비슷하다. 간디(Gandhi)에 의해 시작된 사티야그라하(Satyagraha)는 영국의 식민정책에 맞서 대항한 소금법 반대 행진(Salt March)에서 볼 수 있는 시민 불복종 운동의 원조이다. 폭력을 사용하지 않아 소극적으로 보이지만 이 운동은 권력자에게 겁을 주기에 충분했다. 

‘GOTA GO HOME’ (‘대통령을 집으로’라는 뜻)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계속된 집회는 사그라지지 않았다. 서로 다른 종교 대표가 함께 모였고, 다른 민족들이 서로 손을 잡았다. 변호사회, 대학교수 협회 등 지식인들이 시위를 지지했고 각종 노동조합, 교사회, 연예인 협회까지 집회에 동참했다. 시위와 집회는 하루도 쉬지 않고 벌써 50일을 넘게 이어가고 있다. 시위의 기본적인 모양은 인도에서 온 사티야그라하(Satyagraha), ‘비폭력 시민 불복종 운동’이다. 

식료품 가격이 50% 넘게 오르는 등 물가상승률이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다. 

칼리버스의 ‘초일상의 정치(extraordinary politics)’
이 지점에서 미국의 저명한 정치학자 칼리버스(Andreas Kalyvas)의 말을 빌려 오고 싶다. ‘초일상의 정치(extraordinary politics)’라는 용어이다. 칼리버스는 “민주적인 ‘초일상의 정치’는 의식 있는 대중이 정치에 자발적으로 참여하고 직접 개입하는 것”이라며 “이 초일상의 순간에 잠자던 시민주권이 깨어나 자신의 권리와 자기의 힘을 깨달아 알고, 입법과정과 제도화된 정치를 감독하는 기본적인 법률, 가치, 제도를 합리적으로 정비(rearrange)하거나 바꾼다(change)”라고 했다. 

경희대학교 비교문화 연구소 김만권 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시민 불복종 운동은 일상적 정치의 순간에 놓인 입헌 민주주의 사회에서 자신들이 정한 헌법적 질서를 권력자들이 오용하거나 남용하는 데서 지켜내기 위해 시민들이 공공선의 정신에 근거해 소수자들이 시민들의 일반적 정의감에 호소해 펼쳐지고 확대되는 초법적 운동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일상의 정치를 복원하기 위한 ‘초일상의 정치’가 바로 시민불복종이라고 할 수 있다는 말이다.

현재 스리랑카 시위와 집회 형태를 보면 ‘초일상의 순간’이라고 말해도 되지 않을까 싶다. 이 순간에 부패한 권력을 감시하는 건강한 시민단체가 많이 나타났으면 좋겠다. 대통령직을 차지한 집안이 권력을 독차지하여 나라의 살림살이를 요절나게 하는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것이 필자의 간절한 바람이기도 하다. 

‘원숭이 상전’ 우화를 다시 기억해야 하는 이유. 

중국 ‘원숭이 상전’ 우화의 교훈
‘원숭이 상전’이라는 중국 우화가 있다. 어떤 노인이 원숭이를 키우며 생계를 유지했다. 사람들은 그를 ‘주공’(원숭이 상전)이라고 불렀다. 노인은 원숭이들에게 덤불이나 나무에 달린 과일을 따오라고 명령했다. 원숭이들이 따온 과일의 십 분의 일을 노인에게 바치는 것이 규율이었다. 이렇게 하지 않는 원숭이들은 매를 무자비하게 맞곤 했다. 

원숭이들은 고통을 당하고 있었지만, 아무도 불평하지 못했다. 어느 날 한 작은 원숭이가 다른 원숭이들에게 물었다. ‘이 노인이 모든 과일나무와 덤불을 심었니?’ ‘아니. 그냥 자란 거야.’라고 대답했다. 작은 원숭이는 또 ‘노인 허락 없이 우리가 과일을 딸 수는 없는 거니?’ ‘아니, 딸 수 있지’ 작은 원숭이가 계속 말했다. ‘그러면 왜 우리가 그 노인에게 의존해야 하니? 왜 우리가 그를 섬겨야 하니?’

"잔꾀를 쓰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멍청하다는 것을 깨닫지 못한다."

원숭이들이 갑자기 깨닫고 각성했다. 그날 밤 원숭이들은 그들이 갇혀있던 울타리를 허물고 부숴버렸다. 그리고 노인이 저장해놓은 과일 전부를 가지고 숲속으로 가버렸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그 노인은 굶어 죽고 말았다. 

우화의 작가는 ‘세상에서 어떤 사람들은 정의로운 원칙이 아니라 잔꾀를 가지고 백성을 다스린다. 이 잔꾀를 쓰는 사람들이 원숭이 상전과 똑같지 않은가? 잔꾀를 쓰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멍청하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 그들의 백성이 이 사실을 깨닫게 되는 순간 통치자의 잔꾀는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우리 주변에는 ’원숭이 상전’ 같은 자가 가끔 출몰하는데, 그들은 대통령, 정치인, 단체장, 언론사, 기관장, 아파트 동대표, 부녀회장 등과 같은 모습이다.  

“굶어 죽을 수도 있으니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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