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11건) 리스트형 웹진형 타일형 이훈구의, 일본영화 경제학(71) / 다큐의 급속한 발전 라이프& 이훈구의, 일본영화 경제학(71) / 다큐의 급속한 발전 <미국 LA=이훈구 작가(재팬올 미국대표)> 일본의 다큐멘터리에 대한 자료는 한국의 경우 많지 않다. 비단 텔레비전 방송사의 다큐멘터리만 이야기 하는 것은 아니고 극장에서 상영된 것까지 포함해서다. 한국의 경우 1995년 변영주 감독의 ‘낮은 목소리 - 아시아에서 여성으로 산다는 것 2’가 장편 다큐멘터리로서는 최초로 극장에서 개봉한 것으로 볼 때 영화와 달리 극장 상영용은 많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일본의 경우 1957년부터 NHK에서 방송된 TV 다큐멘터리 시리즈 ‘일본의 본모습’(日本の素顔)이 전후 사회에서 영화와는 다른 새로 이훈구의, 일본 영화 경제학(70)/ 인디영화와 ATG 글로벌 이훈구의, 일본 영화 경제학(70)/ 인디영화와 ATG <미국 LA=이훈구 작가(재팬올 미국대표)> 1970년대 중반 이후 이런저런 이유로 배우들의 전속제가 소멸하고 말았는데 각 영화사들은 그때그때 캐스팅을 하여 제작할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각 영화사의 고유한 작풍이나 흐름 그리고 특징을 많이 잃어버린 결과가 나타난다. 그중 ATG(Art Theater Guild)의 예술영화와 인디영화 그리고 다음 회에 다룰 다큐멘터리 등의 약진이 두드러졌다. 이 시기, 각 영화사의 제작 편수가 줄어들고 전속제 폐지로 인한 문제가 점점 심화 되었다. 각 영화사에 채용되어 이른바 ‘도제’(徒弟)시스템으 일본영화 경제학(62)/ 욕정과 광기’의 미학 다나카 노보루 라이프& 일본영화 경제학(62)/ 욕정과 광기’의 미학 다나카 노보루 ‘다나카 노보루’(田中登)감독은 제78회 베니스 국제 영화제의 클래식 부문(베니스·클래식스)에 있어서 1974년의 작품 ‘(비) 색정 암컷 시장’(㊙色情めす市場)의 4K 디지털 복원 판이 선출되어 상영되었다. 그는 닛카쓰(日活) 로망포르노(ロマンポルノ) 사상 최초로 세계 3대 영화제에 초청 받았으며 평단의 지지를 가장 많이 얻어낸 감독이다. 지난 2009년 전주국제영화제에서도 ‘다나카 노보루의 밤’이 열려 화제가 되었고 특히 ‘극으로 치닫는 인간의 광기와 욕망, 성에 대한 집착을 적나라하게 보여 준다’는 소개를 남겼다. 물론 로망 일본영화 경제학(57)/ 새롭게 태어난 닛카쓰 라이프& 일본영화 경제학(57)/ 새롭게 태어난 닛카쓰 <미국 LA=이훈구 작가(재팬올 미국대표)> 사실 일본영화 역사를 이야기할 때 ‘1970년대’는 ‘닛카쓰’(日活)의 독무대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1970년대 초기부터 1980년대 후반까지 ‘저예산 고효율’을 목표로 제작된 이 프로젝트는 경영난을 벗어나기 위한 하나의 돌파구 역할을 했지만 하나의 의미를 부여하자면 대형 스튜디오가 장르 영화(로망 포르노)의 틀 안에서 감독들이 고유의 개성을 드러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는 점이다. 당시 중소형 영화사들이 2-3일 만에 만들던 그런 에로영화가 아닌, 제대로 된 영화를 만들었던 일본 영화 경제학㊻/ 닛카쓰의 액션과 성의 혁명 라이프& 일본 영화 경제학㊻/ 닛카쓰의 액션과 성의 혁명 <미국 LA=이훈구 작가(재팬올 미국대표)> 1950년대 이른바 ‘태양족’(타이요조쿠, 太陽族) 영화로 일본영화 황금기에 새로운 수익 모델을 만들었던 닛카쓰(日活)는 1960년대 역시 폭력과 무절제, 섹스가 난무하는 영화들로 새로운 바람을 일으킨다. 1971년 한 차례 제작이 중지되는 어려움을 겪었음에도 이른바 ‘로망 포르노’(ロマンポルノ) 이후 12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다른 영화사들과 달리 호황(?)을 누릴 수 있었던 원동력은 바로 1960년대 닛카쓰를 대표하는 ‘닛카쓰 액션’과 스크린 상의 ‘성(性)의 혁명’ 때문이었다. 19 이훈구의 일본영화 경제학㊶/ 황금기 감독열전(5) 라이프& 이훈구의 일본영화 경제학㊶/ 황금기 감독열전(5) ‘전·후 일본을 위로한’ 기노시타 케이스케(木下惠介)<미국 LA=이훈구 재팬올 미국대표> 기노시타 케이스케 감독을 황금기 감독 열전에 포함하게 된 것은 지난 2013년 개봉한 영화 ‘시작의 길’(한국에서는 ‘기노시타 케이스케 이야기’로 개봉, はじまりのみち, Keisuke Kinoshita Story, 2013)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기노시타 케이스케 감독의 제2차 세계대전 경험을 토대로 만든 영화로 검열문제로 인해 영화연출을 잠시 쉬고 있을 당시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부산국제영화제에서도 소개된 바 있는데 ‘전쟁의 한 가운데서 병 이훈구의, 일본영화 경제학㊴ / 황금기 감독열전(3) 라이프& 이훈구의, 일본영화 경제학㊴ / 황금기 감독열전(3) 【예술을 위한 예술, 오즈 야스지로의 ‘藝術’】<미국 LA 이훈구 작가=재팬올 미국대표> 오즈 야스지로(小津安二郞)의 영화를 감히 ‘예술’(藝術)이라고 표현하는 이유가 있다. 물론 앞서 구로사와 아키라를 언급하면서 지다이게키(시대극, 時代劇)에 의한 세계 3대 영화제(칸, 베니스, 베를린)의 잇따른 선전으로 인해 정작 오즈 야스지로 등 겐다이게키(現代劇) 감독들이 상대적으로 해외에서 주목을 받지 못했음을 언급하였다. 단지 영국과 미국의 일부 비평가들 중 도널드 리치(Donald Rich), ‘에세이 영화’에 주목했던 노엘 버치(No 이훈구의, 일본영화 경제학㊱/ 태양족 스타들 라이프& 이훈구의, 일본영화 경제학㊱/ 태양족 스타들 <미국 LA=이훈구 작가(재팬올 미국대표)> 기왕 다루는 김에 ‘타이요조쿠’(太陽族, 이하 태양족)에 관하여 한번 더 다뤄 보려고 한다. 닛카쓰(日活)의 화려한 반격의 주인공이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태양족 영화는 이후 닛카쓰 외 영화사들이 텔레비전의 등장으로 위축된 영화계의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 잡게 되었기 때문이다. 쇼치쿠 누벨바그의 기수, 일본 뉴웨이브를 잉태한 건 순전히 태양족 영화 때문이었다. 프리 누벨바그는 태양족이라 불리는 문학 경향으로부터 출발했기 때문이다. 미군정을 경험했던 전후 일본은 할리우드 반항물들에 의해 큰 이훈구의, 일본영화 경제학㉝/ 전후 황금기11(닛카쓰) 라이프& 이훈구의, 일본영화 경제학㉝/ 전후 황금기11(닛카쓰) <미국 LA=이훈구 작가(재팬올 미국대표)>닛카쓰 주식회사(日活株式会社; Nikkatsu Corporation)는 일본의 영화 제작·배급 회사로, 초창기 일본영화사에서 쇼치쿠(松竹)와 양대 산맥을 이뤘던 유서 깊은 제작사였다. 그러나 전후 황금기에 있어서 가장 창조적인 발상으로 재기를 하게 된 경우에 속한다. 앞서 기술한 바와 같이 당시 일본 영화계는 기존 5개 메이저 영화사(도호, 도에이, 쇼치쿠, 다이에, 신도호)들이 맺은 협정(필자의 연재물 전후황금기 4편 참조)으로 인해 배우 수급에 문제가 많았다.1954년 제작을 재개 할 칸 그랑프리 일본 여배우와 한국의 봉준호 글로벌 칸 그랑프리 일본 여배우와 한국의 봉준호 1954년 칸 그랑프리 ‘지옥문’의 여배우 사망#. 2주 전인 5월 12일, 일본에서 한 원로 여배우가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이름은 쿄 마치코(京マチ子), 95세였다. 그녀는 1954년 5월, 프랑스에서 열린 제 7회 칸국제영화제의 ‘히로인’이었다. 당시 58세의 기누가사 데이노스케(衣笠貞之助) 감독이 ‘지옥문’(地獄門)이라는 작품으로 그랑프리(지금의 황금종려상)를 거머쥐었다. 이 영화에서 여주인공으로 출연했던 이가 바로 쿄 마치코다.1950년대 초, 일본영화는 국제적인 영화제에서 성과를 올리던 시기였다. 기누가사 데이노스케 이훈구의, 일본영화 경제학⑫/ 쇼치쿠와 닛카쓰 라이프& 이훈구의, 일본영화 경제학⑫/ 쇼치쿠와 닛카쓰 초창기 일본영화계는 쇼치쿠(松竹)와 닛카쓰(日活) 양대산맥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개혁을 하면서 발전시켜 나갔음은 부인할 수 없다. 물론 우후죽순격으로 영화사들이 난립하고 그중에는 가내수공업적인 영화사들과 배우 혹은 감독 1인에 의해 만들어진 일종의 프로덕션의 성격이 많았다.당시 영화계는 야쿠자(ヤクザ, やくざ)의 보호를 받거나 착취를 당해야 흥행하는 경우가 많았다. 일본의 영화계가 야쿠자와 결탁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영화가 차지하는 지위가 한동안 낮았던 데다가 야쿠자의 역사와도 연관이 깊다.야쿠자는 헤이안 시대부터 존재해 왔고, 처음처음1끝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