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 열전/ 돈을 돈답게 쓴 '경영의 신'③
CEO 열전/ 돈을 돈답게 쓴 '경영의 신'③
  • 이재우 기자
  • 승인 2018.11.06 14: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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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편에 계속)

가고시마 대학에 수백억 원을 기부하고(①편), 경영 세습을 하지 않은(②편) 이나모리 가즈오 회장의 첫 출발은 미미했다. 그가 교세라를 창업한 건 1959년이다. 그는 ‘바위를 들어올려라’라는 책에서 당시를 이렇게 썼다.

<교세라는 자본금 300만 엔, 직원 28명으로 ‘미야키 전기’라는 회사의 지원을 받아 설립되었다. 처음엔 교토시에 있는 미야키 전기의 창고 건물을 빌려 1층은 공장, 2층은 사무실로 사용했다.> (‘바위를 들어올려라’ 28쪽 인용, 유윤한 옮김, 서울문화사 2015)

그런 교세라는 현재 연 매출 1조5000억 엔(14조8000억 원), 전 세계 계열사 265개, 직원 7만명의 글로벌 기업으로 변모했다. 거대 통신기업 KDDI를 만든 것도 이나모리 회장이다.

이나모리 회장은 육종학자이자 ‘씨 없는 수박’으로 유명한 우장춘(1898~1959) 박사의 사위로 잘 알려져 있다. 그의 아내 스나가 아사코(須永朝子)가 우장춘의 넷째 딸이다. 이나모리 회장이 아내와 인연을 맺은 곳은 교세라를 창립하기 전 근무했던 회사다. 직접적인 인연을 이어준 건 도시락이다. 이나모리 회장은 ‘좌절하지 않는 한 꿈은 이루어진다’라는 책에서 당시를 이렇게 쓰고 있다.

<1958년 12월, 나는 3년 남짓 몸 담았던 쇼후공업을 퇴사했다. 그리고 곧바로 특수자기과에서 함께 근무했던 스나가 아사코와 결혼했다. 그녀와 결혼에 이르게 된 배경에는 다름 아닌 도시락이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회사 연구실에서 숙식을 해결했던 시절, 점심시간만 되면 책상 위에 도시락이 놓여 있었다. 여러 가지 반찬이 가득 담긴 정성스러운 도시락 선물에 나는 감동하지 않을 수 없었다. 평소 초라한 점심만 먹다가 맛있는 도시락을 보고는 정말 밥을 한 톨 남기지 않고 깨끗이 먹어치웠는데,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책상 위에 도시락이 놓여 있었다. 누군지 알아볼 생각도 않고 염치없이 매일 받아 먹는 사이에 어느 날 그녀가 싸온 도시락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좌절하지 않는 한 꿈은 이루어진다’ 86쪽 인용, 홍성민 옮김, 더난 출판사 2011)

스나가 아사코의 아버지인 우장춘 박사의 일본식 이름은 스나가 나가하루(須永長春)다. 여기엔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 하나 있다. 우장춘은 일본에서 힘겹게 ‘우’씨 성을 지키며 살았다고 한다. 하지만 1923년 고하루라는 일본 여성과 결혼하면서 문제가 생겼다. 여성의 부모가 결혼을 허락하지 않았고, 급기야 아내 될 여성은 부모와 의절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우장춘의 마코토’라는 책은 우장춘이 ‘스나가’라는 성을 쓰게 된 이유에 대해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우장춘은 아버지(을미사변에 가담한 우범선)의 후원자였고, 아버지 사후에도 자신들을 돌봐주었던 스나가 하지메에게 결혼 소식을 알렸다. 우장춘의 결혼 소식을 전해 듣고 크게 기뻐한 스나가는 이들에게 큰 호의를 베풀었다. 앞으로 태어날 어린애들의 장래를 위해 두 사람(우장춘과 고하루)을 스나가 가문에 입적해 주겠다는 것이었다.(중략) 스나가 하지메에게는 고등학교 교사였던 사촌이 있었는데, 먼저 고하루가 이 집의 양녀로 입적됐고 우장춘은 데릴사위가 됐다. 이렇게 해 우장춘의 정식 성명은 ‘스나가 나가하루’가 됐고, 그의 자식들은 스나가의 성을 쓰게 됐다. 하지만 정작 우장춘 자신은 그후로도 ‘우’라는 한국 성을 지켰다.> (‘우장춘의 마코토’ 149~150쪽 인용, 이영래 지음, HNCOM 출판 2013)

그런 우장춘은 사위가 될 ‘청년 이나모리’를 처음 보고 집안 식구들에게 “그는 나름대로의 철학을 지녔어, 장래 뭔가를 해낼 사내야”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나모리 회장의 성공 뒤엔 아내의 ‘보이지 않는 내조’가 있었다. 이나모리 회장은 자서전(ガキの自叙伝)에서 다음과 같이 적었다.

<아내를 알고 나서 아내는 지금까지 푸념 한 번 한 적이 없다. 교세라를 창업할 무렵, 먹는 것, 입는 것도 만족스럽게 사주지 못했지만, 불만 한 마디 없었다. 그후로 귀가가 항상 늦었지만, 반드시 자지 않고 기다려 주었다.>

(원문: 妻は知り合ってから今までグチひとつこぼしたことがない。京セラ創業のころ、食べるもの、着るものも満足に買えなかったが、不満一つ言わなかった。それ以来、帰宅するのはいつも遅いのだが、必ず寝ずに待っていてくれた。)

일본에선 이런 이나모리 가즈오 회장을 마쓰시다 전기 창업주인 마쓰시다 고노스케(‘쇼와의 경영의 신’)와 구분해, ‘헤이세이의 경영의 신’(平成の経営の神様)이라고 부른다.

<비영리매체 팩트올 전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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