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5건) 리스트형 웹진형 타일형 생생 미국 리포트/ 아시안 월드 필름 페스티벌에서 글로벌 생생 미국 리포트/ 아시안 월드 필름 페스티벌에서 <미국 LA=이훈구 작가(재팬올 미국대표)> 한국영화계가 급격한 쇠퇴기에 접어든 가운데 아시안 월드 필름 페스티벌(Asian World Film Festival, 이하 AWFF)이 올해로 8회째를 맞아 이곳 로스앤젤레스 할리우드 일원에서 지난 9일부터 18일까지 열렸다. AWFF는 아시아 영화에 대한 관심을 높이기 위해 시작된 영화제다. 특별히 AWFF는 우수한 아시아 영화들을 아카데미와 골든글로브에 소개하고 수상의 기회를 마련하기 위해 2015년에 처음 시작됐으며 아시안 50여개국에서 출품된 작품들 중 우수작들을 선정해 상영해 왔 이훈구의 일본영화 경제학㉓/ 전후 황금기1 라이프& 이훈구의 일본영화 경제학㉓/ 전후 황금기1 전쟁이 끝났다. 패전의 책임은 물론 일본을 비롯한 추축 동맹국들에게 돌아갔고 그 형벌로 인류 최초로 원자폭탄을 두 번이나 맞는 참사를 낳았다. 일본은 무모한 전쟁을 벌였고 300만명 넘는 군인과 민간인이 죽었으며 전 국토는 피폭으로 신음했다.그러나 전쟁 전 필름이 없다는 이유로 흩어져 작업을 이어갔거나 혹은 종군, 은둔을 해야 했던 영화인들에게는 패전의 시점에서 각기 다른 행보를 보이며 뒤이어 올 예술적, 기술적, 사회적, 정치적 혼돈을 준비해야 했다. 비록 한 치 앞도 모르는 상황이 도래했지만 전쟁이 한창이던 1943년에 전후 가 이훈구의 일본영화 경제학㉒/ 전시체제6...상하이 외 라이프& 이훈구의 일본영화 경제학㉒/ 전시체제6...상하이 외 &#39;일본영화 경제학’을 집필하고 있는 이곳은 미국이다. 한국에서 일본과 대립각을 세우는 것과 달리 이곳 미국에서는 피해자가 가해자를 용서하는 진풍경이 벌어지고는 한다. 지난 8월 8일, 미국의 공기관들과 대학들 그리고 교회 등에는 일제히 조기게양이 이뤄졌다. 특히나 필자는 사우스캐럴라이나에서 장기 체류 중이었으므로 그 경이적인 장면에 감탄을 연발하였는데 그 이유는 이랬다.그날은 미국이 일본에 원자폭탄을 투여한 날로 비록 전쟁의 종식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지만 일본인들에게는 사죄를 뜻하는 것이었다. 물론 일본이 태평양전쟁 당시 이훈구의, 일본 영화 경제학②/ 메이지유신 라이프& 이훈구의, 일본 영화 경제학②/ 메이지유신 일본의 영화가 독자적으로 발달하게 된 배경에는 세 가지 중요한 요인이 있었다. 첫째는 ‘메이지 유신’(明治維新)이다. 19세기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일본만이 자발적인 근대화에 성공했으며 고대부터 외국의 선진문물을 배우려는 적극적인 태도가 있었던 나라다.서구문명을 배우기 위해 정부 차원의 대규모 사절단(이와쿠라 사절단)을 해외에 파견한 것이다. 자기보다 우수한 해외 문명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국가 발전의 계기로 삼았던 견당사, 견수사의 후예답게 이와쿠라 사절단은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등 당시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선진 산업문명과 이훈구의, 일본 영화 경제학①/ 쇼치쿠의 탄생 라이프& 이훈구의, 일본 영화 경제학①/ 쇼치쿠의 탄생 올해로 ‘한국영화 100주년’이 된다. 1895년 3월 22일, 프랑스 리옹의 사진사이자 초상화가의 아들인 오귀스트와 루이 뤼미에르 형제가 영화(cinéma, 처음에는 극장이라는 의미로 쓰임)를 상영한 이후, 이들은 극동지역을 주목했다.1895년 초에 이미 카메라, 인화 기계, 영사기 역할을 하는 작은 기계 ‘시네마토그래프’의 특허를 낸 바 있지만 미국의 발명왕 에디슨의 영사기(1893년 발명 키네토스코프) 시연에서 영향을 받은 태생적 한계로 인해 세계영화시장의 주도권 장악이 시급했기 때문이다.1896년 여름 뤼미에르사의 카메라맨들 처음처음1끝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