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6건) 리스트형 웹진형 타일형 이훈구의, 일본영화 경제학⑦ 도쿄와 교토 라이프& 이훈구의, 일본영화 경제학⑦ 도쿄와 교토 “일본이라는 복잡미묘한 나라의 사회와 경제를 이해하는데 영화만한 도구가 없다고 봅니다. 그런데 한국에 일본 영화 자료가 너무 없습니다. 일본 영화의 ‘깊은 숲&#39;을 이루는 거대한 나무들 즉 구로사와 아키라, 미조구치 겐지, 오즈 야스지로, 오시마 나기사, 이마무라 쇼헤이 같은 감독들을 알려야 합니다. 누군가는 해야 할 일입니다.”재팬올이 ‘이훈구의, 일본 영화 경제학’을 연재 중입니다. 이훈구 작가는 자신의 글쓰기 의미를 다시 한번 강조했습니다. 미국 LA에 거주하는 작가는 ‘영화란 무엇인가?’의 저자이자 영화사 (주)라인앤지 ‘이훈구의, 일본 영화 경제학’⑥/가부키와 주신구라 라이프& ‘이훈구의, 일본 영화 경제학’⑥/가부키와 주신구라 이훈구 시나리오 작가가 재팬올에 ‘이훈구의, 일본 영화 경제학’을 연재 중입니다. 미국 LA에 거주하는 작가는 ‘영화란 무엇인가?’의 저자이자 영화사 (주)라인앤지인 대표입니다.홍콩킹라이언필름(KING LION HONGKONG FILM)을 설립해 중화권 콘텐츠 수입과 제작도 하는 작가는 중국, 일본 등 아시아권 영화와 문화에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습니다.<편집자주>처음 ‘영화’는 일본에서 이류예술로 치부하는 경향이 많았다. 가부키 배우들 역시 일류 예능인이라는 자부심 하나로 명맥을 유지해 왔기에 교류를 하지 않았다.그러나 당초 프랑 이훈구의, 일본 영화 경제학③/ 총리의 말 실수 라이프& 이훈구의, 일본 영화 경제학③/ 총리의 말 실수 이훈구 시나리오 작가가 재팬올에 ‘이훈구의, 일본 영화 경제학’을 연재 중입니다. 미국 LA에 거주하는 작가는 ‘영화란 무엇인가?’의 저자이자 영화사 (주)라인앤지인 대표입니다.홍콩킹라이언필름(KING LION HONGKONG FILM)을 설립해 중화권 콘텐츠 수입과 제작도 하는 작가는 중국, 일본 등 아시아권 영화와 문화에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습니다.그런 ‘글로벌인(人)’ 작가가 본격적으로 일본 영화 이야기를 풀어놓기 전에, 한 가지를 먼저 짚고 넘어갑니다. 그가 외국에 살면서 느끼고 경험한 일본의 ‘메이와쿠’에 대한 것입니다. 이훈구의, 일본 영화 경제학②/ 메이지유신 라이프& 이훈구의, 일본 영화 경제학②/ 메이지유신 일본의 영화가 독자적으로 발달하게 된 배경에는 세 가지 중요한 요인이 있었다. 첫째는 ‘메이지 유신’(明治維新)이다. 19세기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일본만이 자발적인 근대화에 성공했으며 고대부터 외국의 선진문물을 배우려는 적극적인 태도가 있었던 나라다.서구문명을 배우기 위해 정부 차원의 대규모 사절단(이와쿠라 사절단)을 해외에 파견한 것이다. 자기보다 우수한 해외 문명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국가 발전의 계기로 삼았던 견당사, 견수사의 후예답게 이와쿠라 사절단은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등 당시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선진 산업문명과 이훈구의, 일본 영화 경제학①/ 쇼치쿠의 탄생 라이프& 이훈구의, 일본 영화 경제학①/ 쇼치쿠의 탄생 올해로 ‘한국영화 100주년’이 된다. 1895년 3월 22일, 프랑스 리옹의 사진사이자 초상화가의 아들인 오귀스트와 루이 뤼미에르 형제가 영화(cinéma, 처음에는 극장이라는 의미로 쓰임)를 상영한 이후, 이들은 극동지역을 주목했다.1895년 초에 이미 카메라, 인화 기계, 영사기 역할을 하는 작은 기계 ‘시네마토그래프’의 특허를 낸 바 있지만 미국의 발명왕 에디슨의 영사기(1893년 발명 키네토스코프) 시연에서 영향을 받은 태생적 한계로 인해 세계영화시장의 주도권 장악이 시급했기 때문이다.1896년 여름 뤼미에르사의 카메라맨들 ‘이훈구의, 일본 영화 경제학’을 연재합니다 라이프& ‘이훈구의, 일본 영화 경제학’을 연재합니다 1989년, 세계 영화업계에 충격적인 일이 벌어졌다. 일본 기업 소니가 ‘미국 영화의 자존심’이라 불리는 콜롬비아 영화사를 인수해 버린거다.메이지 유신 이전, 쇄국(鎖國)적이던 일본의 문을 강제로 연 ‘미국 흑선(黑船) 사건’과 정반대의 일이 벌어진 것이다. 일본 기업이 호황기 경제력을 포문 삼아, 미국 영화 산업의 거점을 함락시켜 버린 셈이다.소니의 콜롬비아 인수 2년 전인 1987년, 한국에도 충격에 가까운 일이 벌어졌다. 세계 3대 영화제 중 하나인 베니스영화제에서 배우 강수연(임권택 감독 작품 ‘씨받이’)이 여우주연상을 거머 처음처음1끝끝