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3건) 리스트형 웹진형 타일형 일본영화 경제학(56) / 고지라와 아이돌 무비 라이프& 일본영화 경제학(56) / 고지라와 아이돌 무비 <미국 LA=이훈구 작가 (재팬올 미국대표)> 도호(東宝)는 1970년대를 어떻게 견뎌냈을까? 필자의 의문이었다. 왜냐고? 도호는 폭력적인 영화나 정치적 메시지가 강한 영화 그리고 로망 포르노 장르에는 손도 대지 않았다. ‘가족영화’를 표방한 영화사이면서 애니메이션(아니메)과 구로사와 아키라(黑澤明)같은 거장의 작품들을 만들어 왔기 때문이다. 이 전통은 지금도 이어져서 착한 영화들과 ‘고지라’(GODZILLA, ゴジラ), ‘도라에몽’(ドラえもん), ‘짱구는 못말려’(クレヨンしんちゃん), ‘요괴워치’(妖怪ウォッチ)와 ‘신카이 마코토’ 이훈구의, 일본영화 경제학㉛/ 전후 황금기9(도호) 라이프& 이훈구의, 일본영화 경제학㉛/ 전후 황금기9(도호) 황금기 시대를 맞은 영화사 도호(東宝)도호(東宝)하면 지금도 떠 오르는 단어들이 있다. ‘고지라’(GODZILLA, ゴジラ), 도라에몽(ドラえもん), 극장판 짱구는 못말려(クレヨンしんちゃん) 그리고 구로사와 아키라(黑澤明) 등이 생각날 것이다. 도호는 사실 도호쟁의 이후 신도호(新東宝)와 분리(정확히 말하면 도호의 자회사로 시작하여 독자적 경영으로 바뀜)되는 과정에서 재능 있는 기획자들이 옮겨가기도 했지만 오히려 이러한 유출이 자기 색깔을 만들어내는데 일조했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또한 신도호의 나중 운명이 그러하듯 서로 선의적 관 이훈구의, 일본영화 경제학⑬/ 도호(東宝) 라이프& 이훈구의, 일본영화 경제학⑬/ 도호(東宝) 1930년대는 일본영화의 과도기이다.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비약적인 발전을 이룬 시기이기도 하지만 일본은 민족주의와 군국주의의 경계에서 점차 국가에 순응하는 형식을 취하기 시작한다. 게다가 1930년대는 일제 식민지 영화에 대한 지배력이 그 어느 때보다도 높아진 시기이기도 하다.그 시기 영화는 대중예술의 총아로서 상품처럼 국경을 넘어 소비되고 만들어졌다. 역설적이게도 일본이 식민지 정책을 펼쳐나가면서 조선, 대만, 만주를 지배함에 있어 일체(一體)를 지향했던 까닭에 일본 본토의 영화사들과 식민지 지배하의 영화사들간 관계는 나쁘지 않았 처음처음1끝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