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림을 보다가 끼득끼득 웃고 말았다. 여자아이(마름의 딸 점순이)와 남자아이(소작농의 아들)가 서로 티격태격하는 토속적인 그림.
“느 집엔 이거 없지?”(마름의 딸 점순이)
“난 감자 안 먹는다.”(소작농의 아들)
장난기 가득한 표정의 점순이가 감자 3개를 내민다. 그런데 소작농 아들의 반응은 시큰둥하다. 돌아보지도 않는다. 둘의 심리전. 그림 한 컷으로 소설을 읽는 듯한 느낌. 그 재미가 쏠쏠하다.

그림은 소설가 김유정(金裕貞:1908~1937)의 대표작 ‘동백꽃’의 한 장면. 그림을 그린 이는 춘천이 고향인 유환석 화백(한국시사만화가협회장). 유 화백은 손문자 인형작가와 콜라보전을 펴고 있다. ‘김유정의 글 10장면 전(展)’.
“나의 고향은 저 강원도 산골이다. 춘천읍에서 한 이십리 가량 산을 끼고 꼬불꼬불 돌아 들어가면 내닷는(내닫는) 조그만 마을이다. 앞뒤 좌우에 굵찍굵찍한(굵직굵직한) 산들이 빽 둘러섯고(빽 둘러섰고) 그 속에 묻친(묻힌) 안윽한(아늑한) 마을이다. 그 산에 묻힌 모양이 마치 옴푹(옴팍)한 떡시루 같다하여 실레라 부른다.”
‘동백꽃’, ‘봄봄’으로 잘 알려진 소설가 김유정은 수필 ‘오월의 산골작이’(1936.5)에서 고향 춘천 실레마을을 이렇게 묘사했다. 김유정은 서울에서 공부(휘문고보 졸업, 연희전문학교, 보성전문학교 휴학)하다 고향 실레마을로 내려와 ‘금병의숙’이라는 간이학교를 세워 학생들을 가르쳤다. 1930~1932년 무렵이다. 그 인연으로 현재 실레마을에는 김유정문학촌이 조성되어 있다.

문학촌 인근 마을 어귀엔 실레책방이라는 작은 독립책방이 하나 있다. 유환석 화백과 손문자 인형작가의 콜라보 현장이다. 두 사람은 ‘오월의 산골작이(산골짜기)’ 등 소설 6편과 수필 4편에서 인상적인 장면 10장면을 선택해 그림과 인형으로 제작했다.
아담한 책방 공간. 소설속 여러 장면들이 금방이라도 현실로 툭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인형과 그림은 서로를 보완, 도와주며 토속미를 한층 리얼하게 전달하고 있었다.

손문자 작가는 인형의 표정처리에 정성을 기울였다고 했다. 실제로 살펴보니, 얼굴에 나타난 다양한 감정이 눈길을 확 끌었다. 유환석 화백은 색감처리에 세심한 공을 들였다고 했다. 그는 “일러스트와 만화 스타일로 펜, 오일파스텔, 아크릴컬러 등으로 다양하게 표현해 보았다”고 했다.

유 화백은 “토속미 물씬 풍기는 소설 ‘동백꽃’의 배경은 춘천의 금병산으로 알려져 있다”며 “금병산은 춘천 시내에 우뚝 솟아 있는 산으로, 김유정이 살았던 그 시절 금병산엔 동백꽃이 많이 피었던 것으로 전해진다”고 했다.
작품전에 만난 한 손님은 “멋진 그림과 귀여운 인형을 보니 김유정 소설가의 작품을 다시 읽어보고 싶어진다”며 “춘천을 다시금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했다. 작품전은 26일까지. <에디터 이재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